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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Feb 11. 2023

사랑의 이해

직업에는 귀천이 있고, 사람에는 계급이 있다

'수영'은 재능이 있고, 그 이상의 욕심도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가난하며 파탄 난 집안에서 자라야했습니다. 기댈 곳 없는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며 은행에서 일하기 시작하죠. 은행원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보다 나은 삶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직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곳은 '수영'을 더 지치게 했습니다. 가정 혹은 아버지가 부재한, 회사에서 입지가 약한, 적당히 반반한 외모의 여성인 '수영'은 공공재 수준으로 은행 직원들 특히 남직원들 입에 연일 오르내리게 됩니다. 게다가 '수영'은 고졸입니다. 대졸과 고졸, 그 졸업장 차이로 카르텔이 만들어지는 구조에서 '수영'이 날을 세우고 대인관계에 예민하게 구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상수'에게 계속 확인을 요구한 것이고 그런 이유로 '상수'가 아닌 '종현'을 선택한 거죠. 자격지심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상수'에게 거부 당했다 느낀 그 시점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종현'이 더 마음이 편했을겁니다. '수영'은 자기 기준이 높은 사람입니다. 환경이 그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죠. '종현'에게 돈을 빌려줄 때 보인 통장 내역이 그녀가 자기 기준을 채우기 위한 생활을 하느라 생각보다 돈을 모으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사람에게는 계급이 없다고 배웁니다. 그걸 배우는 이유는 그것이 존재하기 때문이겠죠. '종현'은 믹스 커피를 마십니다. '수영'은 핸드드립을, '상수'는 캡슐머신을 마시고요. '미경'은 드롱기를 씁니다. 커피 하나로도 사람들의 계급은 이렇게 나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내 인생과 네 인생이 엮이게 되는 연애 기간에는 더 많은 것들이 그 계급들을 나눌 겁니다. 그렇다면 그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게 되겠죠. '수영'에게 받은 게 많으면서도 그녀를 믿지 않고 비난하는 '종현'과 '수영'에게 받은 것도 없으면서 그녀를 믿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수' 이 둘 중에 하나가 될 수도 있겠고 사랑하니까 밀어낸다는 '수영'이나 사랑하니까 가져야 한다는 '미경'처럼 될 수도 있을겁니다. 그 외 수많은 카테고리들 중 하나일수도 있겠죠. 혹은 마이너스의 현실에서 0의 현실을 동경하고 0의 현실은 플러스의 현실을 동경하는, 혹은 반대로 돈의 논리를 거부하는 상황도 만들어질 수 있을겁니다.


그러면 <사랑의 이해>는 돈으로 만들어진 연인 간의 계급과 그 사랑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것일까- 생각될 때쯤 '경필'과 '수영'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시작됩니다. 돈으로만 우리가 계급을 나누고 권력을 쥐게 되는가에 대해서 말이죠. '경필'이 사랑에 대해 "남녀 관계에서 무서운 것은 도덕성, 안쓰러움, 연민, 절대 외면 못하게 만드는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들이 사랑 때문에 고구마를 캘 수밖에 없는 게 그 감정 때문인 거고요. 너무 진도가 안 나가는 고구마를 캐는 드라마, 이 드라마에 대해 많이 표현되는 문장일 텐데, 사실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 있지 않았던가요? 그저 지금은 세월이 흘러서 이제서야 달라져 보이는 그 시절 말입니다. 아마 세월이 더 흘러가면 '수영'도 내려놓지 못했던 그때 그 시절에 대해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며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나의 지금 당장의 사랑에는 이해가 쉽지 않으니 사랑으로 자해를 할 수밖에 없지만, 나의 지난 사랑에는 객관화가 되어 제3자처럼 그 사랑을 이해하거나 이해해 보려 할 테니까요. 이런 이야기까지 나오며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이 드라마는 사랑에 대해 현실적인 부분과 감정적인 부분을 모두 건드려주고 있다는 생각에 그제야 제목이 꽤 잘 어울린다 싶더군요.


저는 '수영' 캐릭터가 참 좋았습니다. 정말 다양한 면을 가진 입체적인 캐릭터였어요. 그래서 누군가들은 욕을 했을 테고, 이해 못 하겠다 했을 테고, 누군가들은 동정을 했을 테고, 누군가들은 동질감을 느꼈을 겁니다. '수영'의 자격지심은 굉장해요. 만약 보통의 드라마라면 그런 자격지심은 돈 많은 누군가에 의해 봄눈 녹 듯 사라져 버렸을 겁니다. 그렇게 "구원"이라는 걸 하게 되고 그걸 보는 이들에게 어떤 특정 감정을 주게 돼요. 하지만 '수영'은 그렇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무슨 심리로 저러는 건지 싶을 만큼 자격지심은 계속되고, 그로 인한 현실도피 또한 계속됩니다. 저는 이 부분이 드라마 치고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성격의 사람이라면 "만약에- 만약에-"나 떠들며 어떤 한 포인트에만 계속 머무를 테고, 자신의 자격지심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고여 있을 테니까요. 그걸 들키는 순간에는 도망치고 보겠죠. 회피의 끝판일 겁니다. 그래서 인간적이었고, 그래서 '수영'을 좋아했어요. 좀 더 버티면 그걸 감추는 방법도 알게 될 거고, 좀 더 버티면 숨이 트이는 순간도 오게 될 거라며 언젠가의 나를 떠올리며 약간의 응원도 했습니다.


그래서 결말이 어떻게 처리될지 꽤 궁금했어요. 어떤 아련함이 남아서 후유증이 생기지는 않을까, 그 여운으로 겨울이면 생각이 나려나 그런 생각도 했었죠. 하지만 생각보다는 각 캐릭터들에 대해 정리들을 쭉 해주며 끝이 났습니다. 열린 결말이지만 그들의 감정에 대해 크게 궁금해지지 않고 끝이 났어요. 그건 조금 아쉽습니다. 


사랑에 대해 다양한 입장의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드라마는 꽤 많은 이야기를 파생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는 드라마는 꽤 좋은 드라마죠. <사랑의 이해>는 좋은 드라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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