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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수희 5시간전

내가 누구게?

수련의 부활절

고급 스포츠카에서 내리는 세 여자.

먼저 뒷좌석 문을 열고 긴 다리를 먼저 등장시킨 시원스러운 이목구비에 모델 뺨치는 몸매의 소유자. 스키니에 흰 티셔츠 라이더재킷, 대충 걸쳐도 멋지다. 김수련.


조수석에서 내린 동그랗고 조그마한 얼굴에 지적인 외모 적당한 키에 볼륨감있는 몸매.

은근히 티 나는 명품을 선호한다. 태권도 유단자,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 신은교.


뭘 입어도 블링블링. 그녀가 걸치면 그게 무엇이든 눈부시다. 뽀얀 피부에 복숭아 같은 입술 그 위에 매릴린 먼로 같은 작은 점을 소유한 애교 장인 구은정.


차주인 은정이 차 키를 손가락에 걸고 뱅글뱅글 돌리며 또각또각 걷기 시작하면 수련과 은교는 비장한 표정으로 그녀 뒤를 따라 걷는다.


오늘은 지난주에, 클럽에서 만났던 평균이 썩 나쁘지 않았던 남자들과 애프터 만남을 갖기로 한날이다.


어색함은 정해진 날에 이미 버리고 온 듯 빈속에 위스키 몇 잔 털어 넣더니 금세 이들은 친해졌다.

 

그러나 서로 다른 얘기들을 하며 웃고 떠들고 있을 뿐이었다. 남자들은 군대 얘기, 축구 얘기, 이어지는 그들의 돈 자랑 차자랑 끝에 갑자기 이 여자들을 차로 비유 하기 시작했다.


“수련이는 마치 오프로드를 달리는 레인지로버 같은 느낌이랄까?.”


수련이의 입이 씰룩거렸다 기분 좋은 것을 감추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인다.


“맘에 들어 일단 국방색이 좋아. 카모플라쥬?.”


남자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수련아 그건 옛날 랜드로버 말하는 거 같은데? 괜찮아 어쨌든 느낌을 얘기하는 거니까.”


수련이 조금 뻘쭘해진 틈을 타 은교가 툭 튀어나와 종알거리며 묻는다.


“내는 내는? 내는 뭔데? 요 입 다물었다고 생각하고 말하래이.”


은교가 자신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사투리를 의식하고 입을 가리며 남자들 앞에서

얼굴을 요리조리 흔들어 가며 눈을 깜빡인다.


한 남자가 뭐라고 얘기를 하려다가 그 모습을 보고 머릿속에서 급히 수정하고 생각을 바꾸었다.


“아 진지하게 생각해 봤는데 너 첫인상은 진짜 고급 스러웠어. 무조건 세단이지 맞지?.”


“어 맞어,맞어 난 무조건 유학생인지 알았어.

하버드?.”


드디어 은교도 눈을 내리깔고 어깨에 힘을 줬다.


“그러니까 첫인상으로 보면 폭스바겐 정도?.”


“뭐꼬? 거 얼마 한다고? 거 더럽게 짜게 구네.”


예상보다 저렴한 차종이 나왔는지 구겨진 은교의 얼굴을 우아한 손길로 제치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은정이 복숭아 같은 입술만 뽕 터뜨리고 자기 볼을 찔렀다.


“난!?.”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한 남자가 대답한다.


“무조건 페라리지.”


다들 워~ 하는 함성과 함께 인정한다는 듯 박수까지 쳐대자, 은정의 어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주먹까지 불끈 쥐며 페라리의 열망을 드러내는 남자.

“남자들의 로망! 누구나 한번은 타보고 싶잖아?.”


은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었다 흥~ 하며 콧바람까지 내었다.


그러나 눈치 없는 그가 바람 빠진 소리로 주석을 달았다.


“한번은~ 그거 유지비도 많이 들고 현실상 한국에선 타고 다닐 수가 없어. 강남 바닥도 이렇게 정비가 안 됐는데, 그 차 하부가 낮아서 바닥 다 긁혀. 안돼 그거! 그냥 한번 타보는 거지 뭐.”


