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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쌤 Dec 06. 2020

나는 어쩌다 영어강사가 되었나

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1

하라는 대로 성실히 살아온 장녀들은 으레 한번쯤 들어보는 단골 멘트가 있다. ‘커서 선생님 하면 되겠네!’ 지금 생각하니 무슨 의도로 한 말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멘트다.  그때는 그냥 내가 동생들 앉혀놓고 모르는 걸 잘 가르쳐 주니 그런 말을 하는 줄 알았다.      




 “사회적 수요와 대학이 양산하는 졸업생이 양적·질적으로 매치가 되지 않는다. IT 분야는 사람이 없어서 외국에서 데려오고, 사범대는 2만 3000명이 졸업하는데 임용되는 인원은 4600여 명이다. 지금처럼 모든 대학이 인문대학을 하면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교육재정 문제까지 맞물려 심각하다.”

-2015년 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 인터뷰 내용     -



  2010년대 들어서면서 임용 선발 인원이 눈에 띄게 줄어버렸다. 함께 입학한 동기의 숫자는 약 서른 명, 시험을 치르는 현역, 재수, 삼수생, 교육대학원생들까지 경쟁률은 어마무시했다.      

연일 뉴스에서는 수치로 압박을 가해오고 실제로 당시 졸업 예정자들이 느낀 압박은 더했을 것이다. 높은 경쟁률에도 불구하고 임용에 도전할 것인가?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짧게는 2-3년 길게는 더 걸리는 임용 공부 시간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 진로에 대한 고민을 너무 오래 하다 보니 졸업은 오래 걸렸다.   

   

  4학년 1학기, 군대 다녀온 동기와 함께 늦은 교생 실습을 나갔다. 교생실습은 사범대 학생들에게 하나의 지표가 된다. 학생들과의 교감, 교직의 장점을 확실히 느끼고 임용에 몰두하게 만들 수 도 있고, 공교육과 나의 궁합을 판단하고 공직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게 만든다.     

나는 후자였다.      


  ‘교단에서 다시 만납시다.’ 

교육실습 마지막 날 수석 교사님의 한마디는 나를 울릴 뻔했고, 현장에서 직접 만나는 아이들의 변화는 나를 감동시켰지만 거기까지였다. 교생 실습을 다녀온 6월,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나는 완전히 공교육을 내 진로에서 제외시켰다. 통역 알바를 종종 나갔기 때문에 통번역 대학원을 진학해볼까, 고민도 했지만 대학 졸업이 취업을 보장하지 않듯, 대학원 진학이 취업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나는 집에서 더 이상의 지원은 기대하기 힘들었고 그렇게 밥벌이를 하러 사회로 나가야 했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고소득을 내는 것은 결국 티칭(Teaching)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영어 강사 일을 시작했다.   


   -


  과외와 학원일은 사범대생들에게 너무 익숙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임용 실패자라는 불명예가 따르기도 한다. 다른 업계에서 사범대생들의 취업도전을 반기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그 당시 나는 그런 자각도 없었다. 심지어 학원 강사의 취업 문턱이 낮은지도 몰랐다. 업계 조사를 너무 하지 않은 채로 뛰어든 것이다. 나만 잘하면 되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한 일과 이렇게 잘 맞을지 몰랐다. 아직도 종종 지인들은 ‘임용 안 칠 거야? ‘ 하는 이야기를 한다. 아마 강사를 거쳐 가는 과정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교생 실습 중,  담당반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데리고 교장, 교감선생님, 수석교사 선생님, 영어과 지도 선생님, 동료 교생 선생님들까지 모두 참관하시는 대표 공개수업을 진행했다.     


 Festival, Food, Culture     


이 단어들을  중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따라 읽어보자고 말했다. 아이들은 또 성실히 따라 읽는다. 

학교 수업시간에 함께 공부하는 단어의 수준은 Festival 이면서 중학교 3학년 시험 문제로는 소유격 관계대명사, 현재 완료 진행 등 용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이 나온다.      

나는 정작 내가 학생일 때도 느끼지 못했던 실제 수업과 시험의 난이도의 괴리를 너무 크게 느꼈다. 활동 위주의 수업,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 맥락 속에서의 단어 공부 다 좋은데 그렇게 공부하면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 점수가 안 나온다.     


고등학교 가서는 갑자기 난이도가 훅 뛰어서 중학교 수준의 공부만 따라가고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중학생들은 고1 모의고사 평균적으로 4-5 등급이 나온다. 그리고 그것을 3년 안에 1-2등급으로 올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나는 학생들의 실력을 올려줄 수 있는 수업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내 편협한 시각으로 그것은 공교육에서는 불가능하게 보였다.     




  학교현장에서 일하는 교사들은 해내야 하는 업무가 너무 많다.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20~ 30명을 한 반에 앉혀두고 중간 수준에 맞춰하는 수업에서 학습을 끌어내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수준 별 수업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완을 하고 있지만 공교육의 궁극적 목표에 대해 생각해보면 학교에서는 영어 말고도 배워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학교에서도 수준에 맞는 수업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 한 명이 해내야 하는 업무가 해당 과목 수업 이외에도 너무 많기 때문에 질 좋은 수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가 여전히 의문이다.      


그 필드 안에서, 현재는 불가능하지만 앞으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을 두고 나는 경로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여전히 공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나의 선배와 동기, 후배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      

나는 교사(teacher)가 아니라 강사(Instructor)가 되기로 결심했다. 


최소한 영어가 복잡한 공식이 아니라 그냥 언어라는 것을 알려주고, 외국인 만나면 겁먹지 않고 대답할 수 있게 해주자. 말을 유창하게 할 필요를 못 느낀다면 올바른 읽기 방법을 가르치자. 정보의 90%는 영어로 되어있다는데 영어로 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해주자. 여행 갈 때 네이버 블로그가 아니라 구글에서 직접 영어로 검색할 수 있게 해주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할 때도 영어점수를 요구하는 이상한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영어점수가 발목을 잡는 일은 없도록 해주자.     


거창한 꿈같은 것이 있었던 게 아니다.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없다. 그 선생님한테는 뭔가를 배웠다고 기억할 만한 강사가 되고 싶다. 단지 그뿐이다. 


이 글은 대학을 졸업하고부터 줄곧 누군가의 선생님으로 살아왔던 나의 시간과 경험이 몽땅 담긴 글이다.

강사로 일하고 있거나 강사로 일해볼까? 하는 생각을 가진 누군가에게 재미있게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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