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기
두 번째 항암방학을 맞이했지만 다시 유행하는 코로나 탓에 요양병원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혹시라도 코로나에 감염됐다간 항암일정이 미뤄질 수도 있기에 조심하기로 했다. 항암제가 누적되는 탓인지 저번과는 다르게 힘도 없어 침대에 누워 올림픽을 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중간결과를 들으러 가는 외래 전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긍정적인 생각이 치료결과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믿기에 ‘혹시나 지금 하는 스마일 항암이 불응이면 어떡하지?’와 같은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저 어딘가에서부터 올라오는 불안감이 계속 마음을 툭툭 건드렸다.
엄마는 아직도 이 모든 게 꿈같다고 했다. 나에게도 이 시간이 그렇다. 하루하루 잘 버티다가도 순간 ‘어? 나 왜 여기 있지?’ 할 때가 있다. ‘이건 내 삶이 아닌데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 이것이 내가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란 걸 다시금 깨달을 때엔 내 삶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다들 자신의 삶을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뭘 먹어야 토할 때 역하지 않을까’를 고민하며 몇 시간을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참 겁도 없이 살았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이 마련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 것도 모른 채 내가 이뤄낸 것이 오로지 나의 공이고, 내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상 무서운 것이 없었다. 그게 무엇이든지 노력해서 얻어내면 되니까!
그런데 이젠 인생이 무섭다. 너무 무섭다. 좋은 일 뒤엔 나쁜 일이 찾아오고, 이해할 수 없는 역경을 견뎌내야만 하며, 삶과 죽음은 그 어떤 노력으로도 얻어낼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일 중간 결과가 어떻게 되든 엄마와 나는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말자고 다짐을 했다. 그렇게 다짐을 계속 곱씹으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계속해서 잠에서 깼다. 꿈에서 의사 선생님이 약이 안 듣는다고 해서 놀라서 깨고, 다시 잠들었다가도 신약을 써보자는 말에 놀라서 깨고의 반복을 거듭하다 아침이 되었다.
채혈을 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외래를 기다렸다. 내 이름이 불려지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교수님은 약이 잘 듣고 있다고 했다. 그 말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너무 기뻐하지 않기로 했는데 너무 기뻤다. 지금까지 해온 것이 헛수고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희망에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이 약으로 계속 치료해 보잔 얘기를 듣고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엄마는 고생했다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요양병원으로 들어가기 전, 아빠와 셋이 밥을 먹기로 했다. 혜화에 있어 연습을 마치고 자주 갔던 순댓국집이 마침 합정에 새로 생겼다고 해서 그곳으로 갔다. 내 공연을 보고 셋이서 같이 먹었던 순댓국을 오늘은 병원에 다녀와서 함께 먹는다.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은 참 오랜만에 밥을 맛있게, 많이 먹었다.
이제 네 번의 항암이 남았다. 그 치료기간 동안 내 몸의 암이 깨끗하게 다 사라지기를. 그래서 다시 내 공연을 보고 극장 근처의 순댓국집에서 우리 가족이 다시 밥을 맛있게, 많이 먹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