거침없고 무례하고 무식한 녀석!


“뭐? 한번 타봐?.”


발작하듯 은정이 눈을 치켜뜨며 되물었지만

이 눈치 없는 남자는 2절까지 진행 중이다.


“야! 너 같으면 계속 타라면 타겠어? 한두 번 타보다 별그램에 사진 좀 올리고 벤츠나 비머 이런 거로 갈아타겠지. 안 그래?.”


뭐는 뭐끼리 뭉친다고 하나같이 눈치가 없었는지 다들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은정은 도저히 농담으로 넘겨 들을 수 없어 부들부들 떨며 그를 노려봤다.


“이거~ 왠지 모르게 모욕적이다. 어떤…. 한번 먹고 버린다. 이런 느낌? 고급 창녀? 그러한?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지? 이 더러운 느낌?.”


은정이 동의를 구하는 표정으로 은교와 수련을 바라봤다. 그녀들도 쓸데없이 정직했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 술자리는 파국을 맞았다.


이들보다 얼굴이 하나는 더 치솟은 수련이 기분이 잡친 은교와 은정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시원하게 외쳤다.


“우리를 담을 그릇이 없어! 애새끼들이 하나같이 모지리야. 안 그래? 잘난 우리끼리 한잔하자! 우리집 가자 레츠 고!!.”


방금까지 화려하게 차려입었던 이들은 수련의 집을 자기 집처럼 누비며 세안을 마치고 수련의 옷들을 자기 옷들처럼 익숙하게 주워 입고 티비 앞에 앉았다.


“아 근데 니 요즘 안좋은 일 있나? 그날이가? 표정이 좀 안 좋던데?.”

 

눈치 빠른 은교가 수련에게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넌지시 건넸다.


“음.. 아니.. 꿈자리가 좀 뒤숭숭 해서…. 나 원래 꿈 잘 안 꾸잖아.”


“맞나? 꿈은 원래 반대라 안 하나? 뭔 꿈인데? 니 똥밟았나? 똥은 좋은 꿈이데이.”


은정이 뒤에서 원교의 뒤통수를 콩! 하고 박았다.


“으이그! 수련이가 끼고 사는 책 제목이 뭐냐! 맥주나 줘 그리고 티비나 좀 틀어봐!.”


수련도 피식 웃고는 책장에 꽂힌 900페이지에 가까운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흘끗 한번 보고는 다시 티비로 눈을 돌렸다.


그들은 어느새 티비에 빠져 맥주를 홀짝이며

깔깔대고 불쾌했던 저녁 일은 잊어버렸다.


“푸하하하 개그도 결국 다 연기야 하하하 저 사람 진짜 울 것 같지 않아? 설마 정말 무서워서 저러는 건 아니겠지? 하하하 아이고 배야.”


수련이 배를 잡고 쓰러지는 척하며 티비속에 빨려들 거 같이 집중해 있는 은교의 두 손에 꼭 말아쥔 과자 봉지를 자연스럽게 뺏어 함께 뒹굴었다.


은교는 손에 쥔 과자를 뺏긴 줄도 모르고 머리를 벅벅 긁으며 긴장한 듯 말한다.


“야 내는 무서운데? 내 저 있었으면 벌써 오줌 지맀을꺼야. 옴마야 무시라.”


“무섭긴 뭐가 무섭노~ 선무당 굿판도 뒤집은년이 여기 있는데예~.”


수련이 또 은교의 말투를 흉내 내며 놀린다.


“가시나 자랑이다. 아주 잘나셨어요.

대단한 무당 감별사 나셨다 그죠잉?.”


거실에 뒹굴고 있는 두 여자 뒤로 소파 위에 길고 우아하게 누워있는 현정은 코웃음을 치며 핸드폰을 보기 바빴다.


