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왜 이렇게 지치지?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이 났다. 어둑어둑해진 길을 걸어 퇴근을 해서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배가 너무 고파 준비해 놓은 샐러드를 접시 가득 담고서는 어그적 어그적 씹어 넘기고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입학식 날이다. 열흘 가까이 출근을 해서 입학식 준비를 했다. 취합해 놓은 취학통지서를 엑셀로 정리하고, 분반 기준에 따라 분반을 했다. 분반 내용을 정리하고 분반 결과를 각 가정으로 공지한다. 학교 홈페이지에도 올리고, 입학식 당일 볼 수 있도록 플로터로 명단을 뽑으니 분반 업무는 마무리되었다.
그 이후에는 입학 준비로 나눠줄 물건들을 주문했다. 알록달록 이름표와 종합장, 색연필, 사인펜, 축하 고깔, 에코백 등을 주문하게 되는데 내 카드로 나가서 사 오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건의 단가를 알아보고 지출 품위 결재를 올리고 그 이후 주문을 하는 등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주문한 물건이 도착해서 학급 인원에 맞게 나누고, 예쁜 이름표를 라벨지에 출력해서 붙인다. 입학을 축하하는 예쁜 그림을 출력해서 뒷 게시판을 꾸미면 이것도 일단락된다.
분반과 입학 선물 준비가 끝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입학식의 구체적인 일정과 입학해서 지도할 내용을 1학년 선생님들이 다 함께 모여 의논하고 아이디어를 모으고 그것을 주간 학습으로 정리한다. 학기초에 가정에서 수합해야 할 가정통신문들이 너무 많다. 학생 상담 기초 자료, 건강 상태 조사서, 알레르기 조사서, 클래스팅 가입 신청서 등등의 문서를 인쇄하고 각 개별 파일에 끼워야 한다. 특히 1학년은 학부모님들도 잘 모르는 학교생활이 많아 최대한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학교생활 안내문을 작성해야 한다. 이런 작업들이 며칠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이제 마지막 준비는 방역이다. 책상 위에 가림판을 설치한다. 투명 아크릴판을 접고 벨크로를 붙이는데 한나절이 걸리고 허리가 부러지는 것 같다. 책상 속과 책상 위, 의자, 출입문, 사물함 등 소독 티슈로 모두 닦는다. 책상 줄까지 깨끗이 맞춰 놓고 신입생을 맞을 준비를 마치고 집에 온 것이 지난 금요일이었다.
입학식 날 입을 옷을 챙겼다. 평소에 안 입던 단정하고 깔끔한 정장에 상큼한 스카프를 꺼내놓고 좀 편안한 주말을 보내려고 했는데, 이런 일기예보가 난리 났다. 월요일에 종일 비가 내리고 입학식 당일에도 비 예보가 있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교장님, 교감님, 교무부장, 학년부장인 나는 카톡방을 만들고, 날씨에 따른 대책을 세우느라고 주말 내내 카톡 카톡 카톡 난리가 닜다. 다행히 비가 그쳤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입학식 오늘이 왔다.
코로나로 지난해는 너무 어수선한 학교 현장이었지만 올해는 1, 2학년이 매일 등교를 하게 되니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단 교실에서 맘껏 떠들며 뛰어놀지는 못해도 함께 공부하는 것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11시 입학식인데 10시 20분부터 교실로 아이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아이들도 학교 오기를 기다렸나 보다.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고 이름표를 걸어주고 자리를 안내했다. 걱정 반 기대 반 학부모님들의 얼굴이 더 들떠 보인다. 창문을 열어주고 잠깐 앉은 모습 사진 찍으시라고 하니 너무 기뻐하며 창가에 매달려 사진을 찍는다. 나도 저런 마음이었지 옛날 생각이 났다. 교실로 데려다주고 학부모님들께는 20여분의 입학식 진행 상황을 유튜브 영상을 중계해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아마도 코로나로 아이들과 함께 있지는 못하지만 운동장에서 핸드폰으로 볼 수 있게 하려는 배려였다.
방송으로 입학식을 마치고 아이들을 인솔해 운동장으로 나갔다. 줄을 맞춰 선생님들을 따라 이동하기로 약속했지만 운동장에 나오자마자 아이들인 이리저리 흩어진다. 겨우 병아리 몰들 수많은 인파를 뚫고 우리 반 학부모님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학부모님들께 간단히 인사를 하고, 협조 말씀을 전달하고 아이들을 보냈다. 학교에 설치해 놓은 포토존에서 거리두기를 잘 실천하면서 사진을 찍고 안녕히 돌아가시라는 말과 함께.
교실에 들어오니 맥이 쪽 빠졌다. 오랜만에 1학년을 하니 새삼 걱정이 앞선다. 엄마 손을 붙잡고 교실로 들어오지 않겠다고 엄마 뒤에 숨기만 하던 **이, 내가 한 문장을 말하기 전에 두세 번 끼어들어 말하는 **이, 선생님 말이 끝나면 말해줄래? 부탁했는데 소용이 없다. 너무 얌전히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몇 명, 첫날이라 눈에 띄는 몇 명이 있다. 이제 하루하루 학교생활을 하면서 점점 더 좋아지고 변화하게 될 테지만 오늘 하루는 일단 지친다. 내일은 조금, 그다음 날은 조금 더 이 아이들은 변화하고 성장할 것이다.
동학년 선생님들이 다들 지친 얼굴로 연구실에 모였다. 점심 식사를 주문하고 느낌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또 열심히 이 아이들에게 정성을 다해보자고 파이팅을 외치며 꼬르륵 거리는 배를 과자 몇 개를 집어먹으로 기다렸다. 식사가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한 잔 마시니 살 것 같았다.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