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은 힘들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앉혀서 가르치는 일은 더욱. 저녁을 먹고 난 후, 책상에 앉기조차 거부하는 아이를 억지로 앉혔다. 아이는 반 눕듯이 앉아 천장을 쳐다본다. 틀린 문제 세 개만 풀면 된다고 아이를 달래 본다. 아이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아득히 먼 곳을 응시한다.
이 아이를 가르치는 게 누구에게 이익일까. 이렇게라도 가르쳐야 하는 걸까. 먼 훗날 아이가 후회하지 않도록?
첫째 아이는 수학을 힘들어한다. 그래 나도 그랬다. 초등학교 오 학년 때부터 수학이 어려웠다. 학년이 오를수록 열심히 해도 점수가 오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어떤 과목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점수는 크게 오르지 않는다.
모범생에 지독한 노력파였던 나는 수학의 난관을 시간과 끈기로 돌파했더랬다. 나를 닮아 수학머리가 없는 아이는 안타깝게도 나의 인내심과 욕심은 닮지 않았다. 해도 못하는 게 아닌 안 하니 못하는 게 더 커 보인다.
번듯하게 잘 키우고 싶지만 아이는 내 맘 같지 않다. 나와의 공부시간은 너무 싫어하고 진저리가 나는가 보다. 살림도 육아도 학부모로서도 열등생 같다. 하기 싫다. 지긋지긋한 부모노릇.
첫째 아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나를 싫어하는 아이. 그만두고 싶다. 엄마노릇. 어떻게 하면 엄마를 그만둘 수 있는가. 죽어야 하는가. 아이들 두고 이혼하고 혼자 살아야 하는가. 그럼 다른 누군가가 내 아이들의 엄마가 되는 건가.
반짝반짝 빛나던 내 아이의 눈은 왜 터진 동태눈갈처럼 초점을 잃어가는가. 아이를 가르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가. 절충안을 찾아야 하는가.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만 계속 머리를 가득 채운다.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잘할 수 있다고 나 스스로를 다독인다. 엄마노릇도 조금 실수하고 틀려도 괜찮다고. 다만 누구나 그러하듯이 난관이 있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는 거라고.
내 아이는 내가 제일 잘 키울 수 있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누구보다 내 아이가 잘 되기를 응원하고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나 일 테니. 그것만은 사실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