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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달다 Feb 23. 2024

당신의 멈춤을 진심으로 축하해

그림책 <피아노 치는 곰>, <이야기를 잃어버린 세상에서 생긴 일>


  여기 두 주인공이 있다.

  숲 속의 모든 동물들이 듣고 싶어 할 정도로 피아노를 잘 치는 곰과 이야기를 만들어서 마을 사람들을 경이로운 세계로 날아가게 해 주는 '옛날 옛날에' 씨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이 둘은 어느 날 갑자기 피아노 연주와 말하기를 멈추었고 그로 인해 숲 속 동물들과 마을 사람들은 당황하게 된다.


  모두가 좋아하던 피아노 연주와 말하기는 왜 갑자기 멈춘 것일까?

  모르긴 해도 이 둘은 오랜 시간 동안 피아노를 연주하고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숲 속 동물들과 마을 사람들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문제는 곰이 연주를 하는 중에도 하품이 저절로 날 만큼 피아노를 치는 것이 더 이상 설레지도 않고, 피곤하고 힘에 부쳤다는 것이다. '옛날 옛날에'씨가 갑자기 입을 닫을 만큼 말하고 싶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유를 모르는 혹은 이유 따위는 알고 싶지 않은 숲 속 동물들과 마을 사람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이 느닷없는 문제가 생겼다. 모든 동물들은 다음에 하겠다는 곰의 약속은 듣지도 않고 무조건 '한 곡 더, 한 곡 더!'를 외치며 도망가는 곰을 다그쳤다. 혼란에 빠진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찾고 우왕좌왕하다가 '옛날 옛날에'씨가 다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방법들을 시도했다.


  아무도 그 둘이 갑자기 멈춘 것에 대해 찬찬히 헤아려보지 않고, 진짜 속마음을 들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와 경이로운 이야기만 예전처럼 다시 듣고 싶어 했을 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둘조차 자신들의 마음을 찬찬히 듣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곰은 꽤 오랫동안 자신의 피아노 소리와 숲 속 동물들의 찬사에만 귀 기울였을 것이고,  '옛날 옛날에'씨 또한 이웃들이 전해주는 새 단어들에 신경을 쓰고, 마을 사람들의 감탄을 듣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는 듣지 못했을 것 같다. 만약 그 둘이 조금씩 지쳐가는 자신들의 마음을 좀 더 일찍 헤아렸다면 그렇게 갑자기 멈추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안타깝지만 우리도 그 둘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랬던 것 같다. 피곤하다,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징징댔지아침이 되면 한숨을 쉬면서도 습관처럼 무거운 몸을 질질 끌고 근을 한다. 내가 해야 일들과 주변 사람들의 요구와 아주 가끔씩 돌아오는 칭찬에 귀를 기울이면서 마음의 소리는 한낱 철없는 투정으로 치부하며 제대로 잘 들어주지 않았다. 너무 피곤해서,  약해질까 봐,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애써 마음의 소리를 외면한 그렇게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갔. 


  그런데 그게 잘못인가?

  다들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어떻게 사람이 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 수 있는가? 어른다움과 목구멍이 포도청이즘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자신이 맡은 일과 제 인생에 책임지고 사는 게 맞는 것 아닌가? 그런 사람들에게 잘한다 잘한다 칭찬하고 더 잘하라고 응원하는 게 잘못된 건가? 나약한 정신머리로 어떻게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한번 흐트러지면 다시 정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하던 대로 계속 나아가는 게 최선이 아닐까? 힘들어도 참고, 성실하고 끈기 있게 제 역할에 충실한 게 잘 사는 것 아닌가?


  평범한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고, 우리만의 최선으로 그렇게 다들 살아왔다. 이를 탓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애써 제 마음의 소리를 외면만 하다가는 결국 곰과 '옛날 옛날에'씨처럼 어느 날 갑자기 멈추게 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 잠깐이라도 마음속 목소리에 기울여주고, 그래서 조금씩 숨통을 틔워주었다면 갑자기 멈추는 그런 극단적인 상황미연에 방지할 있을 거라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두 주인공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미 일은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둘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까? 숲 속 동물들과 마을 사람들처럼 그들을 다그치지 않고 느닷없이 멈추어버린 그 둘에게 진짜로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그것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


