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Singapore) -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모든 여행은 두 종류로 나뉜단다. 혼자 떠나거나, 함께 하거나. 그러므로 혼자 여행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직 그 행복의 절반밖에 누리지 못한 것이지. 하지만 동시에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거대한 보물섬을 남겨두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
봄이란 단어가 아직은 낯선, 하지만 그 이름 한 번 불러보는 것만으로 가슴 언저리가 간질간질한 3월의 첫 번째 금요일. 하지만 숨마다 입김이 피어오르는 아침 공기와 달리 설익은 봄햇살은 제법 따갑게 등을 콕콕거렸고, 코트 품 속은 금세 후끈해졌다. 날것들은 종종 이렇게 종잡을 수가 없을 때가 있다.
아침 일찍 삼청동에 있는 카페 D를 찾았다. 이 카페 2층은 내가 아는 곳 중 설렘에 대해 이야기하기 가장 좋은 공간이다. 오늘 이곳에서 하루 남은 싱가포르 여행을 준비할 요량으로 아침 일찍 은행에 들러 환전을 했고, 도시 소개가 적힌 작은 가이드북을 챙겼다. 아이스커피를 들고 좁고 높은 돌계단을 오르니 숨이 차올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만, 이것이 이곳을 설렘으로 기억하게 했던 걸까? 무언가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도 잠시, 내가 오늘 첫 손님인 것을 확인하자 이 공간의 감정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은 좀 더 빨리 뛰고, 손가락 끝이 자릿자릿했다.
커피 한 모금을 목젖까지 길게 빨아올리고 테이블 위에 여권이며 책자, 수첩과 펜을 있는 대로 늘어놓을 때까지만 해도 반나절이나마 여유로이 4박 5일 여행 계획을 세울 생각에 들떠있었지만, 나는 결국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떠나기 전 처리해야 할 원고를 손봐야 했다. 2층 테이블에 사람들이 절반쯤 채워진 열두 시 삼십 분, ’ 이제 저 맘 편히 가도 되죠?’라고 농을 던지는 내게 담당자의 답은 이랬다.
“그런데 작가님, 이번에도 혼자 가시는 거예요?”
며칠간 자리를 비우는 것을 알리는 이메일과 메시지에도 비슷한 답이 돌아왔었다. 아무래도 그들에게 나는 외톨이 여행자로 단단히 각인된 것이 분명했다. 혼밥, 혼영(혼자 영화)에 이어 요즘은 혼행(혼자 여행)이 유행이라지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혼자 여행하는 것은 생소한 일이니까. 하긴, 나도 몇 년 전까지 낯선 도시를 혼자 걷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 적 없었다.
굳이 ‘혼행’이라는 신조어를 붙이지 않아도, 나는 삶 대부분의 시간을 여행과 관련 없이 살아왔다. 다들 배낭여행의 낭만을 이야기하던 대학 신입생 때도 나는 점심시간을 당구장과 PC방 어느 곳에서 보낼지 고민하는 것이 내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스물일곱에 여자 친구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간 일본 여행에서도 나는 그녀가 모두 준비한 작은 여행 프로그램의 참가자에 불과했다. 현지에선 그저 호텔에서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 달라는 말이나 호텔방 열쇠를 안에 넣은 채 문을 닫아버렸으니 도와달라는 요청 정도를 했을 뿐이다. 이런 내가 오 년 후, 회사에 사표를 내고 가장 먼저 여행을 떠올린 것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아마도 당시 TV와 책에서 부르짖던 ‘여행만이 인생의 진리’라는 말에 현혹됐던 것은 아니었을까?
겁 없이 떠난 풋내기 여행자에게 여행은 친절하지 않았다. 차라리 냉담에 더 가까웠다. 여행지의 멋진 풍경들이 주는 감동보다 내가 먼저 떠안아야 했던 것은 먼저 다양한 종류의 결핍이었다. 영하 30도의 겨울 도시에서 빛과 온기에 대한 갈증에 시달렸고, 말 통하는 이 하나 없는 하루를 보내며 저녁 식사 약속을 갈망했다. 철저히 이방인이었던 나는 이 세상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 채 그냥 주위를 겉돌 뿐이었고, 그러는 동안 시간은 떠나기 전과 다름없이 흘렀다. 어느 날 나는 식당에서 메뉴판을 가리키며 짧은 단어 몇 개를 발음한 것 외에는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낮과 밤, 하루와 하루의 경계 없이 눈이 내린 날 나는 울 코트에 패디드 코트를 겹쳐 입고 이름 모를 골목들을 걷고 있었다. 실은 끊임없이 발등에 쌓이는 눈을 내차는 중이었지만. 한참 동안 발 끝에만 머물던 고개를 들었을 때, 유럽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산다는 도시는 거짓말처럼 텅 비어 있었다. 순간 나는 마치 끝없는 설원 한복판에 떨어진 기분을 느꼈다. 외로웠고, 그리웠다. 원망스러웠다. 그때 익숙하지만 한편으로 낯선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대체 이 눈이 언제나 그칠까?”
뒤이어 같은 목소리의 답이, 또 그 답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처음 나와 목소리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나는 내 목소리와 말투에 그토록 귀 기울인 적도, 내게 소리를 내서 말을 해본 적도 없었다. 골목을 나설 때쯤 나는 수다쟁이가 되어 있었고, 다음날부터 여행은 완전히 달라졌다. 넘쳐나는 호기심과 다양한 감각으로 도시를 만끽했다. ‘혼행의 발견’이었다.
