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생 Oct 25. 2022

직장일은 내 삶이 아니다 - 조용한 사직

너는 일하기 위해 살지만, 나는 살기 위해 일한다.

  최근 "조용한 사직"이라는 용어가 미국에서 등장해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주목받고 있다. 뜻은 다음과 같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엔지니어 자이드 펠린이 플랫폼 틱톡에 '조용한 사직'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면서 유행으로 번졌다 - 일은 네 삶이 아니다. - 사진 출처 틱톡


- 조용한 사직 : 직장을 그만두지는 않지만 시간과 업무 범위 내에서만 일하고 초과근무를 거부하는 노동방식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이는 미국의 20대 엔지니어 자이들 플린이 자신의 틱톡 계정에 올린 동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그 사용이 확산됐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얼핏 보면, 또 MZ 세대가 철없이 돈 받는 만큼만 일하고 그 외의 일은 더 하지 않겠다는 식의 개인주의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몇몇 기성세대는 개인주의적이라며 이를 비판한다. 그러나 이 조용한 사직이라는 말은 단어만 달라졌을 뿐 프랑스 등의 선진국에서는 이미 삶의 일부가 된 당연한 문화라는 것은 알고 있는가? 저 용어를 처음 쓴 미국인(자이들 플린)도 원래 있던 개념을 다른 멋진 용어로 표현했을 뿐이다. '조용한 사직'은 실은 예전부터 프랑스 같은 노동 문화가 선진적으로 자리 잡은 나라에서는 일상화된 당연한 이야기일 뿐이다.


  요즘 많이들 보는 넷플릭스의 작품 중 하나인 '에밀리, 파리에 가다'라는 미드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주인공인 미국인 에밀리는 프랑스 파리의 회사로 1년간 파견을 나간다. 그리고 미국인 에밀리는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일하며 엄청난 가치관의 차이를 경험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대표 격인 미국인의 시각과, 돈보다는 나의 삶이 우선인 프랑스인의 시각은 확연하게 다르다.


  그 시각이 드러나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1. '에밀리, 파리에 가다' 중 프랑스인 직장 동료의 대사 :  너희 미국인은 일하기 위해 살지만(Live to work), 우리 프랑스인은 살기 위해 일한다.(Work to live) 너(미국인 에밀리)의 아이디어는 좀 더 참신하고 어쩌면 더 나을 테지만, 우리는 돈을 더 벌기 위해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할까 봐 네가 온 것이 약간은 두렵다.

 

  프랑스인이 보기에 미국인은 일하며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살고, 프랑스인들은 일과 삶을 분리시키고 행복한 삶을 위해 적당한 돈을 벌기를 원하며 일한다는 뜻을 담은 대사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일화가 있다. 프랑스 해외 지사로 발령이 난 우리나라 사람이, 도착해서 업무 적응 및 성과에 열의를 불태우며 계속 야근하자 오히려 야근을 금지당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프랑스인 상사의 한 마디. 당신은 우리가 오래도록 만들어온,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려 일찍 퇴근하는 문화를 방해하고 있다. 당신 때문에 동료들이 눈치 보며 퇴근 이후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받을 수는 없다.



  2. 프랑스에서는 주말에 일을 하면 "불법"이다. 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퇴근 후 파티에 간다면, 그곳에서 고객을 만나더라도 일과 관련된 이야기는 하면 안 되는 것이 프랑스의 예절이자 문화다. 파티는 파티로서 오롯이 즐겨야만 한다. 미국인의 마인드로 자신은 일이 즐거우며 일을 통해 꿈을 이룬다는 미국인으로서는 당연한 이야기를 파티에서 했을 뿐인데, 에밀리는 프랑스인 동료들에게 일과 돈밖에 모르는 미국인이라며 질타를 받는다.


  이 세 장면만 봐도, 틱톡에서 미국인이 최근에 만들어내었다는 '조용한 사직'이라는 단어가, 실은 프랑스에서는 이미 당연시된 그들의 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프랑스인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삶을 향유하며 전통을 이어가며 그것을 발전시키는 형태의 그들의 문화 산업은 세계 최고 중 하나다. 단순히 '돈'과 '직업적 성공'만이 개인과 나라를 구성하는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일 자체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미국인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일과 삶을 분리시키고 삶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프랑스인이 옳은 것인가? 누가 옳은 것일까? 그냥 각자 생각이 다른 거다! 서로를 존중하면 그뿐이다. 굳이 프랑스의 문화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한 것은 우리가 너무 미국 문화에만 익숙해 있어서였을 뿐이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미국보다는 아직 후진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조용한 사직을 하나의 개념으로 존중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화에 협박이라도 하듯 '조용한 해고'라는 개념을 만들었다고 한다. 조용한 사직을 하고자 하는 이에게 조용한 해고를 형벌처럼 내리겠다는 무언의 협박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 되었을지언정, 서로의 다름과 생각을 존중해주는 선진 문화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성별로 나누고, 직업으로 나누고, 연령대로 나누고, 지역으로 나누고, 정치적 색깔로 나누며 서로 물어뜯기에 바쁜, 혐오의 문화가 만연한 우리나라는 후진적 자유주의의 틀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조용한 사직자들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탁한다, 직업에서 제발 보람을 찾지 말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