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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와 멋진 언니들 : 스페인 그라나다 (2)

by 구은서


니콜라스 전망대 앞은 사람들이 역시나 정말 많고 음악 소리가 들려왔는데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있어서 처음엔 어디서 버스킹을 하는지도 잘 안보였다. 시야가 트이자마자 생각했다. '내가 이것을 보려고 그라나다에 왔구나..' 눈앞의 언덕 위에 보이는 알함브라궁전, 그라나다의 평지와 저 멀리 그라나다를 둘러싸고있는 듯한 산들이 조화롭고 아름다웠다. 너무너무 좋은걸 보면 나는 약간 울컥하게 되는데 이때도 그랬다. 그냥 언덕이나 산이었던 저 곳에 궁전을 이런 모양으로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내부는 또 얼마나 아름다울지 기대가 되었다.


버스킹 음악에 맞춰 플라멩코를 추는 아이들도 있었고 어떤 곡은 스페인 사람들은 다 아는 노래인지 떼창하는 광경도 이어졌다. 그러다 일몰 시간에 분홍색으로 변하는 하늘과 마침내 어두워져서 불이 켜진 알함브라궁전을 천천히 계속 보았다. 사람들이 많아서 계속 서있었다. 사방에서 알아 듣지 못할 언어들이 들려오고, 담배연기도 보이고, 한쪽은 여전히 버스킹 음악에 흥겹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모두 해가 저무는 하늘만큼은 똑같이 좋아하는걸까? 어둑어둑해질 즈음엔 내 앞에 앉아있던 사람이 뭔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여기 앉으세요" 하고 나가서 그때부턴 가장자리 턱에 앉아서 봤다. 하늘이 분홍빛이 되었다가 어두워져서 완전히 깜깜해지고 나서도 한참 앉아 그 모든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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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완전히 깜깜해진 9시쯤, 슈퍼마켓을 찾아 빠른 걸음을 걷고있었다. 9시반에 문을 닫는다..! 일찍 닫아버린 숙소 근처 마켓 말고 까르푸 익스프레스로 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이 엄청 많아졌다. 이시간에 뭐지? 하고 더 가보니 거의 지나갈수도 없게 사람이 많았다. 멀리서 점점 다가오고 있는 가마가 있었는데, 가마 위에 있는 것은 성모 마리아 모형 같았다. 위풍당당하다가 어떤 곡은 무겁고 차분하게 연주하는 관현악대의 음악도 점점 커졌다. 성모 마리아 가마가 내 앞을 지나가고 악대가 뒤이어 지나가는 모든 진풍경을 어쩌다보니 거의 1열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악대가 서있을 때 관찰해보니 악기에 셀카봉 비슷한걸 매달아서 악보를 고정해놓고 보면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뭔가 싶어 용기를 내어 옆에 서있던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영어가 유창하지는 않으셔서 '100년에 한번' '종교적' 이라는 단어만 겨우 들었다. 숙소에서 찾아보니 `산타 세나 성체 성사 형제회 (Hermandad de la Santa Cena Sacramental)의 100주년 기념 행사` 라고 했다. 안달루시아 지방에는 가톨릭 단체인 '형제회'가 많고 비슷한 종교행렬을 이벤트로 종종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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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텔에 돌아가서는 독일 언니들과 이야기를 했다. 전날 두 분이서 방에 함께 들어오길래 반갑게 인사를 했었다. 어릴때부터 친했고 한 분이 스페인어 공부했다고 놀러가자고 해서 왔다고. 스무살 넘는 아이들이 있는 분들이었지만 내 맘속에선 걍 언니들. 스몰톡에서 시작해서 딥톡에 가까워졌다. 서로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두 분 다 크리스천이어서 교회 이야기도 했다. 20대 때 친오빠 차를 빌려서 차로 유럽을 여행하고 스페인 근처까지 내려온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때 오빠가 진성 크리스천이어서 'Jesus loves you' 를 차에 커다랗게 써놔서 너무 쪽팔렸다고.... 한창 이야기를 하다가 늦어서 리셉션이 문을 닫았고 드라이기도 빌려주셨다. 호스텔에서 그간 거의 누군가와 이야기를 못하다가 따뜻함과 고마움에 한국에서 챙겨간 작은 주머니 선물을 하나씩 줬더니 엄청 좋아하셨다. 내가 씻는동안 노트에 이름,주소,연락처를 써서 주시면서 혹시 독일이나 벨기에 오면 연락하라고(한 분은 벨기에에 산다) 초대하겠다고 하셨다. 호스텔의 다른 사람들은 커튼 닫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는데 나랑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이심전심이다. 세비야에서 일정이 겹쳐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하고 인사했다.



