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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행을 간다면

우리들의 작은 영웅서사를 위하여

밥벌이로 책을 만드는 나는 책의 마감에 맞춰서 비행기 티켓을 끊어놓고는 했다. 일을 하다 힘들고 지칠 때면 괜히 비행기 티켓 일정을 다시 확인하고 숙소 주변 맛집을 검색해 가고싶은 장소를 구글 지도에 표시해 놓으며 어떻게든 마감 일정을 맞출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독려했다. 마감을 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와 타인과의 갈등,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자괴감 등을 겪게 되어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지금의 나 자신에 대한 기대감이 바닥으로 추락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여행이 필요한 순간이다.(연애가 끝났을 때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이때 여행은 여행을 떠나기 전과 다녀온 후의 내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될 거라는 희망이자 하나의 챕터를 갈무리하고 다음 챕터로 넘어간다는 각오 같은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시공간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는 새로운 시공간으로 돌아올거라는 듯이.(돈데크만과 함께 시공간을 넘나드는 시간탐험대처럼...) 물론 돌아오면 현실의 문제들은 실은 전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하지만 돌아온 나는 그때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그 문제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되기도 한다. 

물론 코로나 시대에도 여행을 떠나는 것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나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내던지는 수준의 여행, 혹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환상적인 시간으로 나를 보내는 여행은 어려운 일이다. 

돈키호테 이래 우리의 모든 여행은 곧 모험이다. 퀘스트를 하나씩 실행하고(바르셀로나에서 제일 맛있는 츄로스 집 가기 등) 위기가 닥치고 악인을 만나기도 하지만 좋은 동료를 만나 극복하고 나만의 작은 영웅서사를 완성한다. 해적왕을 꿈꾸며 계속 동지를 모으는 루피처럼... 좋은 사람들을 아주 많이 만나게 되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낯선 이에게 마음을 터놓고 속깊은 얘기를 하게 되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대가없는 도움을 받고 구원받게 되는 일들이 더러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날 공항에서 숙소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지갑과 여권과 전재산을 잃고, 여권을 재발급을 기다리며 한달이 넘도록 그곳에서 머무르다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런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얘기다(이것은 나의 이야기고 실화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행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낯선 곳에서 마음껏 집을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 친구를 그리워하며 반 자랑, 반 생존신고로 여행 사진을 보내고 고양이를 걱정하며 보살펴주는 이에게 고양이 사진을 요구하며... 나의 집을 마음껏 그리워한다. 긴 여행을 마칠 때쯤에는 한국에 가면 먹을 음식의 순서를 정하고, 또 이런 여행을 오기위해 밥벌이에 더 충실해야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는다. 마침내 집에 도착해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을 때의 안도감 마저도 그리운 요즘이다. 

코로나로 인해 내가 몇번의 새로운 인간이 될 기회를 잃었을지를 생각하니, 역시 아쉽다. 어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곳에서 마음껏 나의 집을 그리워하고 싶다.

마지막 유럽 여행이었던 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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