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과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아련 Aug 08. 2018

내가 개인주의자임을 깨달은 순간

[Book 10]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나는 그저 이런 생각으로 산다. 가능한 한 남에게 폐나 끼치지 말자. 그런 한도 내에서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 하며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 인생을 즐기되, 이왕이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남에게도 좀 잘해주자. 큰 희생까지는 못하겠고 여력이 있다면 말이다. 굳이 남에게 못되게 굴 필요 있나. 고정되고 획일된 것보다 변화와 다양성이 좋고,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선호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살아 있는 동안 최대한 다양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느껴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조용히 가고 싶은 것이 최대의 야심이다.


인간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니 과잉 기대도 말고 과장된 절망도 치우고 서로 그나마 예쁜 구석 찾아가며 참고 살자 싶다.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내가 개인주의자임을 깨달은 순간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 근무지의 특성상 내 취향이 아닌 다양한 책들을 많이 읽게 됐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책에 대한 취향이 꾸준히 변화해 왔지만, 꽤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던 나의 고집은 작가에 대한 편견이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쓴 책보다는 차라리 전업 작가의 책을 더 선호했다. 그러던 중 현직 판사가 쓴 책이라며 새로운 책을 받아 들었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제목과 작가의 직업 사이의 괴리를 느끼며 고개를 '갸웃'했었다. '개인주의'와 '판사'라는 두 단어의 접점을 찾을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선뜻 책 내용이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땐 이 책이 이렇게 유명해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끊이지 않는 의심을 안고 책을 읽어나갔다. (최근 2년 동안 가장 많이 읽은 책이 ‘개인주의자 선언’인 건 안. 비. 밀)






솔직히 말하면 내가 한국이란 나라와 잘 맞는 타입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중학생이 되었을 때쯤 알았던 것 같다. 물론 그때는 몸도 마음도 생각도 너무 '아기아기'했을 때라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 확립이 시작되던 때부터 자연스러웠던 것들이 자연스럽지 않게 됐다.


중학교를 다닐 때 사람들의 눈밖에 난 적이 있었는데 바로 매주 월요일 아침에 시작되는 '전체 조례'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의무교육을 받아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매주 한 번씩 모여 군대식으로 줄을 세워놓고, 애국가와 교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그 시간. 세뇌교육이란 참 무서운 게, 외우지 않은 지 벌써 10년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욀 수 있다. (물론 2007년 개정되기 전의 국기에 대한 맹세를)


여기서 이런 고백을 공개적으로 하면 누군가에게 비난받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할 때 왼쪽 가슴에 손을 얹지 않고, 그냥 차렷 자세로 맹세가 끝나길 기다렸다. 신기한 건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그 맹세를 외는 일이 아무렇지 않았는데. 교복을 입으면서부터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해본 적이 없다. 친구들은 "쟤는 대체 왜 저래?"하며 뒤에서 쑥덕대곤 했고, 선생님들은 은근슬쩍 눈총을 쏘곤 하셨다. 차라리 평소에 사고를 좀 치는 학생이었으면 불러서 달래도 보셨겠지만, 조용하고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데다 공부까지 상위권인 애가 저러니 어떤 행동을 취하기에 좀 많이 애매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그때 누구라도 "너는 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안 해?"라고 물어봐줬으면 대답을 해줬을 텐데, 다들 뭐가 겁이 났던 건지 내 뒤에서만 쑥덕댔다.


사실은 간단했다. "나는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 몸과 마음을 바치기가.... 좀 그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2018.7.18]



언제나 챙겨보려고 노력하는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의 한 장면이다. 이 날의 주제가 '민족과 국민'이었는데 내가 느꼈던 이유 모를 거부감을 다른 사람들도 느끼고 있었다고 해서 조금 안심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긴 하지만 개인보다는 전체가 우선시 되는 사회적 특성을 통해 다른 나라보다 빠른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발전된 사회의 혜택을 받고 자라온 사람으로서, 그리고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이 보여온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 늘 감동하며 살아온 국민으로서, 애국심이란 감정을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기에는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거부감이 심했던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그렇게 성인이 됐다. 태생적으로 전체주의보다 개인주의에 가까운 사람이었던 거다.






내가 생각하는 개인주의적인 성격의 가장 큰 장점은, 좋은 말로 하면 ‘나와 다른 개인을 인정하는 마음’, 안 좋게 말하면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물론 도움이나 관심이 필요한 사람에 대한 무관심을 뜻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는 사회적 약자를 사회적, 국가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무관심의 대상'은 사회적인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모든 사람을 뜻한다.


나는 나와 정말 가까운 사람의 일이 아니라면 가스를 차단해놓은 가스레인지와 같은 사람이라, 궁금증이 점화되는 일도 없다.


무슨 사정으로 취업이 늦어지는지,

어떤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는지,

왜 이성이 아닌 동성을 좋아하는지,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뭔지,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아이가 있는 이유는 뭔지,

다 각자의 사정일 뿐,


"그래. 그럴 수도 있지"한다. 굳이 그 이유를 물어보는 일은 없다.






첫째가 돌도 안된 내 친구에게, 둘째는 언제 낳을 거냐고 묻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처음으로 심각히 고민했었다. 굳이 듣고 싶지 않은 질문을 하는 저의가 뭐였을까. 단지 공감능력 부재의 문제일까. 어차피 큰 관심도 없으면서 무슨 권리로 그런 말을 쉽게 꺼내는 걸까. 이런 오지랖이 이해되지 않았고,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남의 삶에 관심을 꺼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중 이런 얘길 들었다. 사실 별 관심 없는 사람에게 오지랖을 부리는 그들의 속마음엔 ‘불안함’과 ‘지나친 자신감’이 있다고. 다른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인생을 살 때 안정감을 느끼는 게 인간의 마음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삶을 강요하는 거라고. 내가 인간 심리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원래 낯선 것은 두려운 것이 된다. 


배려 없는 질문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불안한 마음의 표출일 뿐이다. 나라는 존재가 더 굳건해질수록 남에게 그런 상처는 주지 않을 테니, 더욱 내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야겠다.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다들 각자 잘 살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그건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