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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샘 Jan 13. 2021

성도의 죽음

남편을 떠나보내고 몇 주 뒤, 목사님이 교회 주보 칼럼에 성도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리셨다.

잘 기억하고 간직해야 할 기록이라 여기에 남긴다.


<성도의 죽음>    

      

건강하고 바른 가정이라면 한 아이의 출생을 모두가 기뻐합니다. 하지만 정작 태어난 아이는 울면서 태어납니다. 반면 사람이 죽을 때는 그와 좋은 관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슬퍼합니다. 하지만 정작 이 세상을 떠나간 당사자가 내세를 보장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세상을 떠난 죽음 그 순간이야말로 영원과 연결되는 시간이자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은혜와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 인간의 태어남과 죽음을 사람이 주관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태어난 사람도 없거니와 출생의 모든 환경 또한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생명이 있게 하시는 그분에 의해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죽음도 때와 방법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지 않고 절대자인 그분에게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기의 성자 슈바이처는 생명에의 경외심을 역설하게 된 것입니다.      


○○○ 성도님은 만 2년 전에 부인 집사님과 함께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의 첫 발을 내디디셨습니다. 당시 공모제 교장에 응모해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교장에 취임하셨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장실에서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신앙의 초보였지만 장로 권사이신 처가 부모님의 기도와 아내의 영향으로 이미 그 마음 밭이 옥토로 바뀌어 있었던 터였습니다.      


2년 신앙생활을 해 오시는 동안 주일예배는 거의 빠짐없이 지키셨습니다. 삶의 자세가 바르고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었듯이 신앙생활도 그렇게 실천해오셨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깨달음을 메모하고, 주보에 실린 목양 칼럼에서 좋은 글귀를 학교에서 훈화하실 때 인용하시기도 하고, 교회가 전개하는 천국 방언 캠페인을 학교에서 적용하기도 하는 등 적극적인 생활 크리스천으로 살아오셨습니다.      


신앙생활 2년에 벌써 성경을 1독 하시고 지난 3월에는 확신반을 수료하셨습니다. 바로 이어 부활절에 세례를 받으시고 전 교우들 앞에서 세례 간증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성도님께서 지난 7월 20일 몸에 이상을 느껴 진료받으신 결과 간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그날이 23일, 그러니까 ○○○ 성도님이 신앙생활을 시작 한지 2년째이자 만 52세의 생일 아침이었습니다. 사망선고를 받은 그 아침에 병원 심방을 했을 때 성도님은 “하나님이 오늘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라고 의연하고 담담하게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로부터 꼭 1주일 만인 30일 새벽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매일 심방을 할 때마다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고통 중에도 기도할 때마다 “아멘”으로 응답하시고 제 손을 꽉 잡으시면서 고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수요예배를 마치고 병원에 들렀을 때는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통증 때문에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꾹 참아내셨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찬송 부르면 소리 없이 입으로는 따라 하시고 기도하면 “아멘”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지 세 시간 후 새벽 1시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마지막인 것 같다고 해서 다시 달려갔습니다. 천국 소망에 대한 말씀을 읽어드리고 조용히 찬송을 부르고 기도했습니다. 힘겹게 숨을 쉴 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잠시 눈이라도 붙이려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한 번 더 찬송을 불렀습니다. 임종 때에 불러보지 않았는데 갑자기 부르고 싶어 져서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찬송을 부르고 임종기도를 드렸습니다. “○○○선생님, 천국에서 만납시다.” 인사하고 저는 자리를 뜨고 제 아내가 “안 선생님, 존경합니다. 끝까지 예수님 이름 부르세요. 천국에서 만납시다.”라고 말하자 움직이지 않던 입이 움직였습니다. 소리는 안 들리지만 입 모양으로 봐서 “천국에서 만나요.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틀림없었습니다. 그 말이 마쳐지면서 숨을 멈추셨습니다. 고요히 잠자는 것처럼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병원이나 하나님에 대하여 불평이나 섭섭함을 한 번이라도 할 법한 상황이었지만 성도님은 다 감사로 받아들였습니다. 연명을 위한 장치를 거부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목사의 손을 잡고자 했고 결국 기도와 작별인사로 이 세상을 마감하셨습니다. 이제 청년기에 접어든 남매와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가지만 죽음 앞에 서는 성도님의 의연한 자세가 남은 가족들과 교우들에게 큰 도전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남겨진 남매에게 확고한 신앙적 유산을 남긴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이 죽을 때에야 그 사람의 신앙의 진위를, 믿음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은 진정 하나님이 인정하신 성도였습니다.      


“주님을 성실하게 따르는 성도의 죽음은 주님께 귀중하다.”(시 116:15, 표준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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