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조금씩 색을 입혀 본다.
32화 밥 아닌 다른 것 편
10월부터 이어나간 ‘드로잉&북바인딩’ 수업으로 소프트 파스텔, 오일 파스텔로 그림도 그리고, 노트도 만들었다. 고상한 취미라고 여길 수 있겠지만 작업하는 동안 손으로 혹은 도구로 열심히 문지르고, 어느 정도 힘 조절이 필요한 바느질도 묵묵히 해야 했다. 그 가운데 노동요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 과정이 지나면 수줍은 완성품이 나온다. 수업이 끝나면 내 안의 모든 지방이 사라지는 듯한 허기는 바로 이러한 과정의 이유이기도 했다. 개개인이 수고스러움을 견디고, 노동을 해야 탄생되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셀렘과 정성과 사랑이 느껴졌다.
나는 빵 아닌 장미로 매주 1회 강렬한 뜨거움을 맛보았다. 드로잉 마지막 수업, 나는 마네가 그린 정물화를 그려보고 싶어 폰에 저장해 두었다. 보고 따라 그려도 똑같이 구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나만의 상상을 가미할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이 선택한 색들에 대한 불확신과 망설임이 서로 조화를 이룬 뒤에야 확신으로 마침표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희열은 언제나 후회나 보람처럼 뒤늦게 따라온다는 것을 알았다. 과정은 언제나 힘들고, 스스로를 억압했다. 자유롭게 그리는 것에 대한 불안은 자유를 너무나 쉽게 집어삼켰고, 내 안에 고정된 틀을 더욱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얼마나 명령과 지시에 익숙해 있었는지를 알아챈 순간들이 아닐까. 나의 순수성과 의지는 자유의 이름 아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관람의 쾌락처럼 과정의 쾌락도 공존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나는 쾌락의 요소를 뒤로하고 과정의 충실함을 선택해야 했다. 그 뒤에 올 쾌락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닌 과정의 묵묵함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 고통이 아닌 인내라는 점을 알아채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조금씩 색을 입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