  김지은 기자의 <태도의 언어>에서 내가 한참을 읽고 또 읽었던 내용은 이랬다. 저자가 병가를 내고 회사를 쉴 때 엄마는 그 시간을 "우물에 물 고이는 시간"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 시간이 자신에게 대체 어떤 의미일까라는 딸의 물음에 엄마는 "1년에 한 번씩 우물 속 물을 싹 퍼내. 장정이 몇 명씩이나 달려들어서 줄을 타고 내려가서 두레박으로 싹싹 퍼내지. 우물 안도 깨끗하게 닦아. 그러고는 뚜껑을 덮어 두지. 그러면 다시 맑은 물이 고이기 시작해."라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시간이 흐른 뒤 엄마의 말은 예언처럼 적중하며 저자는 다시 자신의 마음속에 이야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끼고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옛날 옛날에'씨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온 마을이 침묵 속에 쌓였다는 내용이 몇 페이지나 계속된 것은 어쩌면 이 그림책의 또 다른 핵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림책의 면지가 침묵을 표현했을 때의 마을 벽 모양과 일치하는 것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소진되고 고갈된 내 마음을 다시 나로 채우기 위해서는 깨끗하게 닦아서 맑은 물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옛날 옛날에'씨에게는 침묵으로, 곰에게는 피아노 곁을 떠나는 것으로 표현된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내가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 갑자기 멈춘 '옛날 옛날에'씨와 도망친 곰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로 돌아가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그 둘이 정말로 듣고 싶은 말, 그 둘에게  필요한 말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고민해보려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갑자기 멈추었을 때 그 둘이 제일 당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둘이 계속 피아노를 연주하고 이야기를 말할 때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막상 멈추었을 때 그들조차 어찌할 바 몰랐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비한 멈춤이 아니었으니까 계획된 것이 하나도 없었음이 분명하다. 미리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서 더 무섭고 막막했을 것이다. 한 곡 더를 외치고, 다시 이야기를 해 보라고 요구하는 주변 사람들 말대로 얼른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지쳤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들도 정작 몰랐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의 마음을 조심스레 헤아려본다.


  그렇다면 나는 당황하고 있는 그들에게 일단 따뜻한 차 한잔을 권한 뒤, 잘했다고, 좀 쉬어도 된다고,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러니 부디 안심하라고, 다정다정하게 말 한마디 건네고 싶다.

  그리고 멈춤의 시간을 선택한 혹은 선택당한 당신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그동안 애 많이 썼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그들내 이야기를 조금 더 허락한다면, 나는 김지은 기자의 어머니께서 들려주셨던 '우물에 물 고이는 시간'에 대해서도 전해주고 싶다.

  만약에 아직까지 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사양한다면 곰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어 한 얼룩말처럼 알겠다고 말한 뒤 그들이 혼자 있을 시간을 기꺼이 줄 것이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그땐 첼로를 켜기 시작한 아가피토처럼 아주 부드럽고 나지막하게 혹시나 내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달라고 음을 살짝 전해볼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때가 온다면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지내면서 곰과 '옛날 옛날에'씨의 우물에 다시 물이 고일 때까지 따뜻한 차 한잔을 나누고 시답잖은 농담도 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웃고 울고 할 것이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그러다가 아주아주 운이 좋으면 곰의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다시 듣게 될 지도, 혹은 '옛날 옛날에'씨의 경이로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될 지도.... 그러나 결코 조급하게 그들을 다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다양한 이유로 멈춤을 선택한 혹은 선택당한 당신에게도 꼭 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사실 얼마 전에 나는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에 일 년 동안 휴직하기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관성처럼 돌아가던 내 삶이 갑자기 멈춘 셈이다. 마음으로 몇 번이나 생각했던 을 실행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 사실 얼떨떨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또 다른 고민이 스멀스멀 생겨난다. 이렇게 일 년을 가만히 흘러 보내면 안 될 텐데 싶어서 마음만 분주해지는 나를 보면서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몸도 마음도 힘에 부쳐서 쉬기를 기껏 선택해 놓고 또 무엇인가 해야 할 것을 고민하고 있으니 말이다. 불안과 관성은 생각보다 힘이 센가 보다.

  내 주변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나의 휴직 소식에 놀라워하고, 이유를 궁금해하고, 휴직 기간 동안 뭘 할 건가 물어보고, 그냥 계속 하던 대로 직장 생활을 하는 게 더 낫지 않냐고 다시 생각해 보라는 이들도 있었다. 다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 줄도 잘 알고, 나 또한 그렇게 누군가에게 악의 없이 이야기했을 테지만.... 나 스스로도 이런 선택이 맞나 덜컥 겁이 난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들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중 몇몇 지인들은 잘 결정했다고, 당연히 쉬어도 된다고 이야기해 주어서 고맙고 든든했다. 축하한다고 진심으로 지지해 주고 꽃까지 선물해 준 분도 계셨는데 그땐 울컥해서 눈물이 찔끔 날 정도였다. 오랫동안 애써 온 나를 알아주는 것 같아서, 혼자서 많이 고민하고 선택했을 나를 믿어주는 것 같아서, 어찌할 수 없음을 온전히 이해받는 것 같아서 든든하고 덩달아 씩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나 같은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축하해 줘야겠다고 결심했고, 제일 처음 나에게 축하했다^^

  그림책 <피아노 치는 곰>은 마르크 베이르캄프가 쓰고 에스카 베르스테헨이 그렸다.

  그림책 <이야기를 잃어버린 세상에서 생긴 일>은 구리디가 쓰고 그렸다.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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