머리빗
“일도 구직도 안 하고… 청년 50만 명 오늘도 그냥 쉽니다 “
“집이나 방 안에서 틀어박혀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고립과 은둔 속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부르죠. 서울시가 처음으로 대규모 실태 조사를 벌였는데요. 전체 4.5%, 13만 명이 이런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
아침 10시, 기상하자마자 TV를 틀었다가 뉴스를 보게 되었다. ‘나도 저 사람들 중 한 명에 속할까..‘ 생각을 하며 화장실로 가서 샤워를 한다. ‘방 밖으로 나간 지가 얼마나 되었지… 1년 정도 되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딱히 큰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은 없다.
하지만 문득문득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에 불안감이 올라온다. 친구들은 다 경제적 활동을 하면서 커리어를 다지고 있을 텐데.. 나만 이러고 있어도 될까. 모아둔 돈도 곧 바닥이 보일 듯하다.
탈탈탈
샤워를 마치고 뿌연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본다. “음.. 오늘은 좀 푸석해 보이는군 ” 저녁에 팩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머리를 말린다. 그리고 내가 아끼는 나무로 된 둥근 빗으로 머리를 빗는다. 머리카락 끝에 꼼꼼히 에센스를 발라준다. 집 밖에 나가지 않을 뿐, 나는 내 일상을 소중하게 지키고 있다. 오히려 거기에 대해서 오는 자부심이 나를 지탱해 준다.
늦어도 10시에는 기상, 매일 하는 샤워와 머리 빗기, 건강하게 챙겨 먹기 그리고 글쓰기.
샤워를 마치고는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집 안에서 생활하고부터는 비건식으로 끼니를 챙겨 먹는다. 오늘은 좀 머리가 복잡하니 아껴놨던 콩고기 템페도 굽는다.
딩동
초인종이 울려서 봤더니 꽃이 와있다. 집 밖에 나가지 않다 보니 기분전환 겸 꽃 정기구독을 신청해서 받고 있다. 오늘은 무슨 꽃이 왔을까 하는 기대감에 열어본다. 보라색의 리시안셔스와 하늘빛의 옥시페탈룸, 하얀색의 스토크다. 마음 한 구석에는 통장 잔고가 바닥나가는데 꽃은 사치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열어본 순간 그런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진다. 기분이 한결 좋아지기 때문이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후에는 블로그에 글을 쓴다. 글 내용은 방 안에서 사는 사람이야기. 그냥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사는 나의 삶에 대해 쓰는데 생각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다. 큰 상처를 받아 누군가를 만나기가 두려운 사람, 취직이 안되어 자포자기로 있는 사람… 많은 사람들이 나는 어쩌다가 방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는지 궁금해한다.
사실 드라마틱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지쳤을 뿐. 내 나이 서른, 3년 정도 회사생활을 했다.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지도 않았고 회사가 성과로 나를 압박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냥 모든 게 지쳤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몰라도, 나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과거를 떠올리다 보니 갑자기 산책을 하며 가을 냄새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이제 일어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막막하지만 한걸음만 내디뎌봐야지. 웅크려있으면서 나를 덜 지치게 하는 나의 일상의 힘을 깨달았다. 아마 이젠 나를 더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타닥타닥
다시 글을 쓴다.
제목 : 이젠 나가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