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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젊은 암환자 정모

살아남은 흔적

by 아스토리아

작년 6월, NK/T 세포 림프종 4기를 진단받고, 코가 아닌 장기로 오는 경우는 희귀하단 말에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았지만 나오는 것이 거의 없었다. 내가 받을 스마일 항암에 대해서도 알아보려고 해도 그 치료를 마쳤다는 이들의 후기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때 림프종 카페에 ‘20-40대 젊은 혈액암 환우 오픈채팅방’ 링크가 올라왔고, 정보를 얻고 싶은 마음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와 똑같이 소장으로 온 20대 환우를 만났고, 나보다 앞서서 치료받고 있는 그에게서 정보와 많은 위로를 받았었다.

그렇게 정보를 얻으려 들어갔던 오픈채팅방은 투병 내내 나에게 위로를 줬고, 또 많은 웃음을 줬다. 긍정적으로 투병생활을 하는 분들을 보며 많이 배웠고, 무엇보다 같은 여정을 걷고 있기에 하나같이 다 공감이 되고, 마음이 갔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을 어떻게 이토록 응원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그들이 부디 이 여정을 잘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늘 기도했다.

조혈모세포이식 전, 2주 항암 방학 동안 오픈채팅방 정모가 열렸다. 혹여라도 감염되면 이식이 미뤄지기에 그 누구도 만나지 않던 시점이었는데, 진짜 정모가 너무너무너무 가고 싶었다. 그동안 카톡으로만 수다 떨던 이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스크 쓰고 한 시간만 앉아있어야지!’ 했는데 무려 5시간이나 앉아서 수다를 떨고 왔다. 우리끼리만 할 수 있는 빡빡이 농담부터 시작해 연애 고민 상담, 취업상담, 재발에 대한 두려움, 외래증후군까지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밥은 같이 먹을 수 없어서 수다만 떨고 요양병원으로 갔는데, 그날이 투병 중 손꼽는 행복한 날이었다.

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이후에는 소규모 정모처럼 소소하게 만나서 수다도 떨고, 맛집도 가고, 다음 달에는

속초도 갈 예정이다. 모두 살아온 환경이 다른데 죽음 앞에서 느꼈던 감정이 똑같은 걸 보면 우리 모두 죽음 앞에선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많이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걸...’ ‘이란 생각이 드는가 보다.

젊은 암환우들은 치료가 끝나도 아직 할 일이 많다. 꿈도 이뤄야 하고, 취업도 해야 하고, 사랑도 해야 한다. 하지만 암을 경험했단 이유로 취직이나 연애, 결혼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다. 이토록 엄청난 걸 해냈는데, 그것이 마치 약점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흔적은 결코 약점이 될 수 없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잃은 게 많은 이들처럼 보이겠지만, 하느님의 눈으로 봤을 땐 얻은 것이 훨씬 많은 이들이다. 그러니 이 아름답고 강인한 이들에게 사회가 더 따뜻해지길... 부디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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