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누리는 도면의 혜택, 그 시작
도면통, 지금도 많이들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대학시절 도면통 들고 다니는 모습을 참 많이 봤다.
나는 공대생이었다 보니 도면통으로만 보이지만 다른 쪽에서는 미술 화구와 도화지를 넣고 다닌다고 해서 화통, 지통이라고 불렀단다. 지금도 도면통 판매 사이트를 가서 보니 디자인은 여전히 한결같다.
그 당시 도면통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참 매력적으로 보였다. 특히 도면통을 어깨에 맨 여학생은 더 눈에 띄고 그 시절 소수만이 누리는 공대녀의 존재성을 드러내기 충분했다.
그 안에 과연 도면만 넣고 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면통에 넣고 다니는 도면들이 4차 산업혁명 AR, VR, 3D 프린팅 등을 가능하게 했다. 세상을 도면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한 것은 르네상스의 덕이 컸다.
도면과 르네상스
도면은 그리스, 로마 등의 고대에도 있었지만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급격히 발전하게 된다.
르네상스가 태동하면서 인간이 바라보는 시각 그 자체에 기초를 두고 자연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려는 시도가 커져 갔다.
자연스럽게 고대 그리스의 유클리드 기하학을 불러오게 되었고 그 결과 원근법이 발견되었다.
피렌체에 여행갔을 때, 원근법을 사용한 최초의 그림이라는 마사초(1424~1427)의 ‘성 삼위일체’ 그림을 직접 본 적이 있다.
평행했던 두 선이 원근감을 표현을 위해 만나게 하면 그 점이 소실점이 된다.
'성삼위일체'에서 소실점은 화면의 맨 아래 두 기증자가 서 있는 돌계단 바로 위이다. 그 위치가 박물관에서 서 있는 내 시선의 위치였고 그림을 살짝 올려다보았다.
정말 그 그림 안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서양 미술사의 재발견’에서 저자 다니엘 아라스는 원근법을 공간과 시간을 기하학화할 수 있게 만든 위대한 발견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발견은 가장 감동적이고 가슴 뭉클한 순간이라고 했는데, 이 느낌을 나도 그대로 전달 받은 것이다.
원근법을 통해 평면 그림에 공간감과 거리감을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부분이 도면 작성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던 것일까.
본래 원근법은 피렌체 두오모 성당을 건축한 브루넬레스키(1377~1446)가 처음 발명했다.
피렌체에 가면 그의 동상은 본인이 어렵게 건설을 성공시킨 두오모 성당 돔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동상으로 가까이 앉아있는 그를 자세히 보면 양손에 도면과 컴퍼스를 쥐고 있다.
돔을 건설하며 가장 소중했던 도면과 작도 (컴퍼스)를 그의 유산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지 않을까.
실제 돌을 깎아 만든 조각상임에도 손에 들려있는 도면에는 두오모 성당의 원근법 스케치가 그려있다.
조각상에 숨은 이러한 디테일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를 보고 베껴 표현할 수 있게 만든 것이겠다.
3차원을 2차원으로 표현하는 기법, 직교 투영
원근법은 “북유럽의 레오나르도”, “독일 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알베르트 뒤러(1471~1528)에게 전파되었다. 뒤러에 의해 한 번 더 도면을 그리는 기법이 고도화되게 된다.
뒤러는 많은 사람들에게 13 살 어린 시절 그린 본인의 자화상과 청년 시절의 누드화로 잘 알려져있다.
하지만 그는 사실 원근법을 깊게 연구 측정에 관한 책 네 권 '측정론 4책'을 저술까지 한 공학자이기도 하다.
뒤러는 3차원의 공간을 2차원 평면으로 나타낼 수 있는 기법인 ‘직교 투영법’ 기술을 창안했다.
자연스럽게 인간 신체의 비율을 연구했고, 그의 발을 투영법으로 여러 방향에서 바라본 모습을 스케치한 것은 아주 유명하다.
이처럼 르네상스 때 발견된 원근법과 투영법이 바로 현대 도면의 기반이 기술이 된다.
하지만 현대 도면까지 오기에는 좌표계라는 기술이 더 필요하게 되는데, 이는 다음에 얘기할 위대한 철학자이며 수학자인 데카르트를 소환해야 한다. 많은 수포자를 양성한 좌표평면의 창시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던 데카르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