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들려주세요!
형제자매 중 누구 하나 도박에 빠지던지 정신이 나가 가정을 폭파시키지 않는 한!
우리처럼 생사만 겨우 확인하며 사는 남매도 없을 거다.
심지어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명절 때도 우리는 뭔가 피로 이어진 동포애는 있으나 서로에게 겨눈 총부리는 거둘 수 없다는 듯 팽팽한 긴장감을 갖은 남 과 북의 모습으로 서로를 대한다.
굳이 따지자면 꽉 막힌 북조선괴뢰당 이 오빠 놈이다!
우리가 이렇게 된 이유는 기억 저 끄트머리까지 가서 더듬어 꺼내와야 하는 깊은 사연이 있기 때문에 넘어가기로 하고 어쨌든 이렇게 서로 으르렁대던 우리도 눈빛만으로 서로 마음이 맞을 때가 있다.
그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의미 없는 엄마의 잔소리.
전쟁터의 총알소리를 방불케 하는 고막이 찢어질 거 같은 엄마의 잔소리가 쏟아질 때면 그때만큼은 우리도 총을 내려놓고 서로의 편을 들어주기 시작한다.
삼십 분 거리에 모여 사는 우리.
온 식구가 함께 외식을 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날도 어김없이 엄마의 잔소리가 그 상대를 가리지 않고 퍼부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오빠. 탕탕!!
"XX야 넌 배 좀 들어갔어? 양배추를 먹으라니까, 운동은 한다더니 시작한 거야? 담배는 끊었고?."
"엄마, 그만 좀 해 오빠 체하겠다."
내가 속삭였으나, 여전히 마뜩치않은 표정을 가득 지으신 엄마.
그다음 신상보호를 위해 조카, 언니는 건너뛰고 나! 탕탕탕!!!
"너는 변변한 옷도 없니? 이게 뭐야? 생닭처럼 파닥거리고 이 추운데 이거 봄옷 아니야?."
오빠가 나 대신 변명해 준다.
"수희는 차 타고 오니까 가볍게 왔나 보죠."
좋았어! 척척 잘 맞아!
언니, 오빠, 불쌍한 우리 아빠.. 모두 눈을 피하기 시작했고. 결국 타깃은 맞은편 아빠에게 돌아갔다.
"왜 고기를 먹고 냉면을 먹어?. 안돼 먹지 마."
'의잉?.'
"엄마, 아빠 면 좋아하잖아 드시게 내버려두어, 그리고 고기 먹고 냉면 먹지 언제 먹어?."
그러나 엄마의 표정은 늘 그렇듯 당당하고 올곧았다.
"저 기름진걸 저렇게 많이 먹고 바로 찬 걸 먹으면 속에 들어가서 다 굳지! 아빠 고지혈증 때문에 안 좋아."
할 말 없다. 따지고 보면 전부 엄마말이 맞았다.
돌이켜보면 엄마말이 틀린 적이 없었다.
그날.. 엄마는 소화가 안 된다고 많이 드시지 못했다. 유난히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시던 엄마.. 신경이 쓰여 며칠 후 집에 찾아갔다.
굳이 굳이 밥을 먹고 가라 하셨다.
밥을 먹다 울컥 눈물이 나올 뻔했다.
나이 먹고 반찬투정 하는 거 아닌 거 아는데...
물김치에 김치찌개, 먹던 밥 덜어놓으신 거 주시며 자꾸 밥 만 더 먹으라 하신다.
'우리 집 개도 이렇게는...'
내가 진정으로 서운한 포인트는 평생 오빠 밥상 위엔 소시지 하나라도 올라가 있었고, 난 도시락도 싸주시지 않았다.
물론 내가 자발적으로 친구들과 사이좋게(?) 나눠 먹으니 내 것까지 쌀필요 없다. 그리하여 그리된 것이지만..
오빠는 학원용으로 두 개 나 싸주셨고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맨밥, 오빠는 볶음밥. 이유는 오빠가 입이 짧아서. '그럼 뭐 나는 아주 그냥 주둥이가 두만강 까지 튀어나왔나?.' 어릴 때 별명 오리주둥이 TMI-
"나 집에서 혼자 먹을 때도 이렇게 안 먹어. 하루 한 끼 먹는데 여기다 뭘 더 먹으래?."
"이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찌개에 돼지고기도 넣었구먼 건져먹어."
"나 이거 인스타에 올린다? 엄마 근데 오빠는 절대 이렇게 안 차려 주잖아!."
사진을 올린다는 말에 황급히 냉장고에서 콩나물을 꺼내시며 또 틀림이 없는 말을 하셨다.
"너는 어려서부터 김치 하나만 있어도 잘 먹었잖아, 네오빠는 입이 짧잖아. 까다롭고."
그날 서운함을 담은 이사진을 정말 sns에 올렸고 다양한 의견이 달렸다. 기억에 남는 댓글은.."와우 푸짐하네요." 내 답글은 이러했다."에라이 평생 이렇게 푸짐하게 먹어라."
그리고 오늘,
이게 뭔 일이야? 밥상이 달라졌다!
그날 그렇게 보내고 엄마도 많이 신경 쓰이셨나 보다.
밥을 먹는 내내 엄마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왜 수저를 쓰지 않고 젓가락으로 밥을 뜨냐? 김치를 먹어봐라, 생선은 밥 위에 올리지 마라 비리다. 얼굴은 왜 이렇게 말랐냐, 양배추를 먹어라. 글 침대 위에서 쓰지 마라 허리 나간다..
나는 여기 이렇게 하나하나 오늘 엄마의 잔소리를 기록하고 있다.
밥을 먹는 동안 눈물이 나올 거 같은 거 참으려고 재밌는 얘기를 찾아내느라 연신 눈알을 굴려댔다.
구부정한 허리에 복대.. 퉁퉁 부은 손, 싱크대니 식탁이니 자꾸 손을 짚으시고 겨우 서 계시는 모습을 보고 혹시나 언젠가 내가 이 엄마의 잔소리를 그리워하는 날이 올까 봐..
앞으로 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 꼭꼭 씹어 삼킬 것이다. 깊이깊이 저장할 것이다. 평생을 자식 걱정으로 하루도 한숨 쉬지 않은 날이 없었던 우리 엄마..
내가 어떤 성공을 한다 해도, 시집을 가서 애를 낳는다 해도, 그때는 또 그때의 일로 걱정하시고 잔소리하시겠지? 엄마 사랑해요.
죄송하지만 저보다 더 오래 사시길 저는 항상 기도해요.
작가의 말-사실 오늘의 에세이의 제목은 "초현실주의 작가 드라마 명대사를 부정하다!"였고. 긴 분량의 글을 다 쓰고 저장 발행의 단계에서 버튼 두 번의 실수로 날아가버렸어요. 물론 노트북에 저장한 글이 있었지만 플랫폼에 옮기고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대폭 늘어나.. 폰으로 수정하는 도중에 통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속상한데.. 이런 일 다 한 번쯤 겪어보셨죠? 전 한두 번이 아닌 게 문제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