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선배님이 하는 말을 들었다. 지나가듯이 한 말이었다. 세 아이들 모두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육아일기를 썼다는 것이다. 그 아이들이 다 자라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니, 결혼할 때 아이들에게 육아일기를 선물로 줄 예정이란다.
"와, 정말 멋지세요. 저도 그렇게 해 봐야겠어요."
그러나 두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나는 꾸준한 육아 일기는커녕 해답 없는 육아의 전쟁 속에서 늘 허둥거렸고 당황했고 징징거리기만 했다. 예쁜 공책을 준비만 해 놓았지 정작 육아일기는 써 보지도 못했다.
이제 나는 정년퇴직이 10년쯤 남았고, 한 5년 지나면 명예퇴직을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험난한 이 교직생활에서 큰 어려움 없이 30년이 된 것도 감사하다. 게다가 아직 아이들이 이쁘고 변화무쌍한 이 코로나의 시대로 비교적 잘 적응하며 지나고 있다. 이번에 2월 말에 세 분 선배님이 명예퇴직을 하신다. 누구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분들이지만 아마도 지난 1년이 힘들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처음 겪는 격변의 교육 현장이었지만 나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필요한 정보와 기능을 익히며 이겨냈다.
나는 아직 아이들이 이쁘다. 이런 내 마음과 달리 체력은 약해질 것이고, 내가 감당하기 힘든 학생이나 학부모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때 나는 언제든 명예퇴직을 하리라 맘먹고 있다. 더 할 마음이면 정년퇴직까지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가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육아일기 같은 교실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 나는 늘 학교 엄마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한다. 원래 엄마의 마음을 자녀들은 다 모르는 것이니까, 아이들이 알든 모르든 나는 학교에서는 엄마다. 짝사랑하듯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서 내가 느끼는 행복, 안타까움, 화남, 그리고 염려 등 나의 감정들을 글로 남겨두고 싶다. 결혼할 때 손에 쥐어주지는 못하니까 책으로 엮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아침, 갑자기 육아일기 - 얼마 남지 않은 교직생활 - 교실이야기 - 책 등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정리가 된다. 고마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