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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달다 Mar 28. 2024

길을 잃어버렸나요?

그림책 <지렁이 칼의 아주 특별한 질문>을 읽고

  나는 길치다. 같은 길이라도 갈 때와 올 때의 방향이 바뀌면 같은 길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지형지물을 활용해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방향을 가늠한다는 건 몹시 어려운 미션이다. 당연히(?) 지도 보는 것은 더 젬병이다. 앱을 이용해 내가 가는 방향을 따라 걷는 것도 왜 그렇게 헷갈리는지 왼쪽 오른쪽은 늘 두세 번 왔다 갔다 해야 겨우 분별을 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진짜 멍청이 같은데 사실이 그렇다. 그래서 나의 속 깊은 지인들은 약속 장소를 말할 때 어디로 어떻게 오면 되는지 나에게 좀 더 세세하게 안내해주곤 한다.(친절한 사람들 복 많이 받으시라!)


  어쨌든 낯선 길을 헤맬 때도 많지만 그래서 매번 예상 소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리곤 하지만, 한 번도 도착하지 못한 적은 없었다.


  그런 내가 다시 길을 잃었다. 자주 있는 일에 왜 호들갑이냐고? 문제는 그 길이 물성의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진짜로 내 길을 잃어버렸다.

  그림책 <지렁이 칼의 아주 특별한 질문>은 주인공 칼이 새도 아니고 곰도 아닌, 지렁이라고 밝히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칼은 땅속에서 살면서, 부지런히 꼬물꼬물 움직이며, 땅을 파고, 굴을 뚫고, 떨어진 나뭇잎을 먹어 치우고, 뭐든지 삼키고 뱉어 내면서, 온갖 지저분한 걸 보슬보슬한 흙으로 갈아엎으며 날마다 열심히 살았었다.


  세상의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예전의 나도 지렁이 칼처럼 부지런히 움직이며 날마다 내 몫의 일들을 열심히 하며 살았었다.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기 위해 최고는 못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려고 늘 종종거리고 애를 쓰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왜?"

  어느 날 씨앗을 모으던 들쥐가 물었어요.

  "왜 그런 일을 하는 거야?"


  들쥐가 칼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렁이 칼은 계속 자신의 일을 하면서 날마다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더 평안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질문은 던져졌고, 칼은 자기가 왜 그런 일을 하는지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고? 한 번도 왜 그런 일을 하는지 궁금한 적이 없었으니까. 처음부터 칼은 지렁이였고, 그렇게 그냥 당연하게 살아왔으니까.


  질문을 받은 칼은 당장 대답을 찾고 싶어졌고, 그래서 흙을 보슬보슬하게 갈아엎다 말고 멈춘다. 그리고 해답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나도 칼과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대학 진학을 위해 사범대 면접을 할 때, 그리고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 면접을 할 때 빠지지 않는 질문.

  "당신은 왜 교사가 되고 싶은가?"

  그때의 나는 이렇게 답했었다.

  "모든 직업이 다 가치 있겠지만 그래도 가르치는 일은 학생과 교사가 함께 성장할 수 있어서,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계속해서 키워나갈 수 있어서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치 있는 일을 내가 직접 열심히 해보고 싶다."

  교사가 되기 전의 나는 내 일을 그렇게 믿고 꿈꾸고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던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이 질문을 받고 길을 잃었다.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야?"


     지렁이 칼처럼 어느 날 갑자기 받은 질문이 아니다. 오랫동안 품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변함없이 자신의 일에 재미를 느끼고 열정적으로 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움이 커져갈수록 나는 점점 작아졌다. 나는 왜 그들처럼 내 첫 마음을 잘 간직하지 못하고 잃어버렸을까? 아니면 변한 마음을 인정하고 대부분의 어른이 그러하듯이 그냥 내 몫의 일을 하고 사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달라진 사회 분위기와 학생, 학부모와의 관계, 답답한 교직 사회, 가르치는 일에 몰두할 수 없게 만드는 시스템 등등 외부의 탓으로 돌려보기도 지만 결국 되돌아오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내가 변했고, 내가 무뎌졌고, 내가 사그라들었다. 더 이상 그곳에서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멈추었다.


  대답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 지렁이 칼은 토끼, 여우, 다람쥐에게 묻는다.

  "난 왜 지렁이 일을 하는 걸까?"

  "난 누구를 위해 지렁이 일을 하는 걸까?"

  어떤 동물도 지렁이 칼의 질문에 속시원히 대답해주지 못했다. 그들은 지렁이가 아니었으니까.


 애벌레가 하나도 안 보인다며 울먹이는 딱정벌레로 인해 칼은 문득 지렁이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칼은 몇 날, 몇 주, 몇 달 내내 오물오물 먹어치우고, 뱉어 내고, 굴을 뚫으면서 딱딱한 땅을 보슬보슬하게 갈아엎었다.

  "지렁이가 씨앗을 살려 냈어!" 들쥐가 외쳤다.


  자신이 왜 지렁이 일을 하는지 답을 찾고 싶어하던 칼은 스스로 그 답을 찾았다. 그리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했고, 결국 씨앗을 살려 냈다.

  대답을 찾기 전이나 대답을 찾은 뒤에도 지렁이 칼은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삶을 살겠지만 이미 칼은 예전의 칼이 아닐 것이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은 칼은 누구보다 당당히, 신나게 제 삶을 오물오물 잘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축하해 칼!


  길을 잃었을 땐 일단 멈추어야 한다. 당황한 마음에 허둥대다가는 오히려 경로에서 더 멀리 벗어날 수도 있다. 잠시 멈춰 서서 숨 한번 고르고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아야 한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물어봐도 좋다. 운이 좋아서 바로 대답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라고 하더라도 쉽게 실망하지는 말자.

  

  결국 길을 찾아 발걸음을 떼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


  나의 목적지까지 나를 데려가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그러니 길치라고 너무 걱정만 하지 말고, 어둑어둑 해가 진다고 무서워하지도 말자.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나에게 다정히 물어보고 시간을 충분히 주자. 그리고 내 마음속 대답에 귀 기울여 그 소리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떼어 보자. 그 길이 내가 왔던 길일 수도 있고, 혹은 전혀 다른 길일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어떤 길이든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그게 진짜 내 길이 될 수도 있음을 꿋꿋하게 믿어보자.  


  길을 잃은 나에게 나는 일 년의 시간을 주기로 했다. 올 한 해 동안 내가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일 년 뒤에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찾아갈 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멈춘 시간 동안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서 부디 다시 나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때까지 쉽게 포기하지도, 조급한 마음으로 다그치지도 않기를 바란다.

  지렁이 칼처럼 그렇게 나의 길을 즐겁게 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1. 그림책을 다 읽고 난 뒤 다시 책의 앞표지를 보면 처음과 다른 것을 보게 되는 일이 왕왕 있다. 이번에는 딴딴한 땅 속에 칼이라는 이름을 제 힘으로 열심히 만들어놓은 지렁이 칼이 선명하게 보였다. 자신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왜 존재하는지를 깨닫게 된다는 것은 제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는 의미일까? 어쨌든 제 삶의 이유를 깨닫게 된 칼이 더 씩씩하고 더 당당하게 제 삶의 주인으로 거듭날 것임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 부러움이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언젠가 나도 지렁이 칼처럼 내 존재의 의미를, 내가 나여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고 내 삶을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2. 그림책 <지렁이 칼의 아주 특별한 질문>은 데보라 프리드만이 쓰고 그렸고, 이상희가 옮겼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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