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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샘 Jun 02. 2021

쿨하게 인정하렴, 쿨하게 용서하렴.


“선생님, 희진이하고 태환이가 싸워요.”     


쉬는 시간, 한 아이가 나에게 달려와서 두 친구가 싸운다고 말했다. 내 앞으로  불려 나온 두 아이의 표정이 시무룩했다. 아직까지 교실에서 싸우는 일이 없었기에 다른 아이들의 시선도 우리에게 모두 쏠렸다. 이럴 때 잘해야 한다.          


“얘가 내 책을 팍 덮었어요.” “아니, 그게 아니고 얘가 나한테 아줌마라고 놀렸어요.” 둘의 목소리가 겹쳐지면서 서로의 말만 하기 시작한다.     

“선생님은 공평한 선생님이야. 두 사람 이야기를 모두 들어줄 거야. 그러니  말하는 친구의 말을 잘 들으렴. 태환이부터 말해보자. 왜 다투게 되었어?”     


엄마 말로는 집에서는 엄청난 장난꾸러기라는데, 교실에서의 태환이는 모범생 중의 모범생이다. 항상 바른 자세로 앉아 있고, 스펀지처럼 가르치는 대로 배워가는 아이다. 태환이는 긴장을 많이 해서 얼굴이 빨개져서는 말했다.     


“희진이가 자꾸 내 책을 덮었어요!”

“아, 태환이가 다음 시간 배울 책을 미리 펼쳐놓았는데 희진이가 책을 덮었구나?”

“네.”

"미리 책을 다 펼쳐놓았는데, 희진이가 태환이 책을 덮어서 속상했겠다. 그렇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이번에는 희진이와 얼굴을 마주 보며 말했다.

“희진아, 태환이 말이 맞니? 희진이가 태환이 책을 덮었니?”

“아니, 그게 아니고요. 태환이가 나를 아줌마라고 자꾸 놀려요. 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놀렸어요.”

“아, 태환이가 놀렸어? 태환이가 아줌마라고 그랬으면 기분이 나빴겠다. 그런데 희진아, 태환이 책을 덮었니?”

“네.”

“그래, 알았어. 태환이 책을 희진이가 덮었을 때는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 이유가 태환이가 너를 아줌마라고 놀려서 기분이 상해서 그런 거 같구나. 선생님 말이 맞니?”

“네. 태환이가 놀려서 기분이 나빴어요.”

자그마한 체구지만 뭐든 분명하고 야무지게 하는 희진이는 대답도 야무지게 했다.     


이번에는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태환이는 희진이를 아줌마라고 놀렸어. 그렇지? 그리고 희진이는 태환이 책을 덮었어. 맞니? 그런데 선생님이 궁금한 것은 누가 먼저 했을까? 시작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네?”

“제가 먼저 희진이를 놀렸어요.”

“아하, 태환이가 먼저 시작했구나.”

나는 태환이와 눈을 맞추고 어깨를 토닥이며 말해 주었다.

“와, 우리 태환이 멋지다. 먼저 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우리 태환이 정말 멋져. 이렇게 쿨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니 선생님이 기쁘다. 태환이가 희진이를 아줌마라고 놀린 것이 멋지다는 게 아니야. 알지? 자기의 잘못을 쿨하게 인정하는 것이 멋지다는 거야.”

태환이는 내 말을 들으면서 커다란 눈에 그렁그렁 매달린 눈물을 팔뚝으로 쓱 닦았다.     


태환이가 왜 우는지를 안다. 모범생 우리 태환이는 자신이 친구와 다투어서 선생님 앞에 불려 나온 것 자체가 힘든 것이다. 늘 선생님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는 태환이는 이번 일로 선생님을 실망시키게 될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 클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야단치기보다 자신의 잘못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의 잘한 부분을 인정해 주는 것에 안도감이 느껴져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 태환이처럼 긴장감이 높은 아이를 대할 때 내가 접근하는 방법이다.     


“태환이가 장난으로 희진이를 놀린 거지? 그럴 수 있어. 그런데 태환아, 먼저 시작했으니까 희진이한테 먼저 사과할 수 있겠어?”

“희진아, 선생님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태환이가 너를 아줌마라고 좀 놀려서 기분이 상했나 보다. 그래서 태환이 책을 덮었구나. 그렇지? 태환이가 사과하면 받아줄 수 있어? 그리고 희진이도 태환이한테 책 덮은 거 사과하면 좋겠구나. 그럴래?"

"네."

둘은 서로 사과를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태환이의 환해진 얼굴, 희진이가 미소가 눈에 들어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싸움이 일어나고, 말싸움뿐 아니라 신체적 싸움으로 확대되어 학급 분위기가 좋지 않은 반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 반 아이들이 교실에서 다투거나 싸우는 일이 없었다. 학급 아이들의 성향도 영향을 주지만, 교실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이런 상황에서 교사가 개입해서 어떻게 해결하느냐도 갈등이 적은 평화로운 교실이 되는 데 중요하다.      


두 아이가 자리로 돌아가 앉은 후에, 나는 모든 아이들을 집중시키고 전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선생님은 공평한 선생님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다 들어줄 거니까 목소리를 높여서 큰 소리로 말할 필요가 없단다. 한 친구가 말할 때, 그 친구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자신이 말할 차례가 되면 자세하게 자신의 말을 하면 된다. 아무 이유 없이 다투는 일은 없으니, 처음 무슨 이유로 다툼이 시작되었는지가 중요하다. 다툼이 시작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그것을 인정하면 다툼은 금방 해결되는 것이란다. 오늘 다툼은 태환이가 장난으로 희진이를 놀렸고, 기분이 상한 희진이가 태환이의 책을 덮은 것이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태환이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인데, 태환이가 그것을 인정해서 선생님이 칭찬해 주었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하는 거란다. 그럴 때는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얼른 사과하고 화해하는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다툼은 계속되는 것이란다.>     


"선생님 말을 큰 소리로 따라 해 볼까요?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실수하면 얼른 인정하고 사과합니다. 친구가 사과하면 쿨하게 용서해 줍니다. 그래야 다음에 내가 실수했을 때, 친구들도 나를 용서해 줍니다."     

아이들은 한 구절씩 큰 소리로 따라 했다. 학교에서는 학습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친구를 사귀고 함께 노는 것, 잘못을 하면 사과를 하고 용서하는 것, 하고 싶은 일을 참고해야 할 일을 지속하는 것, 그런 것들을 배우는 곳이 학교인 것이다. 이 일을 통해 이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어가면서 갈등도 잘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아이들로 자라주길 바란다.      


아이들은 다시 교실 뒤편 어항 근처로 몰려갔다. 지난 금요일 배가 볼록하고 까만 구피를 작은 통에 옮겨 놓았는데, 새끼를 여덟 마리나 낳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태환이와 희진이도 낄낄거리며 다른 아이들과 함께 섞여 있다. 지난 주말 새로 생겨난 작은 구피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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