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낡은 아파트에만 있었던 것들
눈은 여전히 도시를 향하지만 생각은 어느새 내면 또는 현실을 향해 있을 때가 있다. 그날이 그랬다. 만발한 늦가을 정취로 오후 내내 만취 상태였다가 시야가 어둠에 가리고 찬 공기까지 몇 모금 마시니 취기가 싹 가셨다. 이윽고 떠오른 건 종일 눌러 뒀던 다분히 현실적인 고민. 그것이 가로등 불빛 의지해 센트럴파크를 탈출 중이던 내 뒷덜미를 움켜 잡았다. ‘다음 주부턴 어디서 잘 건데?’
돌아갈 곳이 있었으면, 호텔 말고 집이었으면.
사람은 물론 청설모 한 마리 오가지 않은 오솔길의 벤치에 앉아 다음 숙소를 검색했다. 그 시간이 한 때 유행했던 카피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같은 낭만이라면 얼마나 좋았겠냐만 나는 호텔 체크 아웃을 목전에 두고 있었고 12월 맨해튼 숙박비는 상상을 초월했다. 내가 묵었던 3성급 비즈니스호텔도 1박에 80만 원씩 하는 날이 있었으니까. 이 앱 저 앱을 전전하며 맨해튼 최저가 싸구려 호텔, 호스텔의 12 베드 도미토리, 허드슨 강 너머 뉴저지 민박집에 누워 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방 하나씩 나눠 쓰는 홈 셰어의 장단점도 추측해 봤다. 그리고 다짐했다. 앞으로 그 넓은 땅에 나 하나 잘 곳 없겠냐는 속 편한 소린 다신 하지 않겠다고.
그래도 여기저기 좀 다녀 봤다고 예상외로 빨리 후보가 좁혀졌다. 기준이랄 것도 없는 게 동네가 동네이니만큼 ‘가격 낮은 순’이 전부였다. 다만 형태를 에어비앤비의 집 대여로 한정했다. 지난겨울 유럽 몇몇 도시에서 민박집을 경험해 본 뒤 이러기엔 내가 너무 늙어 버렸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종일 걷고 일정도 불규칙한 내게 단체 생활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았다. 숙면은 고사하고 코골이, 이갈이 합주에 알고 있는 모든 쌍욕 중얼대며 뜬눈으로 보낸 밤이 적지 않았으니. 호스텔 후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분실 사고 역시 주제에 고가 장비 쓰는 내겐 꽤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사실 더 큰 이유가 따로 있었으니 다름 아닌 크고 작은 일, 화장실 문제였다.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내게 배설의 자유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여행하며 절절히 느꼈다. 이에 관해선 언젠가 심도 깊게 이야기할 날이 있으리라. 그 외의 것들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뉴욕에서 독채 구하는 게 몇 푼 더 낸다고 되는 일이던가. 맨해튼, 독채 그리고 1박에 최대 20만 원. 하나씩 옵션을 체크하자 용케도 몇 집이 남았다. 혹시 하는 맘으로 두 손가락으로 천천히 지도를 확대하며 타임 스퀘어 쪽으로 옮겼다. 딱 한 집이 남았다. 그래, 이런 게 인연이고 운명이지.
메모가 되어 있겠지만 며칠 전 천장에서 누수 사고가 있었어. 맥북이 아직 수리 중이니 완료되는 대로 영수증 보낼게.
아 그거 말이지, 우리가 확인해 봤는데 방에는 문제가 없었어. 아주 드라이하던데?
뉴욕에서의 첫 번째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미운 정이나마 정든 호텔과는 마지막 인사마저 순탄치 못했다. 뭐, 드라이? 이거 완전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 아닌가. 묘한 표정으로 이죽거리는 호텔 직원과 실랑이해 봐야 해결은커녕 기분만 잡칠 게 뻔해서 사고 당시 담당자의 명함을 받아 들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당연하게도 이후 보상 문제로 한동안 호텔과 옥신각신해야 했다. 다행이라면 그게 80일 여행의 마지막 불운이었다는 것. 일찌감치 액땜했다 치자.
“킴?” 타임스퀘어 서쪽 헬스 키친(Hell’s kitchen)의 빨간 벽돌 건물 앞에서 케이티를 만났다. 유럽에 있는 집주인을 대신해 나를 맞은 그녀는 곧장 대문을 열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가격에서 짐작하고 지하철 역부터 걸어오면서 확신했던 대로 낡은 건물이었다. 게다가 계단은 사람 하나 다닐 만큼 좁아서 트렁크까지 들고 4층까지 올라가기가 만만찮았다. 금방 몸 후끈해지고 표정도 금세 일그러지는데 때마침 큰 체구 뒤뚱이며 계단 오르는 그녀의 등에 적힌 문구를 보고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It’s my birthday, bitch!
그녀는 이제 열쇠 줬으니 내 할 일 다 했노라며, 이제 이 티셔츠를 선물한 bitch를 만나러 가야 하니 궁금한 건 집주인에게 물어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낯선 아파트에 혼자 남겨진 나는 어색함에 한참을 오도카니 서서 두리번거리다가 일단 화장실로 향했다. 한 달간 살 집에 정 붙이는 방법으로 이것만 한 게 있을까.
