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조리원 생활
10개월의 임신기간이 지나면 보통 10시간의 진통 후 출산을 한다. 자연분만의 경우 2박 3일 입원실 생활을 마치고 남들이 천국이라고 말하는 산후조리원으로 입소하게 된다. 그 때 약 2주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슬기로운 조리원 생활이 시작된다.
조리원 첫 입소날 남편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같이 들어갈 수 없고, 나만 남겨졌다. 남겨졌다 라는 표현이 적절했던 건 내가 거기서 느꼈던 두려움과 외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산 후 아직 돌아갈 기미가 없는 호르몬들이 나의 산후우울증에 발동을 걸었다.
수유, 수유콜, 모유수유, 유축, 유축시간, 가슴마사지 ... 그냥 들어도 어색한 단어들을 처음 접하고 조리원에 대한 규칙과 생활 방법에 대한 O.T가 끝나면 각자 방으로 돌아가서 첫 수유콜을 기다리게 된다. 나른하고 졸렸다. 일단 낮잠을 잤다. 한 3시간 잤을까. 그동안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가슴이 탄탄하게 뭉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이게 젖이 도는 느낌이구나? 나도 이제 수유라는걸 할 수 있겠군' 속으로 생각했다.
입소 첫 날 오후에 첫 수유콜이 왔다. 전화벨 소리도 요란하다.
삐-------- 삐--------
"산모님, 좀 쉬셨어요? 아기 수유 하시겠어요?"
그렇게 첫 수유콜을 받고 수유실로 갔다. 수유실 문을 열면 미리 가서 앉아 있는 엄마들이 부끄러움도 없이 가슴을 쥐어 짜며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 한 손에는 아기를 뒤에는 쿠션을 그리고 밑에는 발판을 받치고 누구는 어색하게 또 누구는 제법 모양새가 나게 앉아 있다.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앉으니 아기가 나온다. 내 아기가 아니다. 초반에는 정말 다 비슷하게 생겨서 잘 구별하지 못했다. 벨을 누르고 왔다고 이름을 말하니, 그제야 나의 아기가 나온다.
"젖은 좀 나와요?" 하며 사정 없이 나의 가슴을 조물닥 조물닥. 가슴에서 물 같은게 또륵 또륵 나오기도 한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싶지만 주변 엄마들이 모두 똑같다.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이겠지.
수유를 시도했다. 두 세번 쪽쪽 거리더니 그새 다시 잠이든다.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하지?
슬쩍 고개를 들어 주변 산모들 눈치를 살핀다. 젖이 잘 나와서 쪽쪽 주는 엄마, 아기 사진을 찍는 엄마, 아기를 가슴에 안고 토닥토닥 해주는 엄마 ... 나도 그 사람들을 보고 베낀다. 사진도 찍고, 가슴에 안고 토닥여도 본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다. 다시 아기를 선생님께 주고 방으로 올라왔다. 뭔가 정신없고 힘들었다.
잠시 앉아 있는데 다시 수유콜이 온다.
삐-------- 삐--------
"아기 수유하시겠어요?" 또 내려간다. 젖은 여전히 잘 나오지 않고 나는 또 두리번 거리기만 한다. 그렇게 한 시간을 앉아 있다가 올라왔다.
저녁 식사가 와있었다. 먹은 뒤 다시 삐... 삐............... 또 내려간다. 이렇게 반복.
누군가 산후조리원 에서는 '밥, 젖젖, 간식 젖젖, 밥, 젖젖, 간식, 젖젖' 이렇게 하루가 지나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잠시 숨돌릴 틈도 없이 어색하고 적응안되는 생활은 빠르게 스며들었다.
갑자기 남편이 보고 싶었다. 신혼생활 3년 6개월. 둘이 있었던 시간들이 지나간다. 사랑하는 남편, 둘의 알콩달콩함이 영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무서웠다. 아기 키우면서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질까봐 두렵기도 했다.
어색한 수유자세로 조리원에 있는 동안 손목과 어깨 그리고 목이 잘릴 듯이 아팠다. 젖몸살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어떤 고통일까 궁금해 하는 찰나 가슴이 단단하게 돌덩이 처럼 굳어서 옆으로 눕지도 못할 정도로 아팠다. 출산 후 첫 대변을 볼 때는 꼬매놓은 회음부 통증과 같이 뾰족한 어떤 것이 나오는 극도의 따가운 고통이 느껴졌다. 식사를 할 땐 자궁수축이 와서 배를 한 번 움켜 쥐고 식사를 해야 했고, 3시간에 한 번씩 해야 하는 가슴 유축은 불안하고 아슬아슬했다. 그럴 때는 꼭 삐 ---- 삐 ----- 수유콜이 왔다.
누가 조리원이 천국이라고 했나, 나에겐 훈련소 같은 느낌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오지 못하는 엄마가 전화가 왔다. 갑자기 몸 가벼워 졌다고 돌아다니지 말고, 살 뺀다고 또 돌아다니지 말고 가만히 누워서 땀이 뻘뻘 나도록 누워만 있어라고 한다. 방 온도 올려놓고, 얼굴에도 땀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누워 있고 땀이 나면 또 힘줘서 퍽퍽 닦지 말고 톡톡 두드려 닦으라 하고 열어 놓은 창문은 당장 닫으라고 했다. 모자동실 하면서 아기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보냈더니, 아기 손타면 나중에 니 어깨 빠진다 당장 내려놔라. 하면서 걱정과 안쓰러움 가득한 잔소리를 늘어놓으신다.
출산하고 나서 온전히 나를 이해하고 걱정해주는 사람은 오직 친정엄마 밖엔 없다.
보고싶은 남편의 한 마디가 서운하게 느껴진다. 산후우울증이 극도로 달하면서 살짝만 툭 건드려도 뭐가 그렇게 예민한지 눈물이 났다. 나는 지금 훈련소 같은 이 곳에서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남편은 일주일 내내 약속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없는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마지막 만찬을 즐긴다나 뭐라나. 극도의 화가 밀려왔다. 누구 하나 한마디라도 더 하면 진짜 싸움이 될 것 같아 둘다 말을 아겼다. 한 참 말이 없다. 서로 핸드폰만 하다가 헤어졌다. 조리원 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부터 눈물이 났다. 누구 하나 타면 어쩌나 조마조마 하며 10층에 땡 하고 도착하자마자 으헉. 하면서 눈물이 터졌다. 방에 가서 30분 넘게 딸꾹질을 하며 울음을 쏟아냈다.
산후조리원 입소 7일째, 산후우울감이 제대로 왔다. 한참 울다 보니 눈이 또 엄청 부었다. 곧 수유콜이 올 것 같아서 정신을 차리려다가도 또 울고 또 울고 그렇게 몇 번 반복했다. 친한 친구에게 마침 전화가 왔다. 온갖 육두문자를 날려가며 욕을 했다. 그래도 기분은 나아지질 않았다. 정신차리고 디카페인 카페라떼를 맥주처럼 마셨다. 그리고 저녁을 더 맛있게 먹었다. 어차피 내 기분을 다독여줄 사람은 이 곳에 나 밖에 없다는걸 상기하면서.
내가 낳은 아기지만 당장 아기보다는 7년을 함께 희노애락 했던 키우던 고양이가 더 보고싶고, 출산휴가를 내고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이 있었던 출산 전 2주가 사무치게 그립기까지 했다. 다시 일터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 당장 내 앞의 상황이 적응 되지 않고 어색해서 이 전의 평범했던 보통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내 욕망이 가장 들끓는 시기이기도 했다.
조리원천국? 그런건 없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슬기로운 조리원생활은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