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 그 사람
23화 고구마줄기볶음 편
만들 때 손이 많이 가는 반찬은 양도 적더라. 그게 법칙인가?
어릴 적 나는 할머니와 오랜 시간 함께 지냈다. 그래서 할머니의 몇몇 말투, 입맛, 행동들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느 날 할머니가 시장에서 고구마순을 엄청 많이 사가지고 오셨다. 마당 수돗가에 펼쳐놓으시고 하염없이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어린 마음에 할머니가 하는 게 놀이라 생각했는지 옆에서 거든다며 고구마 껍질을 까기 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손녀의 저지레가 얼마나 귀찮으셨을까?
그때 할머니는 여러 노래들을 부르셨는데 특히나 ‘신사동 그 사람‘을 맛깔나게 부르셨다. 어린 나도 덩달아 따라 부르곤 했다.
“나를 잊으셨나 봐~~~~“
그렇게 나는 식탁에 앉아서 한 시간 정도 고구마줄기를 열심히 깠다. 할머니가 불러주신 주현미 노래가 아닌 pavement 음악을 들으면서 말이다.
“Listen to me. I’m on the stereo stereo.”
까다 보면 어느새 손에 물이 든다. 흙빛이 도는 이 색이 빠지는데 며칠이 걸릴 것이다. 참 신기하게도 만든 정성을 스스로만 알아차릴 수 있게 나에게만 보인다. 그래, 나라도 알아주면 되는 것이다.
양이 적으니 먹을 때 더 맛있게 느껴진다. 이것도 법칙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