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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련 Aug 24. 2024

[임신 19주] 왜 영국인이랑 결혼을 해서


나는 반려를 만난 후 제대로 된 사랑을 배웠다. 그를 만나기 전의 나는 스스로 져야 마땅한 삶의 무게를 상대에게 얹으며 '사랑하면 견뎌야지'라고 말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사랑이라 우겼다. 그리고 모든 관계의 끝은 언제나 구차하고 지리멸렬했다. 결국 상대를 나가떨어지게 만든 건 나 자신이었다. 스스로 망친 수 번의 연애를 끝으로 사랑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래에 올 모든 인연들도 나를 바꿀 수 없을 거라고 체념했을 무렵 그를 만났다. 반려는 자신의 삶을 통해 '내 삶을 지키며 상대를 사랑하는 법'이 무엇인지 내게 가르쳐 준 은인이다. 반려에게 더욱 감사한 점은 배우자인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첫 번째 직업이라 말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보여줌으로써 신뢰라는 감정 또한 사랑의 다른 모습이란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같은 인생에 두 번은 있을 수 없는 반려를 만났지만, 단 한 가지 여전히 적응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분위기다.


나의 반려는… 영국인이다.


결혼 후 런던 북쪽의 평범한 동네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결혼 전에도 외국 생활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두렵다는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결혼 전에는 일을 하건 공부를 하건 오롯이 혼자였기에 새로운 가족과 함께할 유럽 생활이 기대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반려가 벨기에로 발령받고 이사 오기까지 2년 남짓한 시간을 영국에서 살았다. 두 번의 사계절이 지날 동안의 감회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환영받지 못한 이방인이랄까.


지방 사람의 서울 생활과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어딜 가도 아시아인이 있으니 주목받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정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봐 주지도 않는다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언니 오빠들의 술래잡기 놀이에 낀 어린 깍두기가 된 마음과도 비슷했을 것이다. 어떤 상점에 들어가면 직원이 나에게는 흘깃 눈길만 주고, 내 뒤에 바짝 붙어 들어온 반려에게만 'Hi'라며 인사를 건넸다. 하나의 상점도 아니었고, 한 명의 직원도 아니었는데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나를 투명인간처럼 대했다. 어느 날 내가 이 부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자 반려가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유럽 사람들은 알든 모르든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아시아인들은 모르는 사람과 인사하는 문화가 없지 않느냐고. 그래서 아시아인에게 먼저 인사를 해도 돌아오는 답이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 아시아인에게는 인사를 건네지 않는 것 같다고. 그러니 상점 직원과 눈이 마주치면 네가 먼저 인사를 건네면 어떻겠냐고. 퍽 그럴듯한 논리였지만 이미 속은 상한 뒤였다.


최근 영국의 가짜 뉴스로 인한 반이민 시위가 늘었다는 이유로 영국 여행 주의보를 내린 국가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영국은 나와 반려가 처음으로 함께 살았던 곳이기도 하고, 반려의 부모님이 그곳에서 생업을 이어가고 계시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에겐 일상의 공간이다. 더 이상 영국이 설레지 않지만, 벨기에에 온 뒤에도 1년에 한두 번씩 영국으로 돌아가곤 한다. 임신 19주 차를 보내던 중 다시 영국행 유로스타를 탔다. 그런데 우리가 출발하기 전날, 런던의 중심가인 레스터 스퀘어(Leicester Square)에서 '묻지 마 칼부림 사건'이 있었다는 뉴스가 들렸다. 현재는 잦아들고 있다는 반이민 시위와 연관이 있는 사건인지 걱정이 됐고, 우리 아이에게 별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영국행 열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이동이었다. 바랄 것도 기대할 것도 없긴 했지만 이번에 영국에 가면 반드시 쌀국수를 먹고 오겠느라 다짐을 하고 있었다. 입덧할 때 간절했지만 차마 먹지 못한 그 쌀국수를. 벨기에에 베트남 음식점이 있긴 해도 대부분 생고기를 올려 주기에 임신부에게는 금기의 음식이었다. 몇 달을 고대했던 웰던 고기가 올라간 쌀국수도 먹었고, 영국의 일상을 무사히 보내고 있을 무렵 또 사건이 터졌다. 겨우 2박 3일의 짧은 여정이었는데 지치지도 않고 내가 이방인이란 사실을 일깨워 줬다.