IMG_1314.JPG?type=w773 세비야에서 정말 다시 만났다 :)


드디어 알함브라 궁전 투어하는 날. 생소한 길로 버스를 구불구불 타고 올라가 도착했다. 고등학교 선생님 느낌의 가이드님을 만나고 신혼여행 온 두 커플, 나처럼 혼자여행중인 언니 한명과 함께 다니게 됐다. 오랜만의 한국어 세례에다 사진 찍으세요~ 하는 포인트마다 최대로 사진찍으면서, 내가 안찍으려고 할 때 한마디 더 얹어서 설득하시는걸 보면서 한국인 모먼트 제대로다.. 싶었다. 사실 예상했기 때문에 가장 예쁜 옷을 입고 갔다. (여행 전체에서 내 사진은 이때 찍은 게 절반을 차지한다.)



헤네랄리페 정원을 나가서 카를로스 왕궁까지 걷는 사이, 지나가며 보이는 나무들에 대한 설명도 듣고 가이드님이 설명을 하다가 갑자기 어떤 식물에 두 손을 약간 거칠게 비비시고 냄새를 맡으셨다. 똑같이 해보라고 하셨다. 내심 깜짝 놀랐지만 조심스럽게 비벼 향을 맡아보았다. 은은한 로즈마리 향이 났다. 코로 받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가이드님 덕분에 무심코 지나쳤던 나무가 올리브나무였다는 사실도 알게됐다. 도시 깍쟁이라 누리라고 펼쳐져있는 자연을 수차례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카를로스 왕궁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학교 현장 체험학습을 나온 기분으로 역사와 건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투어시간이 길다고해서 마음은 먹었지만 역시나 1시간밖에 안지났을 때 이미 발이 좀 아팠다. 헤네날리페 정원 > 카를로스 왕궁 > 알카사바 > 나스리궁전 순으로 다녔고 나중에 투어 순서가 이해가 됐다. 가면 갈수록 더더욱 감탄이 나왔다. 엄청난 수학자/공학자/건축가들. 코딩해서 화면에 그리기도 까다로울 것 같은 프랙탈 같은 기하학 패턴들이 눈앞에 실물로 펼쳐져있었다. '알라 외에는 승리자가 없다' 는 뜻의 아랍어 문장에서 출발해서 만든 문양도 있고 궁전 전체의 자연과의 조화, 성벽을 겹겹이 쌓은 방식, 수로를 사용하는 방식... 같은것들이 천재적이었다. 가우디도 여기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 나도 여기서 영감받아서 뭘 만들고 싶다.. 뭘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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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근처에서는 알바이신 지구가 보였는데, 하얀 집들과 테라코타 지붕으로만 이루어져있는 그곳의 풍경이 꽤 단정하고 알함브라 뷰 못지않게 예뻤다. 어제는 전망대에서 알함브라를 봤고, 오늘은 이쪽에서 그 전망대를 바라보는 구도가 되었다. 양쪽을 번갈아 보니 그라나다가 입체적으로 머릿속에 담겨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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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가 끝나고 서로 사진찍어주던 분과 이야기해서 다시 니콜라스 전망대 일몰을 함께 보고 해산물 맛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나는 2인분만 주문가능한 빠에야를 먹을 기회를 찾고있던 때였고 언니는 해산물과 맥주를 좋아하셔서 딱이었다. 안달루시아 지방은 술이나 음료를 시키면 공짜 타파스가 나온다. 그래서 술 좋아하니까 저녁을 가볍게 먹고싶을 때 맥주 두잔 정도 시키면 식사가 해결된다며... 꿀팁을 알려주셨다. (잘 써먹진 못했다) 한국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친자매 세 명이서 같이 산다며 가벼운 이야기를 하셨는데넘 재밌게 들리고 부러웠다. 저녁 먹은 뒤에는 오징어짬뽕 컵라면이랑 누룽지, 일회용 수저, 효소까지 챙겨주셨다. 나중에 여행하다보니 하나하나가 너무 필요한 상황이 생겨서 몇 번이고 감사했다.


'언니'의 챙김은 정말 섬세하다. 추운데서 받아 마신 따끈한 국물같은 감동이 있었다. 나도 나중에 누군가에게는 그런 언니다움을 발휘해 온기를 건네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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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를 다시 간다면


명소

- 알함브라 궁전 : 호텔, 비행기보다도 가장 먼저 예매해야함.. 투어를 신청하길 잘했던거같다.

- 니콜라스 전망대: 두 번 갔고 세번째도 좋을 것 같다


맛집

- Malamiga : 아침에 가면 줄서서 사먹는 빵집. 마트 빵이 얼마나 맛없는지 느끼게 해준다

- El Pescaíto de Carmela: 해산물 좋아한다면 추천. 한국어 메뉴판도 있다


이번에 못간 곳

- 체력 이슈로 코르도바 당일치기를 못갔다. 호스텔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들 코르도바 너무 좋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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