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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Jan 01. 2020

2019년을 돌아보니

오늘은 2019년 12월 31일. 어김없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 왔다.


일도 바쁘고 딱히 시끌벅적하게 놀고 싶은 욕구도 없어 이번 12월은 다른 달들과 비슷하게, 일상적으로 보냈다. 그러다가 어제 부모님이 계신 집에 내려와 조금 비일상적인 날을 보내는 중이다. 그런데 비일상적인 시공간에 들어와있다 보니 올해를 돌아봐야 한다는 압박감이 든다. 나쁜 일은 아니지만 예기치 못했던 일이다.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면 카스 한 캔 마시며 '방구석1열'을 보다가 나도 모르는 새 1월 1일을 맞았을 텐데.


어쨌든 그 압박감을 애써 무시하려 하지 않고 한번 올해를 돌아봤다. 있었던 일은 잘 기억나지 않고 개봉 영화들이 떠올랐다.


"1월엔 계속 <로마>의 여운이 있었지. 아 그리고 2월에는 <콜드 워>. 좋은 영화 한 편이 더 있어서 다행이었다. <메리 포핀스 리턴즈>가 3월에 개봉했던가? 딱히 재밌게 본 건 아니지만 그게 떠오르네..."


이런 생각을 하다가 금방 정신 차리고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영화관 프로그래밍 일을 하고 있다. 매주, 달달이 영화를 개봉시키다 보니 그 시간 단위에 익숙해져서 시간이 빨리 간다. 이번주에 어떤 영화를 개봉시킬지 고르는 일을 4번 하면 한 달이 지나고, 그런 주기를 12번 걸치면 한 해가 가는 것이다. 또한, 특정 시기를 그때 개봉한 영화로 기억하게 됐다는 것은, 방금 알게 된 조금 충격적인 일이었다. 나는 내 일에 애정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치관이 '워크 = 라이프'가 되는 것은 (적어도 아직까진) 받아들일 수 없다.


다행히 사진 앨범을 거슬러 올려보다 보니 올해 있었던 일이 하나 둘 선명해졌다. 여태 살면서 내가 시도해볼 거라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두 가지(유튜브와 그림)나 해본 나름 도전적인 한 해였으며, '떼쟁이' 회사 강아지의 떼로 괴로워하는 일보다 애교로 즐거웠던 적이 더 많았던 한 해였다. 여전히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남자친구가 있었으며, 매일같이 보는 직장 동료들과 종종 특식을 먹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으며, 오랜 친구들의 얼굴도 간간이 보았다.


반면, 2018년에도 2017년에도 2016년에도 그랬듯이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고, 이에 올해에도 뼈아픈 후회를 하고 있다. 봄에 집에 내려왔다가 부모님의 어떤 말에 상처를 받고 이후 우울하게 보낸 몇 개월의 시간도 아깝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길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 시간 관리를 잘 하는 야무진 사람, 쉽게 상처 받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올해는 나의 '어쩔 수 없는' 단점을 많이 바라보게 됐다.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됐다고나 할까. 그것으로 위로를 삼아 본다. 이로써 2020년 말에는 자신에 대한 실망을 좀이라도 덜 하게 될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원했던 만큼 하지 못했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될까. 아니, 애초에 내가 이룰 수 있는 만큼의 목표와 계획을 잡고 나아가는 한 해가 된다면 훨씬 좋겠다. 많은 걸 이루진 못하더라도 맞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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