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에 몸담은 정교사가 바라보는 사교육의 필요성
오늘도 자식 교육, 특히 사교육 학원 문제를 놓고 한바탕 토론을 펼친 분들이 많을 것이다. 아빠 입장에서는 아직 아이가 어리니 학교 공부만으로 스스로 공부해도 충분하고 다양한 체험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시며, 엄마 입장에서는 학교 공부 뿐만 아니라 어릴수록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고, 옆 집 나윤이는 벌써 중학 수학을 들어갔다며 자랑하는 이야기를 듣고 와서 걱정이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것 같은데.
사교육 문제는 한국의 학부모라면 대부분 갖고 있는 오랜 고민 중 하나이다. 다들 생각이 다르고, 꼭 누구의 말이 맞다고 할 수는 없다. 고민이라고 해서 학원에 방문해서 꼭 필요하냐고 묻자니 학원에서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할 게 뻔하다. 그렇다면 공교육에 종사하는 학교의 교사는 사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교육부에서는 연일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의 우수성을 광고하기 바쁜데 말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공교육의 입장에서도 사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학교 공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 학교 공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첫 번째, 한국의 교육과정은 너무 빡빡해서 교사들을 힘들게 한다. '빡빡하다'라는 단어보다 좀 더 고급진 단어를 찾고자 했지만 더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실제로 너무 빡빡하다. 진도를 빼기에 한 학기 수업 시수(=수업 시간)가 부족할 정도로, 과목별로 설명해야할 양이 너무나도 많을 뿐더러, 모둠별로 여러 시간에 걸쳐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학교에는 교과 공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 체험활동(자율 활동, 봉사 활동, 동아리 활동, 진로 활동 등)이나 계기 교육(독도, 한글날, 식목일 등), 체험 학습, 운동회, 과학의 날 행사 들 온갖 행사들이 즐비하다. 수업 진도만 열심히 나가도 부족한게 수업 시수인데!
교사들은 사실 특정직 공무원이다. 즉 나라의 공무원으로서 일하며, 나라(이하 교육부로 칭한다)에서 만든 교육과정을 성실하게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의무를 지닌다. 즉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은 빡빡한 교육과정을 소화하기 위해 철저하게 개념과 원리 위주의 수업을 하게 된다. 따라서 문제풀이 또는 원리에 관한 추가 설명을 많이 해줄 시간적 여유가 없어, 이를 보완하고 학생들의 교과 실력 향상을 위해 충분한 문제풀이 시간이 학원에서 더 필요하다.
두 번째, 학교에서는 수준별 수업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교육부에서 만든 교육과정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것이 수준별 수업인데! 하지만 교육부 책상에 앉아서 교육 정책만 만드시는 분들이 교육과정을 만든거라,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학교 수업 구조 상 수준별 수업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연초 반 배정 시 학생들의 학업 수준을 고려하여 한 반당 상위권부터 하위권 학생이 다양하게 분포되게끔 한다. 학교는 학원처럼 기초반, 심화반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다! 이는 교사 하나 당 맡아야 할 학생이 다양한 수준을 갖고 있음을 뜻하는데, 아직 학생 수가 아무리 많이 줄었다고 해도 수도권 기준 평균 20명 이상이다.(좋은 학군 또는 아파트 단지는 평균 25명을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단순 계산만 해봐도, 수준별로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모두 다른 수업을 해야 하고, 50분의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상중하 수준으로만 나누어도 한 주제당 고작 15~17분 남짓이다. 애초에 전체주의적인 교육 방식의 교실 형태는 그대로이면서 수준별 수업을 요구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물론 수준별 수업을 하기 위해 일괄적으로 수업을 하고 문제풀이만 수준별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이상적인 생각일 뿐이다. 문제풀이는 정말 개별적으로 해주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교사가 한 학생당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2분 남짓일 뿐이다.
셋째, 한국의 초중고 교육과정의 현실적인 목표는 '대학 입시'다. 반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 대학 입시는 경쟁을 기본으로 전제한다. 경쟁이 기본인 입시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교과 성적에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고, 이는 교육적 이상을 추구하는 학교 교육(교과 교육 뿐만 아니라 인성 교육, 예절 교육, 윤리 교육, 창의적 체험활동(자율 활동, 봉사 활동, 동아리 활동, 진로 활동), 각종 행사(운동회, 과학의 날 행사, 1인 1악기 지도, 독서표현대회 등)를 포함하는)에서 경쟁력을 갖추어주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공교육에서는 균형잡힌 인간상 확립을 위해 다양하고도 이상적인 교육을 해야 하는데 교과 성적 경쟁력까지 동시에 갖추어주기에는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 초등 및 중학생들이 모두 고3처럼 학교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지 않은가?
학교에서의 균형잡힌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 다양성을 갖춘 공교육으로 인하여, 대학 입시를 목표로 달려가는 학생들은 분명히 교과 성적 경쟁력을 갖추는데 도움을 줄 사교육이 필요하다. 사교육은 대학의 서열화와 입시 경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직업에 관한 경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대학 및 전공의 서열화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직업에 관한 경쟁은 자본주의 사회가 없어지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경쟁은 결국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기회의 평등을 위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교육 복지 정책을 추가해주는 쪽이 현실적이지, 사교육을 없애자 = 경쟁 자체를 없애자는 것은 자유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사교육의 필요성을 논하는 것은, 자유주의 사회의 필요성을 논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나마나한 허황된 말이다. 한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뜻이다. 사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학생들의 경쟁력을 위해 노력하되, 맹목적인 경쟁력 확보가 아닌 학생들이 원하는 방향의 진로를 먼저 찾도록 도와주고 그 경쟁력 확보의 이유와 필요성을 학생들이 깨닫게 해주는 편이 현실적일 것이다. 그런 것을 하기 위해 공교육에서 진로 및 인성 교육과 다양한 체험활동이 있는 것이며, 공교육이 희생하여 어느 정도 교과 경쟁력을 포기한 부분을 사교육이 채워주고 있다. 꼭 공교육이 선이고 사교육이 악이라는 사고는 현대 사회에서 너무 이분법적인 사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