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 타인에게 성적인 끌림을 느끼지 않는 에이로맨틱과 타인에게 로맨틱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에이섹슈얼, 그러니까 무성애자. 2022년 1분기 드라마인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에 나오는 두 주인공의 특징입니다. 요즘은 성적 지향도 꽤나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세분화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드라마에서는 이렇게까지 세분화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줍니다.
인간은 소속이 필요합니다. 어느 학교, 어느 회사 이런 집단으로 된 소속도 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규정을 할 수 있는 어떤 소속이 필요하죠. 그렇지 않으면 나란 인간에 대해 굉장히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될 것이고, 그 생각들이 계속되는 한 불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쿠코' 역시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합니다. 주변에서는 사랑을 얘기하고, 연애를 얘기하지만 자신은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이나 연애 감정에 대해 느껴 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 자신이 이상한 사람인지에 대한 생각을 끝없이 합니다. 그런 그녀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드디어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어요. 그녀는 그 사람을 통해 자신에 대해 알아가게 됩니다. 게다가 나 혼자였을 때와 비슷한 사람과 구성된 두 명 이상의 그룹은 그 안정감도 다른 법이죠.
그래서 두 사람은 가족이 되기로 합니다. 우리는 실질적으로 결혼과 출산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가족이 만들어지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성과 결혼하여 1차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2차 가족을 만든다는 것으로 완성이다는 것이죠. 거기서 그들은 법적으로, 감정적으로 연대한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그런 연대를 공통점으로 가져 가족이 만들어진다면, 우리의 무성애자 두 주인공 역시 가족이 될 수 있겠죠. 대사에도 나옵니다만, 세상은 로맨스가 전부인 게 아니고 각자의 행복은, 그러니까 자신의 행복은 자신이 찾으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무성애자는 아니지만,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는 사람입니다. 사실 연애에 대한 생각도 크진 않아요. 다행히 가족들은 저에게 결혼에 대한 압박은 하지 않습니다만, "너 지금은 혼자가 좋다지만 나중에 외로워서 어떻게 하려고 그래."라는 말은 가끔씩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 같은 사람들이랑 모여서 살지 뭐."라고 답했습니다. '사쿠코' 회사 부장이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 같은 건 없다."라고 할 때도 생각했어요. 사랑을 하는 사람도 있고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사랑을 아주 조금만 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라고. 부장의 말에 '사토루'는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합니다. '사쿠코'가 처음으로 '사토루'를 각인하는 장면인데, 그겁니다. 누구 하나 뭐라도 하나, 서로에게 피해가 없이 서로의 마음이나 생각을 존중한다면 알아준다면, 그리고 그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그걸로도 가족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을 하든 안 하든 서로의 니즈가 충족되고 상황이 충족되고 정서가 닿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드라마는 그들이 가족이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들이 가족이 되는 그 자체가 아니었어요. 결국은 그 보통이라는 것들, 평범이라는 것들을 뛰어넘어 그냥 나 자체로써가 행복해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보여줍니다. '사코쿠'가 꽤 다양한 시도를 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점쳐봐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드라마 내내 열어두죠. 연애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깨달을 때까지 말입니다.
드라마는 3화 시작 때 이런 멘트를 오프닝에 내보냅니다. "드라마 안에 성적 접촉 묘사가 있습니다. 사전에 유의해 주세요." 낯설었습니다. 어떤 묘사이길래 그럴까 싶었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알게 됐죠. 아, 키스나 섹스의 성적 행위를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걸. 드라마가 꽤나 정확한 정체성을 갖고 시작됐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꽤 연구를 많이 했고 고심하며 만들었다는 것도 말이죠. 전 무성애자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드라마라니 고마웠습니다. 그저 조금 색다른 소재, 자극적인 소재, 흥미 위주의 소재로 갈무리되는 작품들이 많다 보니 그 점도 좋았고요. 만약 그런 식으로 소비됐다면 분명 두 주인공은 어떻게든 사회적으로 합의되어 있는 구성으로 향하며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요컨대, 무성애자인 줄 알고 함께 살다가 둘이 미묘하게 사랑하게 됐다-같은 것 말이죠.
+ '다카하시 잇세이'의 작품 선택 능력과 캐릭터 해석, 연기는 정말 탁월함을 새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