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 청사진 그리고 역사
도면 스캔해서 가져와
누구나 뭔가 스캔해서 가져오라고 일을 받으면 꽤나 지루한 일일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처음 회사에 들어가 배치받은 부서는 엔지니어링 관련 부서였고 임시 책상을 받았다.
단 몇 주 후에 해외 현장으로 OJT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사무실 주변 책장 안에는 두꺼운 설계 관련 서적과 A3 용지로 된 도면집들이 많았다.
특히 지금 거의 찾아보기 힘든 청도면(blueprint drawng),
청도면을 처음 보았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앤틱하지만 사람의 손이 직접 닿아있는 예술성, 그때는 도면을 해독하진 못했어도 '어떻게 이렇게 그릴 수가 있지?'라는 경외감으로 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선배 직원이 도면을 스캔해오라고 하면 이때 도면이 너무 좋아서 스캔한 도면을 내 pc의 저장 장치에 즐겨 넣고는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막상 형광펜 들고 도면 하나하나 체크하기 시작할 때는 결국 현실이긴 했다.
청사진을 그려볼까
도면에 대해 더 이야기를 들어가 보자.
도면은 사실 중요하다고 더 이상 강조하지 않아도 이미 일상과 모든 산업 에서 흔하게 사용하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대학 진학 설계, 결혼 설계, 사업 설계 등등 설계란 말을 참 많이 쓴다.
뭔가 계획을 하고 구상을 해서 구체화시켜나가는 작업이 설계라고 할 때, 그것을 도식화한다면 설계도(설계도면)라고 말한다.
대학 진학 설계도라고 하면 일단 누구나 이해될 수 있는 도식으로 구체화시켜놓은 거라고 생각되지 않을까.
‘청사진’의 말의 어원도 ‘청색 사진’에서 나온 말로 건축, 기계 도면 등을 복사할 때 쓰는 사진이 청색 사진이었다.
원래 도면을 그린 용지와 감광지를 복사기에 넣으면 원래 도면에서 선이나 문자 등은 하얗게 남고 투명한 바탕 부분이 파랗게 변해서 청사진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시작된 청사진이 미래에 대한 계획으로 의미가 확장된 것은 그만큼 설계도는 목표한 것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던 거다.
내 청사진은 지금 ‘saffy’와 함께 본격적으로 그려가고 있다.
간결하며 많은 정보를 담아내는 종이 반도체
도면에는 설계자의 의도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많은 정보를 넣으려고 한다.
도면에 먹물이 묻히는 순간 그것은 절대 사용되어야만 하는 정보가 된다. (개인적으로 수학 문제의 질문 내용 중 단어 하나하나를 그렇게 생각한다.)
MECE (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 상호 배제와 전체 포괄)는 “미시”라고 읽고 “상호 중복과 누락 없이 전체 정보를 포괄해야 한다는 논리적 개념”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에서 처음 용어를 쓰고 수많은 비즈니스 컨설팅에 사용된 유명한 분석 툴이다.
오랜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도 MECE 개념을 잘 반영한 환상적인 인간의 결과물은 단연 도면일 것이다.
4000 년 전에도 도면은 있었다
비록 초기 형태의 스케치일 수 있지만 건축 도면은 기원전 2200년 메소포타미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전과 동상의 거대한 건축물을 설계하면서 건축 도면을 활용했다.
그리스 로마 시대 역시 지중해 연안에 널리 분포한 석재를 이용해 정교하면서 웅장한 고대 건축 유산을 남겨놓았다. 이처럼 고대에 이미 도면의 초기 형태인 스케치를 통해 건축물들을 설계했다.
이러한 스케치 형태의 도면들은 15세기 전후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시작된 르네상스의 건축에도 꽤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미술, 수학 그리고 인문학을 두루 갖춘 천재적인 르네상스인들이 도면을 활용한 건축 기법과 구조 공학을 융합하며 더욱더 웅장하고 다양한 공간을 표현할 수 있는 구조 양식으로 발전시켰다.
재밌는 것은 르네상스가 많은 현대 유산의 기틀을 잡은 것처럼,
점차 도면에도 많은 정보들이 들어오게 되고 현대 도면 형태의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르네상스를 거치며 건축물들을 거대하면서 예술성까지 고려하며 복잡해지다 보니, 작업자들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작업의 과정, 건축가의 의도, 더욱더 상세한 부분을 표기하기 위한 디자인 패턴 북 등, 도면에 수많은 정보들이 들어왔다.
도면과 비즈니스
이러한 도면에 넣고 싶은 정보들이 많아지면서,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 약속을 하게 되고 도면은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어갔다.
이렇게 발전해 온 도면들이 바로 로봇, 기계 장치, 건축물, 비행기 들을 상상을 현실로 만들게 해 준 도구이자 언어가 된 것이다.
이쯤 되면, 뛰어난 창의적인 사업가들은 도면을 어떻게 하면 잘 그리고, 쉽게 그릴 수 있고, 공유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도면 작업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 해결로 시작한 대규모 비즈니스가 지금 우리 옆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