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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쌤 Sep 12. 2021

쌤은이거 다 알아요?

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31


신규 학생이 왔다. 영어 공부 이력이 그리 길지 않아서 모르는 단어가 많은 중학교 1학년. 자유 학기제의 영향으로 처음 준비하는 2학기 중간고사다. 한창 공부하기 싫을 나인데 스스로 학원을 오겠다고 결심했다니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 안녕? 네가 M이구나, 내신 대비 처음이니까 열심히 해보자"

" 네 " 




장난기 넘치는 얼굴, 반 아이들과도 이미 아는 사이라서 금방 적응하겠다 싶었다. 친해지면 꽤나 개구쟁이겠구나 싶었다. 과연 M의 대사 하나하나가 심상치가 않다. 최근 내가 관리하는 반에는 신규생이 없기도 했고 얌전한 친구들이 많이 들어와서 이런 타입(?) 도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 자, 지난 시간에 단어 시험 친다고 미리 말했지? 지금 책 덮고 5과 단어 시험 봅시다 "

" 쌤! 쌤은 이거 다 알아요?"


M이 시험지를 한 손으로 팔랑 거리며 비뚜룸하게 나를 보며 묻는다. 다른 아이들이 무슨 소리냐며 나를 대신해서 M을 쳐다본다. 아이들의 눈초리에 뭔가를 느꼈는지 목소리는 조금 작아지지만 멈추지 않는다 


" 아니, 쌤도 시험 치면 백점 맞는지 궁금해서.. "



몇 년 전에도 저런 과외학생이 하나 있었다. 쌤도 모의고사 치면 다 맞냐던 3등급 받던 K. 눈으로 보여줘야 하는 타입인 거 같아서 "내기할래?" 던졌더니 덥석 문다. 본인이 랜덤으로 고른 회차 시험지로 시간 재고 똑같이 풀어서  100점 맞는 거 눈앞에서 보여줬더니 그 뒤부터는 무한 신뢰 눈빛 장착하고 잘 따라왔다. 물론 내기의 대가로 숙제는 배가 되었다. 아무한테나 먹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타입이 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저런 도발에 넘어가서 장단 맞춰주기에 중1은 아직 너무 베이비다. 아직은 귀여우니 넘어간다. 한 번으로 끝났으면 귀여웠을 텐데 예상 가능하게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 쌤 weigh 랑 weight 랑 똑같은 거 아니에요? 제가 보기엔 똑같은데 그냥 맞다고 채점할게요"

" 이거도 꼭 다 써야 해요? 쓸 필요 있어요? "

" 이것도 풀어야 해요? 안 풀면요?'

" 이거도 다 숙제예요?  "


이 학생은 그냥 버릇이 없는 게 아니다. 처음 보는 선생님에게 기싸움을 거는 거다. 이렇게 하면 숙제를 줄여줄까? 이렇게 하면 그냥 넘어갈까? 어디까지 해도 혼을 내지 않을까? 학생들은 아주 예민하기 때문에 물렁한 선생님과 그렇지 않은 선생님을 단박에 구분한다. 학교 버전으로는 수업시간에 엎드려 잘 수 있는 선생님과 잘 수 없는 선생님이 있다. 


 ' 집에서 하는 추가적인 복습이 학업성적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이유', '중학교 내신 준비에 있어서 본문이 차지하는 비율' 이런 궁금증에 대해서 선생님도 하나씩 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단다. M, 하지만 지금은 수업시간이라서 그걸 할 시간은 아니야.  


설명해도 못 알아들을 말을 삼키고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봐주면 "아, 아니에요" 하면서 연필을 잡는다. 보니까 눈치는 빠른 편이다. 



아이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말하면 안 되지만 아이를 아이로 대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격하지 않으면서 일관적으로 행동해야 하다. 목소리를 높이고 험한 말을 하고 액션을 크게 하는 선생님만 무서운 선생님이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 실력만큼이나 카리스마가 강사의 필수 조건이라는 많은 선배 강사님들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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