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동안 책을 내면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친구가 있다. 아이디어는 어떤지, 초고는 어떤지, 이런 소재는 어떤지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혼자서 판단해도 괜찮을 것 같지만 책은 몇 장 안 되는 내용으로 출간할 수 없는 일인 만큼, 집필 방향성에 대해서 누군가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집필을 할 때면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최근엔 쓸 소재도 생각나지 않고 입 밖으로는 '써야 하는데..'라는 다짐도 아니고 후회도 아니고 계획도 아닌 말만 나왔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힘들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전성기일 수도 있었겠다.'
내게 있어 2~3권 정도의 소설을 쓸 무렵, 나는 아이디어를 짜내고 계속 쓰는 게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때는 확신은 아니지만 나중엔 이 시간이 기틀이 되어 더 수월하게 작품을 만들고 있진 않을까란 낙관적인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그때보다 글 쓰는 시간도 적을 뿐만 아니라 해야겠다는 열정도 예전 같지 않은 기분이다.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 비슷한 고민을 하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보자니 계속하다 보면 미래에는 나아지겠지란 막연한 기대는 크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란 기대감을 갖는 건 좋지만, 그것을 핑계 삼아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해'라는 식으로 뭔가를 하는 건 문제가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해'라는 마음으로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순간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과거의 나를 위해 약간의 변호를 해보자면 당시의 내가 전력을 다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닐 것이다. 전력을 다했을 때 얻게 되는 결과를 만족하지 못할 나를 마주하지 못할 두려움이 너무 크게 다가왔을 뿐이다. 결과와 관계없이 작품을 생각하고 써 내려가는 그 삶이 재밌고 행복한데 이게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혹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받는 게 겁났던 것 같다.
하지만 나도 이제는 분명히 노선을 결정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