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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토리아 Jun 25. 2024

#11 의미를 찾는 일

주인공

 아침에 일어나니 생일 축하한다는 연락들이 와있었다. 엄마도 옆에서 축하한다 해줬고, 나도 고생했다고 말했다.

 케모포트를 심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생각보다 무서웠고, 생각만큼 아팠다. 누구는 골수검사보다 케모포트가 아팠다고 하던데 나에게 골수검사는 짧고 굵은 고통이었고, 케모포트는 시술시간이 40분 정도 됐기에 그동안 계속 두려움에 떨어야만 하는 심리적 고통이 컸던 것 같다.

 쇄골 밑에 마취주사를 맞고, 살을 째고, 무언가가 내 피부 안에 있는데 그걸 자리 잡게 하느라 선생님이 뒤흔들고, 마지막엔 뭔지 모르지만 ”악! “ 소리 나게 하는 고통이 지나야지만 시술실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엄마가 다가왔다.

 “아팠지? 미안해. 널 튼튼하게 낳아주지 못해서”

 “됐어. 왜 엄마가 미안해. 그냥 일어날 일이 일어난 거야”

 생일날 이 시술을 받는 게 엄마도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 둘은 또다시 눈물 참기 배틀을 하며 병실로 돌아갔다.


 다음 날, 오늘은 내가 림프종 중에 어떤 아형인지 검사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컴퓨터 앞으로 오라고 하시곤 이전에 찍은 PET-CT 결과를 보여주셨다.

 “이 부분, 이 부분은 원래 검은색이고 다른 검은색은 암이 퍼진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놀랍게도 소장 말고도 참 많은 부분이 검은색이었다. 내 몸이 이렇게 될 때까지 몰랐다니... 얘네들은 언제 이렇게 다 퍼진 걸까. 내가 의사 선생님에게 물었다.

 “대충 언제쯤 암이 시작된 걸까요?”

 “증상 발현 두 달 전쯤으로 보여요. 그러니 소장출혈이 3월에 있었으니 아마 올해부터일 거예요. 림프종 혈액암 4기입니다 “

 올해 시작된 암이 이토록 빨리 퍼지다니... 암이 혈액을 타고 다니는 혈액암이 정말 무서운 거란 걸 느꼈다.

 “아형은 '림프절 외 NK/T 세포 림프종‘으로 케이스가 많지 않은 희귀 아형이에요. 스마일 항암요법으로 치료를 할 거고, 3주 항암, 1주 퇴원하는 사이클로 총 6번을 받게 될 거예요. 이 아형은 약이 별로 없기에 항암 1,2차 효과가 없다면 예후는 더 안 좋아집니다. 5년 생존확률은 40퍼센트입니다. 힘내세요 “

 희귀 아형, 생존확률 40퍼센트...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내가 무슨 멜로드라마 속 비련의 주인공도 아니고... 대체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까. 나도 대본 이렇게 안 쓰는데... 주인공한테 이렇게까진 안 하는데... 대체 하느님은 나에게 왜 이러실까. 난 이미 소장출혈만으로도 너무 큰 고통을 겪었는데, 어떻게 그 뒤에 계속 더 최악인 것만 주실까.

 현실감각이 없었다. 림프종 혈액암이라고 진단받았을 때만 해도 그걸 치료하는 항암이 두려웠지 내가 죽을 수도 있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혈액암은 고형암에 비해 4기여도 예후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더 이상 눈물을 못 참겠는지 기도하러 간다고 병실을 나가셨고, 나는 침대에 앉아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며칠 후, 시간이 흘렀지만 난 아직 이게 나한테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고, 이 일이 나에게 왜 일어났는지, 하필이면 왜 이 타이밍인지,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만 계속 생각했다.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연극을 같이 했던 연출님이었다. 연출님은 12년 전에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신 분이었다. 연출님께 전화를 걸어 물었다.

 “연출님은 이제 12년이 지났잖아요. 그럼 그때 그 일이 나에게 왜 일어났는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게 되셨나요? “

 “음... 난 없어. 그냥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넘어갔어. 하지만 ‘의미’는 네가 만드는 거야. 이 고통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너만이 만들 수 있어”

 뭔가 마음이 쿵 했다. 내가 겪고 있는 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건 나라는 사실이.

 전화를 끊고 생각에 빠졌다. 어차피 내가 계속 울든 말든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어차피 겪을 고통이라면 이 고통을 의미 있게 만들자.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대답은 너무 쉬웠다. 그건 바로 글 쓰는 일이었다. 공연을 올리기 위한 글 말고, 나 자신을 위해 쓰는 글. 훗날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고마워할 수 있는 기록을 남기는 것. 그것만이 나에게 의미를 가져다줄 수 있었다.

 그렇게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다. 글 쓰는 일이 직업이 된 이후에 일기조차도 써본 적이 없다. 대본을 쓰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있는 모든 단어와 문장을 써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참 오랜만에 데드라인 없는 글이 쓰고 싶어졌다.

 소장출혈로 중환자실에서 혈압이 60 밑으로 떨어지고, 밑에선 출혈이, 위에선 구역질이 나오던 그 괴롭던 순간 제발 나를 죽여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정말 내가 죽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드니 신기하게도 살고 싶어졌다. 아주 간절하게 살고 싶어졌다.

 나는 꼭 살아낼 것이다. 40프로 안에 들 것이다. 그래서 이 기록이 내 인생에 의미 있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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