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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샘 Apr 30. 2021

그게 아니라요, 엄마가 보고 싶어서요


하교할 때, 뜬금없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벌써 4월이 다 끝나가네요. 매일매일 학교 오는 게 너무 재미있지요?"

모두들 큰 소리로 "네!" 외치는데 갑자기 우리 반 민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학기 초 민이의 모습은 이랬다. 수업 중 대부분은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거나, 가끔은 혼잣말을 한참 동안 중얼거렸다. 1년 전부터 ADHD 약을 복용하고 있고, 아마 그 영향일 텐데 정말 흰 밥알만 10알 정도 세어서 먹었다. 짝꿍이 책을 꺼내 줄 때가 대부분이고 연필 쥐는 것도 힘들어해서 간단한 활동도 못할 때가 많았다.


두 달이 지난 지금은 책도 스스로 꺼낼 때가 있고, 밥도 받은 것의 반 정도는 먹는다. 가위질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학습지를 시간 안에 색칠할 때도 있다. 점점 좋아지고 있고, 그것은 나의 노력뿐 아니라, 우리 반 친구들 덕분이다. 민이에게 관심을 갖고 민이가 잘 못하고 있을 때면 언제든지 다가가서 도와주는 아이들 덕분에 우리 민이는 많이 좋아지고 있다.


어제도 종이를 오려 꽃바구니를 만드는 활동을 했다. 한 장의 종이에는 바구니가 그려져 있다. 다른 한 장의 종이는 여러 장의 꽃이 그려져 있다. 활동 순서는 이렇다. 먼저, 바구니를 예쁘게 색칠한다. 작은 꽃을 색칠해서 가위로 오린 다음, 오린 꽃에 가위 집을 내어 살짝 입체감이 있게 붙인다. 바구니가 그려진 종이에 잘 배치하면 완성되는 활동이다.


천천히, 몇 번 반복해서 설명을 했다. 아이들은 빠르게 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민이에게 다가가 바구니를 칠하고 싶은지, 꽃을 색칠하고 싶은지 물었다. 바구니를 색칠하겠다고 하겠다고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럼 선생님이 꽃을 색칠해서 오려줄까?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아이들의 활동을 살피고 질문에 답을 하면서도 나는 민이의 꽃을 색칠하고 오리느라 눈과 손이 따로 움직였다. 가위질이 잘 안 되는 민이가 그나마 색칠을 시작한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다. 색연필을 꺼내는 것, 연필을 꺼내는 것, 교과서를 꺼내는 것도 옆에서 모두 도와주었는데, 지금부터 조금씩 스스로 하고 있다. 왼손을 사용하고 소근육 발달이 안되어 색연필을 쥐고 색칠하는 것이 힘든 민이다. 그래도 속도가 느리고 활동을 마무리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먼저 끝낸 친구들이 민이에게 다가와서 서로 돕겠다고 나선다. 이렇게 열심히 마음을 다해 민이를 아끼고 도와준다. 민이는 그날도 다른 아이처럼 작품을 완성했다. 우리 반 수호천사들 덕분이다.


그런데 하교 전 내 뜬금없는 질문에 우리 민이가 예전에 없이 씩씩하게 손을 들고는

"나 학교 오는 거 싫어요." 했다. 그것도 큰 소리로.

어머나! 나도 놀랐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눈이 동그래서 놀란 표정이 가득했다.

"어머, 민이야 너 정말 학교 오기 싫어? "

"야, 민아, 그러면 너 내년에 동생들하고 학교 다녀야 해."

"아니, 민이야 왜 학교 오기 싫어?"

우리 반 아이들이 난리 났다. 이는 필시 자신들의 따뜻한 사랑에 대한 배신감의 표현일 것이다.

나는 민이를 가까이 오게 해서 다시 물어보았다.

"민이야, 우리 민이가 학교 오는 게 싫었구나. 공부하는 게 힘들었어?"

"그게 아니라요, 엄마 보구 싶어서요."


코끝이 찡해졌다. 입학하고 나서 몇 주, 엄마와 헤어지는 게 싫어서 한참을 엄마 다리를 붙잡고 있던 민이가 이제는 씩씩하게 혼자 교실로 잘 들어온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민이는 교실에서도 엄마가 보고 싶은 거였다.

'민이야, 학교에 오면 선생님이 엄마야.'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민이에게는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학교에서 공부하면서도 보고 싶은 엄마일 테니 그 말을 그냥 삼켜버렸다.


오늘 아침 수업이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 어떤 학부모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민이가 학교 앞에서 울고 있다는 것이다. 등교시키고 돌아가는 길에 혼자 울고 있는 민이를 발견하고 전화를 한 것이다. 전화기 너머로 민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놀라서 신발도 갈아 신지 못하고 교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하얀 얼굴이 울어서 빨개진 채로 민이가 울고 있었다. 일단 가서 안아주니 품에 쏙 안겨서 더 크게 운다. 등을 조금 다독이고 앉아서 민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물어보았다.

"우리 민이가 울고 있었구나. 우리 민이가 왜 울고 있었을까?"

말이 없다. 당황하면 나타나는 기침 틱이 더 강해진다.

"엄마가, 엄마가,..."

엄마를 반복하는 걸 보니,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인가 보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민이를 달래주었다.

"민이야, 민이가 엄마가 안 보여서 놀랐구나. 그래서 울었구나? 선생님이 교실에 가서 엄마한테 전화 걸어줄게. 동생이 팔을 다쳤다고 했으니 엄마가 동생 돌보느라 바쁘셨나 보다. 교실로 가면 선생님이 엄마한테 전화 걸어줄게. 교실로 가자. 알았지?"


민이는 팔뚝으로 눈물을 쓱쓱 닦고는 내 손을 꼭 잡고 학교로 걸음을 옮겼다. 민이에게 나는 조금씩 학교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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