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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달다 May 01. 2024

자세히, 오래, 가만히

그림책 <돌 하나가 가만히>를 읽고

  돌 하나가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물과 풀과 흙과 함께

  원래 모습 그대로

  있던 자리에 그대로.  


  <돌 하나가 가만히>는 생각이 많아지는 그림책이다.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서 보는 사람에 따라 혹은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마음일 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1. 달팽이

  처음 그림책을 봤을 땐 돌 위를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가 눈에 들어왔다. 작고 느린 달팽이가 나 같아서 커다란 돌 위를 혼자서 힘겹게 지나가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체력도 능력도 마음도 모두 바닥으로 떨어지는 시기를 지나고 있었을 것이다. 열심히 하려고 아등바등하지만 언제나 제자리인 것 같고 넘어야 할 산은 계속 내 앞을 가로막는 그런 막막한 기분이 들 무렵, 돌 위의 달팽이는 나 같았다.


2. 돌은 삶 그 자체


  돌은 어두컴컴했다가

  환히 빛났고

  또 시끌벅적했다가

  고요했지요.


  시간이 지나 다시 본 그림책에서는 돌이 보였다. 어두컴컴했다가 빛나고 시끌벅적했다가 고요한 돌은 마치 살아가야 할 삶 그 자체인 듯 느껴졌다. 삶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언제나 꽃길이지도 않고 어두운 터널도 아니듯이 쉽게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어진 시간을 긴 안목으로 담대하게 살아가라고 그렇게 일러주는 것 같았다.


3. 돌은 다른 사람이 보는 나


  누군가에게는 작은 돌멩이, 누군가에게는 거대한 언덕      

  이번에는 그 돌이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나는 그저 작은 돌멩이처럼 보일 때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거대한 언덕으로 보일 때도 있을 거라는 생각 말이다. 혹은 내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 소중한 이들에게는 포근한 사람으로, 나와 결이 다른 사람에게는 거칠게도 보일 수 있으니 말이다.


 4. 돌은 내가 보는 나

  그러다가 다시 책장을 넘기니 '누군가'가 타인이 아닌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는 작고 작은 돌멩이처럼 하찮게 느껴질 수도 있고, 거대한 언덕처럼 우쭐대기도 하니 말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는 나의 안식처가 될 수도 있고, 사는 동안 내가 나의 표지가 되고 지도가 될 수도 있다. 내가 나를 예쁘게 바라보고, 든든하게 믿어주고, 따뜻하게 대할 때 흔들리는 수많은 순간 속에서 돌처럼 중심을 잃지 않고 내 자리를 고요하고 꿋꿋하게 지탱해 나갈 수 있다고 가만히 돌 하나가 이야기해주고 있다.


5. 그리고 다시 희망

 최근에 다시 그림책을 펼쳤을 때 내 시선을 사로잡은 장면은 단단한 돌 틈을 비집고 나온 풀이다. 긴 세월 동안 제 자리에서 가만히 버티고 있던 돌 틈으로 새로운 생명이 나고 자라 기어이 꽃을 피운다. 단단한 돌에 틈이 생기는 것은 상처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있자니 희망이 느껴졌다. 아무 일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그래서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 없이 한순간과 긴 세월을 살고 있지만 씨앗을 품고 끝내 꽃 피우는 돌을 보면서 나에게도 언젠가는 꽃 피는 순간이 찾아오않을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그렇게 나는 가만히 희망의 돌 하나를 내 마음에 올려두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그림책도 마찬가지이다. 자세히, 오래 보면 볼수록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이야기가 들린다. 미처 다 알아채지 못했다고 책망하지도 않고, 그저 편히 쉬었다 가라고, 생각나면 언제든지 오라고, 마치 돌 하나가 가만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그림책은 기다려주고 있다. 나는 일상의 부대낌을 견디지 못할 때면 그림책을 펼치며 물과 흙과 풀과 함께 그렇게 가만히 돌 하나가 된다.


<덧붙이는 글>

1. 그림책의 거의 뒷부분에 나오는 장면이다. 돌 위로 일렁이는 물결의 무늬를 보면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림책은 혼자 보는 것도 좋지만 같이 보고 생각을 나누면 더 즐겁다. 당신도 나와 같이 그림책을 보면 참 좋겠다.


2. 그림책 <돌 하나가 가만히>는 브렌던 웬젤 님이 쓰고 그렸고, 황유진 님이 옮겼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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