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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가 Sep 08. 2020

손톱 물어뜯는 엄마

큰애는 7살 무렵부터 손톱을 조금씩 물어뜯기 시작하더니 점점 심해졌다. 특히 차 뒷좌석에서 심심할 때 오물오물 바쁘게도 입을 움직여 뜯었다.


처음엔 어찌나 뜨끔하던지. 왜냐면 불혹이 넘은 이 나이에도 엄마인 내가 손톱을 물어뜯는데 이걸 보고 배운 게 아닌가 해서였다.


전문가들 의견을 찾아보니 이건 억지로 못하게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손을 바쁘게 만들어보려고 종이접기나 큐브, 비즈 등을 시키곤 했는데 잠깐 주의를 돌리는 덴 효과적이었지만 장기적으로 아예 이 버릇을 고칠순 없었다.


'엄마는 네 손톱 한번 잘라보고 싶다' 고 어르고 달래다가 어느 날은 불쑥 화가 나 윽박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남는 생각은 '나 자신도 고치지 못한 주제에 누굴 고치려 드는가?'라는 의문.


그렇게 한 1년쯤 지났을까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 선생님의 팟캐스트를 듣게 되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손톱을 물어뜯는 것이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며 그것의 원인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있다고 했다. 그러니 그 증상만 없앤다고 해서 마음속 문제가 없어지진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이렇게라도 표현되는 것이 낫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거의 30여 년 이상 가지고 있던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어나 속이 시원하던지! 비록 건강한 방식으로 감정을 해소하는 게 아닐지라도 어찌 됐건 이렇게 마음을 달래온 나 스스로가 대견하기까지 했다.


그래 손톱 밑에 세균 더 먹고 감기 걸릴 확률이야 높아지겠지만 사람이 숨 쉴 틈이 있어야지! 남편은 아이가 손톱 물어뜯으면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꼭 고치고 싶어 했지만 나는 아이에게 그 정도의 틈은 남겨주고 싶어 대충 모른 척 넘어가기 시작했다.


손톱이 길어 이젠 곱게 봉숭아물까지 들인 아들의 손. 이렇게 손톱이 제 길이를 찾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손톱이 긴만큼 우리의 내면도 자랐다.


그렇게 1년 정도가 지난 것 같다. 아이는 더 이상 손톱을 물어뜯지 않는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환경에 큰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나뉠 수도 있겠는데 엄밀히 말해 코로나 때문은 아니다.


아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집안에서 엄마가 만들어준 엄마 인맥 친구들하고만 놀다가 코로나 이후 집콕을 하게 되며 자연스레 아파트 아이들과 친해졌고 그들끼리 뭉쳐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8살이 된 후 처음으로 엄마 없이 집 앞 놀이터에서 잠깐이나마 놀며 해방감을 느끼고 제멋대로 할 틈이 생긴 것이다. 그 틈을 통해 엄마의 감시 아래 막힌 숨을 잠시 내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무리 엄마의 사랑일지라도 감시와 억압으로 느껴질 때까 있었을 거다. 이 작은 아이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도 가장 힘들게 하는 것도 엄마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아이는 그렇다 치고. 나는 왜 그럼 아직도 손톱을 이렇게 물어뜯는 걸까?



나도 나만의 탈출구가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오늘도 뭔가를 쓰고 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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