낡고 아담하지만 사진에서 본 대로 예쁘게 꾸민, 설명처럼 러블리한 원룸이었다. 벽에 걸린 영화 포스터, 책장을 빼곡하게 채운 책들, 일인용 소파, 선반 위 화분과 LED 촛불들 그리고 무지개 인형. 곳곳에 놓인 소품들이 집주인의 취향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게시판에 붙은 지도며 초상화, 조명의 색까지. 물론 문제가 없지 않았다. 아니 굳이 꼽자면 하루 종일도 얘기할 수 있다. 일례로 샤워기에서 흙탕물이 쏟아진 일을 들 수 있다. 수도 시설을 수리했다는 말을 미리 들었는데도 십 분 넘게 진흙에 가까운 덩어리가 떨어지니 머리 복잡해질 수밖에. 발가벗은 채로 팔짱 끼고 청정수 나오기만을 기다린 우스꽝스러운 그 모습을 찍어 놓지 않은 게 아쉽다. 흙은 그날 이후 나오지 않았지만 수압이 약해서 샤워 시간이 평소의 배 이상 걸리곤 했다. 낡은 나무 바닥도 문제였다. 연신 삐걱거리는 데다 다들 신발 신고 다닌 탓에 웬만한 청소로는 어림도 없었다. 타임 스퀘어가 가까운 탓인지 매일 밤 광란의 질주로 인한 소음에 시달렸고 어떤 날은 총소리에 맘 졸였다. 해가 안 드는 북향인데 간접 조명뿐이라 집이 늘 어두웠던 건 어떻고. 아, 매일 4층을 오르내리는 게 은근히 고됐던 것도 빼면 섭섭하지.
하지만 앞서 말했듯 혼자 자고 쌀 수 있다면야 나머진 대수롭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그 집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11월 말부터 1월 초까지 한 달 좀 넘는 시간이 내가 바랐던 맨해튼에서의 생활로 채워졌기 때문에. 마트에서 장을 봐 와서 냉장고를 채우는 것은 가장 기본이면서 동시에 뿌듯한 일이다. 처음엔 가까운 마트 타깃(Target)에서 당장 오늘밤 요기할 것들을 샀지만 나중엔 생활비를 아끼고자, 식자재 쟁여두러 삼십 분 거리에 있는 트레이더 조(Trader joe’s)까지 가서 양손 가득 장을 봐 왔다. 냉장고 위엔 늘 한인 마트에서 산 라면이 있었다. 숙소를 옮긴 첫날 자축을 핑계 삼아 끓여 먹은 라면 맛을 잊을 수 없다. 그땐 그저 기분 탓인 줄로만 알았는데 실제로 미국 신라면이 한국 신라면보다 맛있더라. 한동안 밴 앤 제리스의 피넛 버터 월드 한 통을 먹는 것도 잠들기 전의 낙이었다. 문득 이러다 무사히 못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줄여 나갔지만.
리본 색깔로 구분한 쓰레기와 재활용품 봉지를 마치 영화처럼 집 앞에 있는 깡통에 넣는 스스로의 모습, 대문 앞에 놓여 있는 택배 박스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는 시간, 매일 아침 지나치는 길목에서 듣는 할머니의 구수한 욕설. 이런 것들 모두 그곳 그리고 그 시절의 낭만이었다. 타임 스퀘어가 지척이라 빈 집 들어가기 헛헛한 날엔 광장 어디든 주저앉아 자정 넘어까지 사람 구경을 했는데 그러다 크리스마스를, 2024년 첫날을 맞았다. 그렇게 양껏 지치고 나서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게, 그게 차가운 호텔이 아닌 포근한 방이라는 게 어찌나 좋던지. 물론 잠시 빌려 쓴 거지만. 여행은 새로운 공간을 탐하는 행위이고 숙소 역시 그 일부다. 그것도 아주 내밀하고 중요한. 매일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는 호텔보다 샤워하고 나오자마자 발바닥 새까매졌던 낡은 아파트가 좋았던 건 그곳이 내가 그 도시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일 게다. 어디서 자고 싸는지가 이렇게나 중요하다.
그 집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더 있다. 하루는 침대에 누워 가만히 빗소리를 듣고 있는데 문득 책장 위에 놓인 트로피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어느 영화제의 최고의 여배우 상 트로피가 아닌가. 그제야 벽에 걸린 영화 포스터가 그녀가 주연, 감독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책장을 빼곡하게 채운 책들은 영화 관련 서적과 대본이었고 소파 위 선반에 놓인 사진들은 그녀의 배우 시절 모습이라는 것도. 또 언젠가는 집 근처 작은 공원에 앉아 있다가 친구가 생겼다. 개와 원반 주고받던 할머니가 다가와 인스타그램 계정이 적힌 쪽지를 건넨 것. 물어보니 영화와 방송에 출연하는 개 모델 문파이(@meet.the.moon.pi)란다.
역시 뉴요커들은 다들 한 가닥씩 하네.
난 언제나 한 가닥 해 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