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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련 Sep 04. 2023

죽어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사람이 애잔하게 느껴지는 이유


토요일 오후 7시경. 남편과 나는 집에서 저녁을 먹고 바로 지척에 있는 대형 마트에 들러 플레이스테이션 5를 사서 나오던 중이었다. 폐점을 1시간 앞둔 마트 입구에는 여전히 카트를 끌고 입장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볼일을 마치고 나가는 사람들까지 더해져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는 사람의 바다를 보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마트 앞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행렬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는데, 바로 앞에 우리와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는 백인 남자와 동아시아 출신으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일주일치 장을 몰아 보았는지 남자가 끄는 바퀴 달린 장바구니와 여자가 맨 백팩이 모두 빵빵했다. 그들도 우리처럼 길을 건너려는듯 횡단보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그 순간 횡단보도 쪽으로 달려오던 차가 보행자를 기다리지 않고 쌩 하니 지나가 버렸다. 삽시에 젊은 백인 남자의 얼굴빛이 울그락불그락해졌고, 지나가는 차 뒤통수에 대고 삿대질과 함께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길을 건너면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운전자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고, 이미 멈춰 선 다른 차선의 운전자에게도 성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전에 거주했던 영국과 마찬가지로 벨기에도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가 많다. 한국이라면 반드시 신호등이 있는 큰 횡단보도인데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이유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보행자가 있을 때 자동차가 멈춰야 한다.'라는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즉,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가 우선이다. 유럽 생활을 시작하고 오랫동안 적응하기 힘들었던 게 바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며 운전자와 눈을 맞추는 일이었다. 달려오는 차의 운전자를 똑바로 쳐다보고 '내가 길을 건너갈 것'이란 무언의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해야 운전자를 덜 헷갈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년간 길을 건널 때마다 낯선 사람과 눈맞춤 하는 것이 여간 고역스러울 수가 없었는데, 그나마 지금은 좀 낫다.


벨기에로 이사한 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면 열에 아홉은 내가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양보받았다. 런던 운전자들에 비하면 브뤼셀 운전자들은 양반 중의 양반이란 생각이 들 만큼 점잖은 운전자가 많았다. 그런데 한 횡단보도에서는 열 번 중에 두세 번은 차가 멈추지 않고 내가 기다려야 했다. 바로 그 횡단보도가 마트 앞 횡단보도이다.


이번 경우에도 교통 법규만 놓고 보자면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지 않은 운전자의 잘못이 맞다. 하지만 그 횡단보도는 회전교차로와 우회전 차량이 동시에 진입하는 길목에 놓여 있다.

시선을 가릴 만한 것은 없으니 운전자는 보행자를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도로를 빠져나오는 것에만 집중하다 브레이크 밟을 타이밍을 놓쳤을 수도 있고, 우회전 후 뒤따라오는 차가 있어 급정거를 못 했을 수도 있다.


길을 건넌 뒤에도 운전자의 사정은 전혀 고려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 남자 뒤에서 넓지 않은 인도를 함께 걸어갔다. 그 남자와 여자는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는데(여자는 내내 듣기만 했지만 아무튼) 내 남편이 영국 사람일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 건지 아님 우리가 들어도 상관없는 건지, 본인의 화를 마구 토해 내고 있었다. 그 남자의 얼굴은 마치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 같았다. 자신의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권리를 빼앗긴 얼굴 같았다. 그때 나는 문득 '화에 대한 역치가 이렇게 낮은 사람의 인생은 대체 얼마나 고단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손톱만큼의 불이익도 절대 감당할 수 없다는 태도가 그를 가여운 사람처럼 느껴지게 했다. 작은 불이익을 겪고 격노하는 사람을 보면 애처롭다. '가진 적은 없고 늘 뺏기기만 하며 살았다.'는 열패감의 표현인 것 같아 애잔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배려가 없으니 갚아줄 배려도 없다는 뜻으로 들려 울적해진다.


물론 나도 큰 손해는 입고 싶지 않다. 누군가 나의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하면 마냥 참고만 있는 싱거운 사람도 아니다. 다만 원칙상 교통 법규를 위반한 그 차는 1초 만에 횡단보도를 지나갔고, 바로 다음 차가 멈춰 주었으므로 보행자인 우리가 손해를 본 시간은 단 몇 초에 지나지 않는다. 법규를 위반한 운전자가 밉지 않은 것은 그쪽에도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고, 입어도 입지 않아도 살아감에 큰 영향 없는 미미한 손해에 대해서는 눈감아 주는 게 내가 견지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채 타인에게 사소한 민폐를 끼치는 순간이 분명 있을 텐데, 그런 때 다른 사람에게 '관용의 마음'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집으로 가기 위해 다른 횡단보도를 건너가며 그들과 길이 갈리던 순간, 실소가 새어 나왔다. 그 남자가 우리 부부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게임기 박스를 들고, 내 손엔 게임 CD 두 개와 초콜릿 과자 두 박스가 들려 있었다. 그 남자는 우리 뒤통수에 대고 "저 사람들은 플레이스테이션 살 돈은 있고 장바구니 살 돈은 없었나 보네."라고 말했다.


'저기요, 저희 집은 마트에서 몇 걸음 되지도 않고요. 이번엔 게임기만 사러 왔던 거라 장바구니는 집에 두고 왔네요. 뭐, 입이 심심해서 초콜릿 과자를 사긴 했지만 아직 제 손이 쓸 만해서 장바구니를 살 필요가 없었답니다.'라는 말은 속으로만 삼켰다. 술, 담배 안 하고 유일한 취미가 식물 키우기인 우리 남편이 반년을 고민하다 산 비싼 게임기에 대한 시샘이 느껴지는 말투가 다분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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