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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바스 May 28. 2021

오디오북을 만들고 있습니다 #02

오디오북 제작자 프롤로그 - 2

러시아 유학길에 올라 연극 연출을 전공하고 내 전문 분야를 살릴 수 있는 길은 '연극'을 하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디오북을 만나게 되면서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생각보다 공부했던 연극 연출과 오디오북의 접점이 상당히 많았다. 다양한 낭독자가 등장하는 오디오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성우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나만의 무대를 연출할 수 있었다.


녹음 버튼을 누르고 마주한 책을 보면 아직도 설렘과 긴장감이 나를 휘감는다. 오독 체크부터 인물 연기 하나하나 살펴보며 책과 낭독자와 함께 호흡하며 제작한다. 제작하면서 내가 가장 설레는 부분이 있다. 바로 녹음 시작할 때다. 성우의 멋진 목소리로 책의 첫 말머리를 읽는 순간 '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책이 내 손을 거쳐 오디오북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볼 때면 뿌듯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낭독자의 목소리가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딱딱한 지적인 톤을 좋아한다. 이런 톤이 어울리는 책은 보통 인문, 자기 계발 분야에 분포돼있다. 종종 여러 소설의 나레이션으로도 잘 어울린다. 이런 목소리를 가진 낭독자를 찾기 위해 다양한 성우님들을 섭외해 가며 인문, 철학과 같은 오디오북 제작에 열정을 쏟기도 했다.


에세이를 오디오북으로 만들 때면 유독 작가님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했다. 작가님의 성격, 말투, 외모, 특성 등 궁금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책을 쓰신 작가님을 알아야 정확한 낭독자를 선정할 수 있었다. 한 번은 너무 궁금한 나머지 ***에세이 작가님께 제작 미팅 제안 메일을 보냈다.


수원의 엔틱 한 가구들로 장식된 카페에서 작가님을 만났다. 확실히 직접 만나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다. 암 투병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밝고 유머러스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연령 때도 나와 비슷했고 이야기도 잘 통했다. 비 오는 날 뜨거운 커피를 함께 마시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꼭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 정리된 노트를 펼쳐 여러 질문을 했다. 하나하나 친절하게 답해주신 작가님 덕분에 낭독자 이미지에 대한 갈증도 완전히 해소되었다. 확실히 에세이 분야 작품에서 낭독자를 선정할  때면 작가님을 만나봐야 한다. 그래야 낭독자 선정에 궁금했던 모든 부분이 해결된다. 낭독 톤, 분위기, 템포, 배경음악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나의 첫 오디오는 라디오였다. 어머니께 워커맨을 사달라고 졸라 2000년대 초반 당시 최신형 워커맨을 샀다. 배터리를 바꿔 끼워 가며 밤새 라디오를 듣곤 했다. 감성에 젖어 소박한 사연과 신청곡을 인터넷 게시판에 매번 올렸었다. 매주 한 번씩 사연을 올렸지만 미숙한 내용으로 작성했던 터라 공개된 적은 없었다. 사연 대신 신청곡은 여러 번 들려줬다. 내 이름을 불러주던 라디오 DJ의 목소리에 설레어 심장이 뛰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지금은 운전을 할 때 좋아했던 방송국 채널을 틀어 놓곤 한다. 어린 시절 반가웠던 목소리는 사라져 아쉽지만 라디오를 들을 때면 그때의 추억이 종종 떠오르곤 한다. 나의 오디오 이야기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지금은 업계에 종사하며 재미있고 획기적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다. 매일 아침 출근해 오디오 시장 동향을 살펴보고 가능성 있는 분야를 찾아 접목이 가능한지 스스로 테스트도 해본다. 넷플릭스를 보는 것보다 오디오 콘텐츠가 훨씬 더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매력을 발굴하고자 오늘도 녹음실에서 혼자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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