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가 누구게?

그녀들의 짝사랑

by 월하수희

임교수는 그날 수련에게 한 말처럼 정말 주말이지만 급한 볼일이 생겼다.

수련의 연락을 받기 바로 몇 분 전 기다리던 문자 한 통을 받는다.


내용은 그저 누군가의 집주소였다.

임가영의 집-

가영은 현관까지 마중 나온 생머리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지희를 끌어안고 가볍게 키스한다.
신고 나갔던 하이힐이 아닌 댄디한 소가죽의 로퍼를 벗고 집안을 들어선다.

한 손에 들려있는 반짝이는 하이힐은 늘 그렇듯 현관 입구 장식장 위에 올려둔다.

와인과 과일 치즈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는 플래터를 준비해 둔 지희는 가영의 팔짱을 끼고 따라다니며 툴툴댄다.

“오전에 학교에만 들렀다 오면 된다더니 단양? 충북 단양? 거기까진 왜 다녀온 거야?.”

“응 뭐 좀 알아볼 게 있어서.”

가영의 말은 건조했고 간결했다.

2년 전 단골 펍에서 가영에게 첫눈에 반한 4살 연하 천지희. 얼마 전부터 동거에 들어가기 시작했지만 잃을게 많았던 가영은 지희에게 많은 제약을 걸었다.

그래도 그녀만 옆에 있다면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지희는 죽은 듯 그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러나 사람이란 하나를 갖게 되면 그 가진 것에 소중함을 알기에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잡아먹혀 악마와의 위험한 거래를 하기도 한다.

지희의 애교에도 별 대답이 없이 와인을 잔에 따르고 뭔가 골똘해져 있는 가영의 표정을 빤히 들여다보던 지희가 곧 눈을 흘기며 심통 맞은 표정으로 뾰족하게 긁기 시작했다.

“뭐예요? 나 지금 왜 바람맞은 기분이지? 설마 김수련 그 계집애가 또 나의 이 로맨틱한 주말에 끼어든 거야?.”

지희의 날카로운 질문에 가영은 꽤 당황했다. 하지만 오히려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와인을 한 모금 홀짝이고 내려놓는다.

이어지는 가영의 말은 상냥하지도 않았고 타협도 없었다.

“지희야 처음부터 얘기했잖아. 수련이가 나에게 어떤 존잰지. 넌 다 이해해 주기로 했고 그러니까 내 앞에서 그 애에 대해서 함부로 얘기하지 말아 줘 부탁할게.”

지희는 한숨을 쉬며 눈을 떨궜다. 바르르 떠는 가녀린 몸이 많은 것을 참아내는 듯했다.

“알지…. 당신의 첫 내담자. 유일한 상담 포기 사례자…. 게다가 지금은 당신의 애제자.”

거기까지 듣고 가영은 지희를 향해 옅게 미소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응,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천지희 너뿐이고.”

나름의 지희를 향한 가영의 애정 표현이었다.

그러나 지희는 그 손을 뿌리치고 가영을 밀어내며 주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등을 돌린 채 결국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렀다.

“그리고 당신의 첫사랑, 현재형 짝사랑!.”

“후유….”

가영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부인하고 싶지도 않았고 아니라고 너밖에 없다며 매달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대로 지희를 두고 가방과 상의를 들고 서재로 들어갔다. 한참 생각에 잠기던 가영이 책장에서 묵직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똑같은 책을 수련에게 준 적이 있다.

두꺼운 책 속에 구겨진 종이 한 장이 한 번 접혀 잘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수련의 첫 개인 상담 기록지였다.
문득 임 교수는 떠오르는 게 있었는지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하더니 아침에 수련이 쥐여주었던 메모를 찾았다.

그리고 개인 상담 기록지에 작은 부분에. 한 곳을 짚었다.

<새빨간 구두, 하얀 레이스 양말.>

가영의 눈이 천장을 향해 치켜 올라갔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