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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쌤 Dec 21. 2021

완전한 행복, 무엇을 빼고 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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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얼마 전 서점 갔다가 내 취향을 훔쳐본 듯한 기획전에 무참히 패배하고 항복 선언을 했다. 그때 안아온 책 두 권 중 한 권. 출근 전 펼쳤다가 출근 못 할 뻔했다.


'자기애의 늪에 빠진 삶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처음에 책이 궁금했던 건 저 문구 때문이었다. 자기애와 나르시시즘. '그래서 뭐?' 하는 마음으로 책을 들었는데 오히려 마음에 박힌 한 줄은 다른 것이었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누군가가 그린 하나의 우주는 내 것과 너무도 다른 것이어서 무엇을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주인공의 의도와 작가의 의도도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저 말이 내 인생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안다.


나는 많은 것을 못 본 체한다. 블러 처리도 종종 한다. 안 보고 싶은 것은 잘 안 본다. 내 인생에서는 영화도, 드라마도 예능도 거의 없어진 지가 꽤 되었다. 전부 제거할 수는 없더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들이 오징어 게임 코스튬 하면 뭔지 아는 척은 해줘야 한다. 내용은 모르더라도 말이다. 청소년 관람 불가 아니었나? 잔인한 내용이 아니었나? 머릿속에 따라오는 물음표는 모른 척한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길어지고 대부분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억지 개연성과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에 화가 났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오류에 대해 소리칠 자신도 능력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내 인생에서 그것들을 지워버렸다. 불행의 원인을 제거하니 내 인생은 편안해졌다. 행복에 가까워지는 듯했다. 하지만 실상은 모른 척하는 것이므로 다른 누군 가가 그것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 혼자 모른 척하는 죄책감을 느낀다.


매년 빼 먹지 도 않고 돌아왔던 명절날, 나와 여동생 그리고 엄마와 숙모는 왜 부엌에서 차가운 바닥에 앉아 밥을 먹어야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를 사랑한다 던 아빠와 사이좋은 막내 남동생은 왜 우리를 안방으로 불러 같이 밥 먹자고 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여전히 의문스럽다. 스무 살이 된 나는 간편한 해답을 내놓았다. 가지 않으면 된다. 어차피 그들도 내가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트러블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삶에서 명절과 제사를 빼버렸다. 이렇게 간편하게 해결될 문제였다. 응답이 없는 물음표에 눌려있던 어린 내가 안쓰럽지만 현재는 그 조차 잊어버렸다. 거슬리는 것을 또 하나 제거했다.

그 외에도 내가 인생에서 빼버린 것들이 있다. 트러블이 예상되는 관계, 내가 대응할 수 없는 예민함, 지나치게 촉박한 데드라인 같은 것들. 그런 것들 말이다. 


무엇을 빼야 할까, 무엇을 더해야 할까. 앞으로 더 빼고 더해야 할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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