“저런 거 다 짜고 하는 거지 뭐 유치하게 저런 걸 보고 있니? 유.치.뽕.짝.”


은정의 도톰한 복숭아 같은 입술이 그녀들의 뒤통수를 향해 뽕! 하고 벌어졌다.


수련은 어느새 은교의 과자를 한입에 탈탈 털어 넣고 과자 가루가 묻은 손을 물티슈로 벅벅 닦으며 리모컨을 찾았다.


“맞아 난 쫌 유치해 딴거보자.”


수련이 은교가 집중해서 보고 있던 티비의 채널을 돌려버렸다. 은정의 암묵적인 허가가 떨어졌으나 은교가 발작하며 수련을 노려봤다.


“이 가시나가 뒤질라고 환장을 했나?으잉? 니 미쳤어? 어? 내 까자 는 언제 가져갔어? 이기 다 쳐무써? 니 돌았나?.”


은교가 수련의 머리끄덩이를 막 잡으려는 그때 자연스럽게 수련이 채널을 또 돌린다.


“야 다른 거 보자. 슬랩스틱 저런 거 유치해. 어? 또 같은 프로네?. 똑같이 납량특집이긴 한 거 같은데 분위기가 아예 다른데?."


“뭐긴 뭐야? 아까 그건 본방송 이건 재.방.송.”


은정은 티비를 보지도 않고 잘도 알려준다.


“야 나 이거 좋아해. 그럼 이그는 놔라. 이가시나야! 그리고 니 내 까자 사온나. 그거 마지막이거든. 이기 쳐 돌았나 입에 처넣어줘도 안묵던게.”


그때 수련이 티비 속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헤 벌리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버벅대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라? 저기 저 연예인이 말하고 있는 저 집 저 동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수련의 말에 무심코 화면을 들여다본 은교와 은정은 동시에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린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먼저 그 얼음이 풀린 건 은정이었다. 여전히 수련의 손에 들려있던 리모컨을 뺏었다.


냅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수련이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자, 리모컨의 다른 버튼을 누르며 묘하게 헝클어진 웃음을 만들어 냈다.


“흐흐 요즘 누가 정규방송을 보니 유튜브 보자 유튜브.”


그제야 수련이 은정의 말에 반가워하며 신이 났다.


“내가 재밌는 거 보여줄게,  저 여자꺼 나 자주 보거든. 요즘에는 저렇게 살인사건, 외계인, 신비한 일. 뭐 그런 거 방송하는데 진짜 신기하다니까.”


은교가 은정을 돌아보며 인상을 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은정도 암묵적으로 은교의 표정에 동의하고 수련에 손에서 다시 리모컨을 뺏었다.


“아이~ 요즘 유튜브도 잘생긴 애들 많던데 무슨 여자 걸 보고 그러니~ 이거 보자 이거, 얘 잘생겼네. 쟤 뭐 탐험하는 건가 보다. 그래 저런 다큐 같은 걸 봐야지. 네셔널지옥그래퓌 뭐 그런 거. 애도 아니고 맨날 말도 안 되는 외계인이니 귀신이니…. 맥주나 줘봐.”


여유롭게 상황을 타개했다고 생각한 은정이 은교가 준 캔맥주를 손톱이 안 상하도록 조심스럽게 한 모금 따서 마시려는 그때


“어어? 저기. 저기 또 나온다. 저 동네! 내가 살던데 맞지? 작년 이맘때? 근데 저기가 저렇게 됐어? 버려진 놀이터?.”


“풉!”


은정이 기어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시다 울컥 쏟아버렸다.


“아이씨 뭐야 이거 귀신 장난도 아니고.”

 

“언니야 이게 모꼬? 이럴수도 있는기가? 아까는 재방송 정규방송 이라드니, 이번엔 뭔데?.”


“뭐긴 뭐야 저년 알.고.리.즘.”


모든 걸 체념한 은정의 입술이 다소 신경질적이지만 정확하게 뽕! 다시 터졌다.