저녁을 먹고 템즈강에서 강바람을 쐬는 것까지는 좋았다. 비록 휴가 기간이라 인파가 많긴 했으나 그것까지 모두 너그러이 이해할 수 있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기분에 취한 반려는 배가 고프지 않다면서도 커피와 벨기에 다크초콜릿이 들어간 크레페를 주문했다. 디저트는 £10 남짓이었지만, 그 풍경과 그 시간만큼은 사치스럽다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꽤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여름날에 비니를 쓰고 그 위로 후드 점퍼에 달린 후드까지 이중으로 모자를 쓴 청소년 두 명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나름 힙합 스타일이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내 눈에는 최대한 피해야 할 존재로만 보였다. 사람이 없는 짧은 계단. 우리는 밑에서 위로, 그들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던 중이었다. 두 명 중 깡마른 남자애가 내 얼굴을 보더니 "잉 잉 힝, 잉 잉 힝" 하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그렇잖아도 내 눈에는 복장 불량 학생들로 보이는데, 술을 했는지 마약을 했는지 모르니 무조건 피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반려의 손을 잡지 않은 손으로 아기가 있는 배를 최대한 덮으려 애썼다.


다행히 별일 없이 스쳐 지나간다고 생각하던 찰나, 갑자기 도끼눈을 뜬 반려가 손에 들고 있던 3단 우산을 높이 쳐들고 그 아이들을 노려보았다. 순간 벌어진 일을 알 수 없었던 나는 처음으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반려에게 놀랐고 또 혹시라도 눈앞에 불량한 이 청년들이 적당히 맛이 간 것이 아니라 인생의 한 치 앞도 못 볼 만큼 맛이 간 녀석들일까 봐 너무나 불안했다. 그때도 내 손은 여전히 배를 가리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나를 보며 경극에서 나올 법한 이상한 소리를 내던 말라깽이는 이미 저 멀리 도망쳐 버렸고, 그 옆에 있던 뚱뚱한 녀석은 마치 '자기 친구가 한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는 듯이 내 쪽은 조금도 쳐다보지 않고, 오직 반려의 얼굴만 노려보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반려를 노려보던 그 눈동자에 '강약약강'인 자의 비겁함과 두려움이 섞여 있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두말할 것 없이 머저리들이었다. 한국어로 반려에게 그만하고 가자고 말했다. 싸울 가치도 없었다. 사실 반려가 자신의 눈으로 이렇게 무지하고 원색적인 인종차별을 당하는 나를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반려의 얼굴이 석양 색과 비슷해져 있었다. 흥분한 반려는 쉽게 분을 삭이지 못했다.


경극 소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그 소리는 중국어를 흉내 낸 것이라 했다. 반려가 한 계단씩 올라갈 때마다 점점 더 뚜껑이 열릴락 말락 하는데, 말라깽이와 눈이 마주쳤고 반려의 눈을 똑바로 보며 실실 흘기는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반려는 속으로 '자신의 나라를 망치는 놈들'이란 생각이 들어 몹시 화가 났고, 몸으로 싸워서라도 다시는 그런 짓을 할 엄두를 못 내게 하려 했다고 말했다. 요즘 반이민 시위 때문에 저런 행동이 부끄러운 것인 줄도 모르고 정당성을 얻은 느낌일 거라며 노여운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렇게 대놓고 당하는 인종차별은 무섭지 않다. 오히려 그들의 어리석음에 헛웃음이 날 정도로 한심하고 딱하다. 그들이 나에 대해 아는 정보라곤 아시아인인 여성, 대략의 나이밖에 없을 텐데 고작 그런 이유로 날 우습게 본다? 그렇다는 말은 100% 속절없는 패배자의 삶이라는 뜻이다. 내세울 것이라곤 백인인 정체성밖에 없는 자들과 싸워서 뭘 하겠는가. 이런 존재들에겐 화도 나지 않는다.


다만 난 이미 어느 정도 티가 나는 임신부였고, 배 속에 아이에게 해가 되는 일이 벌어질까 봐 두려웠다. 반려에게 신경질적으로 그만하라 소리친 것도 또 다른 '런던 칼부림 사건'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나를 약자로 보는 머저리들에게 임신부의 튀어나온 배가 더욱 약점으로 보일까 봐 겁이 났다.


겁쟁이이자 머저리인 자들은 반려의 부릅뜬 눈에 겁을 먹고 꽁무니를 내뺐지만, 반려는 침대에 누워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반려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비록 나에겐 반려의 국적이 유일한 단점처럼 느껴질지라도 반려에겐 자신을 구성하는 CPU나 다름없는 것이 '영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일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딸아이에게 내 나라가 위험한 존재일까 봐 걱정이 돼."


나를 만난 후 이렇게 구슬픈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안쓰러울 만큼 낮게 깔린 목소리가 여전히 귀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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