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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그린 May 26. 2023

못생긴 손

그 사람 손을 봤다. 세 번째 데이트를 하던 광역버스 뒷자리에서였다. 손가락 끝이 개구리 손처럼 뭉툭했다. 손톱도 편평하지 않고 둥그스름한 작은 아치를 그리고 있어 촌스러운 느낌. 그는 큰 키와 마른 몸매에 갸름하고 긴 얼굴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너무 어울리지 않는 손이다.


손가락 끝이 그렇게 못생긴 건 본인이 물어뜯어서였다. 그걸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람과 결혼 후 낳은 아이가 6세가 되면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아이가 왜 손톱을 물어뜯는 건지 고민하는 나에게 남편은 자기도 손톱을 뜯었으며 지금도 그 습관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가끔 손톱을 물어뜯었다. 손톱 근처의 살을 물어뜯는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물고 있는 동안에는 옆에서 뜯지 말라고 해도 끝까지 뜯는 끈질긴 뜯음이었다. 왜 나는 그동안 몰랐을까?

 
참 무디다. 사랑하는 사람이 손을 문단걸 아는데 수년이 걸리다니. 왜 우리 엄마는 나에게 예민녀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던 것일까? 어쩌면 무딘 게 아니라 좋은 점만 보고 싶고 사랑하기 때문에 씌어진 콩깍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당장 이 사람이 좋은데 손 좀 못생긴 게 뭐가 큰 대수였을까.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 손은 그 사람의 성격과 살아온 인생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손톱과 주변 살을 물어뜯는 것은 높은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방법이었다. 손톱 주변의 까끌함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촉각이 예민함도 뜻한다. 또 그 긴 세월 끊임없이 물어뜯을 수 있는 것은 주변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고집스러움도 손을 통해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다.


손을 보고 그 사람의 내면과 살아온 인생을 판단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성숙하지 않았다. 나는 평범한 손을 가졌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손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다.


동글동글한 내 얼굴과 달리 길고 갸름한 그 얼굴형이 좋았다. 성격의 예민함은 섬세함으로 보였고, 문득 내뱉는 막말은 유머로 보였다. 여러모로 그는 내 이상형이었다. 그는 큰 키에 날씬하고, 유재석을 닮은 갸름한 얼굴에 상큼한 유머를 가졌다. 또 나는 똑똑하고 성실합니다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그를 나는 사랑했다.


그와 살면서 가끔 후회한 적이 있다. 내가 그의 예민함과 고집스러움을 손을 처음 본 날 알아챘더라면.


생각해 보면 손뿐만 아니라 말로, 행동으로 그는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다. 연애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여름날이었다. 강남역을 둘이 손잡고 거닐 때였다. 무슨 얘기 중이었을까. 그가 이야기했다.

“사람은 누구나 장애가 있지.”

“응? 자기는 무슨 장애가 있는데? “


“성격장애”


푸하핫 너무 재미있었다. 이 사람 정말 유머감각이 넘치는구나.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와 애 둘을 낳고 14년째 살고 있다. 가끔 그날의 농담이 떠오른다. 농담이 아닌 진심이었던 것을 그때의 난 몰랐다.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면 어땠을까. 더 행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만났어도 분명 단점이 있었을 터. 손을 통해 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알 수 있었어도 같은 결론이었을 것이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그만큼 채워주는 사람이다. 나의 고민과 생각을 두려움 없이 나누고 조언을 요청할 수 있다. 비록 가끔 막말이 나오긴 하더라도 나와 다른 새로운 관점이 재미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손이 못생긴 그 사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그로 인해 우리 아이들을 만났다. 엄마 아빠의 장점을 닮아 멋지고 귀여운 아들 딸을 낳고 나름 알콩 달콩 살고 있다. 내가 그를 사랑하듯 그도 나를 사랑함이 문득 마음이 아릴 정도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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