은정이 벌떡 일어나 예쁘게 네일한 손톱을 물어뜯으며 거실로 향했다.


수련이 티비를 손가락질하며 또 입을 달싹였다.


“저기 아무래도 내 깜빡이가. 고장났나…. 뭘 또 잊어버렸지?”


그때 층간소음쯤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고음을 뽑아내는 은정.


“야! 집에 맥주가 없어? 어떻게 그래? 이 지경인데 우리를 불러?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야?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냉장고에 맥주가 없냐고? 대답해, 김.수.련!.”


은정이 돌아왔다. 정신이 돌아왔다. 다시 뽕 터졌다.


“없다고? 그럴 리가…. 말도 안 되지. 그럼, 진짜 내가 사람 새끼야? 잘 찾아봐. 있어 나 김수련이야 거기 소주도 양주도 있어. 와인도 있고 찾아봐 있다니깐.”


냉장고 안으로 팔을 휘적휘적하더니 수련을 쏘아본다.


“김수련! 언니 다이어트 시작한다고 했어? 안 했어?? 라이트가 없잖아. 라.이.트!”


잠시 멍해 있던 은교도 깜빡거리던 전구에 불이 들어온 것처럼 갑자기 뿅 하고 정신을 차리더니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아~ 니 사후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어? 죽음이 두렵지 않아? 지금 당장 묻어줘? 니 당장 편의점에 가서 언니 맥주랑 내 까자 사서 계단으로 걸어 온나. 그 후에 우리가 너를 살려두면 그것이 오늘 너의 부활절 인 것이야. 언능 안 튀어가?.”


“우리집 13층인데 6층까지만 타고 오면 안 돼?.”


수련이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애원했다.


은정이 팔짱을 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안돼. 너의 행실이 매우 고약해. 너의 육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지만 너의 죄도 사해질 거 같아.”


은정이 팔짱을 끼고 새침하게 쏘아붙였다.

은교도 거들었다.


“평소에도 잘만 기어 올라오던 게 뭔 엄살이고? 이 사람도 아닌 못된 가시나! 니 가 사람이면 친구 까자를 뺏어 묵고 라이트를 안 사다 놓고 그랄 수 있냐 말이다!앙? 내~ 살려는줄게~ 골고다의 언덕이라고 생각하고 올라와.

니 부활절 성대하게 치러줄게. 퍼뜩 안가나?”


“엉엉..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수련은 축 처진 어깨를 털레털레 흔들고 현관을 나섰다.

 

현관문이 닫히자 느슨하게 흐트러져 있던 수련의 표정이 일순 서늘하게 다 잡혔다.


그처럼 서늘한 현관문에 잠시 기대어 생각에 잠긴다.


‘나의 부활절이라…. 그때도 이맘때였을까? 너의 무의식에도 나 같은 기억 상자가 있기라도 한 거야?.’


비틀린 수련의 입가에서 새어나온 작은 웃음은 차갑고도 싸늘했다.


그러나. 수련이 나가자마자 둘은 더없이 진지하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언니…. 어쩌지? 봐버렸어. 그날 일은 기억해봤자 좋을 거 없지 않아? 어이가 없네. 아 근데 일 년 만에 저기가 왜 저렇게 됐대?.”


은교는 갑자기 사투리를 쓰지 않게 됐다.


“수련이 똑똑한 애야 지금 심부름시킨다고 저거 잊어버리지 않을걸? 찾아갈 거야. 어쩌지?.”


“아. 지금 전화해서 의논 해볼까?.”


은교의 말에 은정이 매섭게 쏘아보며 그 말을 쳐냈다.


“이런 사소한 일까지 알리지 마. 어쩔 수 없어 알게 하자. 이렇게 된 거 그때 일은 우리가 데려가서 기억을 찾아주자. 그 교수 수련이한테 들러붙는 거 왠지 기분 나빠.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 같아. 차라리 우리가 도와주자.”



그 밤 한 여자는 익명이라는 두 글자 뒤에 숨어 수련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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