여행은 당신에게 적어도 세 가지의 유익함을 줄 것이다.
첫째는 세상에 대한 지식이고,
둘째는 집에 대한 애정이고,
셋째는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 브하그완 S. 라즈니쉬
몇 달 후, 혼자 여행하는 이유에 관한 책을 읽으며 나는 저자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눈 듯한 착각에 흠뻑 빠졌다. ‘맞아, 나도 그랬어!’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수없이 맞장구를 치며 작가의 고백에 동조했다. 한편으로는 나만의 전리품인 줄 알았던 것이 실상은 낯선 도시에서 약국을 찾는 정도의 노력 정도만 있으면 누구든 가질 수 있다는 것에 허탈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혼행에 대한 방향을 확실히 세우는 계기가 됐으니 보상은 두둑이 받은 셈이다. 그 후로 나는 끊임없이 혼행을 꿈꾸고 계획했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는 언제나 단단한 트렁크와 함께 현재의 고민들을 눌러 담은 수첩을 챙겼다. 덕분에 늘 여행 일정 짜는 것은 뒷전이 됐지만, 그런 건 여행 첫날밤 숙소 한편에 누워 대강의 그림을 그리는 정도로 충분했다. 모든 여행은 기대 이상의 설렘과 즐거움을 안겼고, 나는 적어도 하나 이상의 고민들에 대한 답을 얻고 돌아왔다. 원고, 진로, 이별과 그리움, 하다못해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도. 물론 그 답은 어김없이 이제 제법 익숙해진 목소리에 실려 날아왔다.
싱가포르에서도 나는 그간 익힌 혼행의 기술을 발휘했다. 남들 다 가는 마리나 베이(Marina bay),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에서 야경을 감상했고, 서울의 여느 카페 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티옹 바루(Tiong bahru)의 골목을 걸으며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소위 ‘시가’로 판매하는 칠리크랩 한 마리를 혼자 해치우는 사치부터 지갑을 잃어버려 저녁 식사를 굶는 궁상까지 경험도 다양했다. 수첩에 공항까지 갈 지하철 요금 정도가 남아있던 게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하지만 총평을 하자면 싱가포르는 내가 여행하기에는 너무 친절하고 풍요로운 곳이었다. 구역별로 테마가 확실한 작은 도시 국가는 맛있는 음식과 쇼핑거리가 넘쳐났고, 그들을 잇는 교통 시설까지 잘 조성돼 있어서 나는 조금씩 내가 기대했던 혼행에 소홀해졌다. 밤늦게 호텔에 돌아오면 큰 더블 사이즈 침대에 가로로 누워서 겨우 몸 뒤척일 수 있었던 타이베이의 1인실 호텔 방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혼행이 반짝하고 빛을 발할 때가 있었으니, 싱가포르 남쪽 센토사 섬의 팔라완 해변에서 노을을 기다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세 시간’이었다. 오후 네시 무렵부터 해거름이 찾아온 일곱 시 언저리까지 나는 해안가에 놓인 장난감 블록 형태의 돌 구조물에 그저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일행이 있었다면 노을을 봐야 하는 당위성부터 아시아 대륙 최남단 지점인 이곳의 의미, 그리고 기다림을 보상해 줄 근사한 저녁 식사 계획까지 장황한 변명을 늘어놓아야 했을 테니까.
내가 시간으로 사치를 누릴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동하는 동안 소년 소녀,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간식거리를 든 노부부가 나와 함께 잠시 백사장의 풍경이 되었다가 돌아갔다. 다섯 시쯤 한 소년은 내 옆에 놓인 작은 삼각대 위에서 이따금씩 ‘짤깍 짤깍’ 소리를 내며 타임-랩스(Time Lapse) 동영상을 기록하는 물건에 큰 관심을 보였다. 여섯 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자 물놀이를 즐기던 사람들은 썰물처럼 일제히 해변을 빠져나갔고, 나는 텅 빈 풍경에서 한 시간 가량 더 머물며 수첩에 담아온 고민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일곱 시에 나는 붉은 놀이 타는 방향으로 실로소 해변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여행의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기다린 만큼 아름다웠던 색채 앞에서 함께 감탄사를 질러줄 이는 없었지만 그것이 갈증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여덟 시, 하버 프런트(Harbour front)로 돌아가는 케이블카 안은 항구에서 새어 들어온 빛과 낮고 규칙적인 환풍기 소리뿐이었다. 네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케이블카를 독차지한 나는 가만히 발아래 항구를 감상하다 이윽고 등을 기대고 누워 오늘 하루가 괜찮았냐고 물었다. 더운 날씨에 종일 젖고 마르기를 반복한 셔츠에 순간 상쾌한 바람이 들며 답을 대신했다.
내게 혼자 여행하는 시간은 나와 가장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내 목소리를 듣고 말투를 익히는 동안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그리워하고 있는 것, 버려야 하는 것을 알지만 차마 놓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혼행을 꿈꾸고, 누구나 혼자 여행해볼 이유와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가장 믿음직한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을.
“친구를 얻는 가장 좋은 길은 스스로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