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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이 없는 사람

4화_사랑하면 이에 낀 고춧가루가 대수냐고 하겠지만...

kyoto, 2015

오래 전 일이다.

자주 가는 카페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나 그와 함께 있던 친구와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후에도 그의 친구와 마주칠 일이 더러 있었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소년처럼 장난기 어린 눈매로 웃는 모습이

예뻤고 웃음기를 거두고 빤히 처다볼 때면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대화가 잘 통했던 우리는 금세 친해져 둘이 만나

영화를 보기도 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몇시간이고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칭찬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옷이 예쁘다, 머리가 잘 어울린다 하는

사소한 것부터 별것 아닌 말에도

그런 생각을 하다니 너는 천재아니냐며 추켜세웠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감탄과 기특한 눈썰미에

나는 부끄러우면서도 내심 기뻤다.

Lisbon, 2017

우리 관계에 대한 기대가 무럭무럭 싹트던 어느날.

이런저런 수다를 떨던 중 그에게 왜 연애를

하지않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의 대답은 꽤나 의외의 것이었다.


"나는 누가 진짜 좋다가도 하나라도 단점을 보게되면 그때부터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 사라져.
한번은 좋아하던 여자애랑 밥을 먹는데
그 여자애 이에 큰 고춧가루가 낀거야.
그런데 그 후로는 걔만 보면 그 고춧가루 생각만나고 예전처럼 좋지가 않은거야."


앞에서는 '고춧가루가 무슨 단점이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생각할수록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그를 만나기 전부터

완벽해보여야 한다는 집착에 시달렸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은 불안으로 변했다.


예쁘다는 칭찬에는 '내일은 안예쁘겠지,

아니 당장 몇시간 후부터라도'하는 생각을 했고

그의 섬세한 눈썰미가 몹시도 원망스러웠다.

그가 나의 얼굴을 빤히 볼 때면 내 얼굴의 점을

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빨에 뭐가 낀 것은 아닌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고 긴장감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Jeongdonjin, 2012


평소 내가 단점이라고 생각하던 부분들을

감추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그럴수록 더 도드라질 뿐인듯한 무력감이 들었다.

마치 화장으로 얼굴의 잡티를 가리려고 덧바르면 덧바를수록 그 부분이 더 부각될 뿐인것처럼...

나는 그의 앞에서 점점 부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어갔다.


그는 여느 때처럼 다정했고 소년 같은 웃음도 여전했지만 나의 불안은 더해질 뿐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사람처럼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그와 만나면 만날수록 나는 못난 사람이 되었기에

더이상 그를 만나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서서히 그의 연락을 피하게 되었고 그렇게 우린 멀어졌다.


나는 끝내 그에게 내 단점을 들키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수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가끔 궁금해진다.

그가 마침내 단점이 없는 완벽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지.

아니면 이에 낀 고춧가루까지 사랑스러워보이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지.

Jeju,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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