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건망증과 디지털 건망증 그리고 치매
왜 나이가 들면 건망증 즉, 기억력이 감소하는 현상이 생기는 걸까? 우선 나이가 들어 생기는 건망증과 치매는 다르다. 나이가 들면 깜빡하는 일이 잦거나 새로운 것을 기억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게 된다. 건망증이 심해지면 혹시 '치매(인지증)'가 아닐까 불안해지지만, 나이가 들어 생기는 건망증은 노화에 따른 현상으로 치매는 아니다. 우선 건망증과 치매의 원인을 알아보자.
노화에 따른 건망증(Forgetfulness)의 원인은 <나이 들면 감퇴하는 기억력! 이것만 하면 10대 수준 된다.>에서 이야기했듯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나이가 들면 신경세포(Neuron, 뉴런) 사이를 연결해 주는 신경세포 연결부(Synapse, 시냅스)가 새로 형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경우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의 혈중 농도가 높아지면 신경 세포의 손상이 촉진된다는 사실은 이미 연구 결과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다. 나 역시 작년 여름이 가장 심하긴 했는데, 지난 1년간 단어들이 잘 떠오르지 않거나, 평소라면 하지 않던 '깜빡하는 실수' 등을 했었다. 다행히 스트레스 상황이 완화되자 나아지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뇌 양쪽에 있는 ‘해마(Hippocampus)’와 관련이 있다. 해마는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중추신경이다. 사람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직경 1cm, 길이 10cm 정도의 오이처럼 굽은 2개의 해마에 기억된다. 그런데 해마의 뇌신경 세포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조금씩 파괴되기 시작해, 20세 이후엔 파괴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다. 시간당 약 3,600개의 기억 세포가 사라진다.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이라 불리는 치매(Dementia)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원래 치매는 뇌세포의 손상과 활동 저하로 생기는 다양한 장애가 원인으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이 곤란해지는 상태를 총칭한다. 가장 큰 원인은 뇌의 신경세포 주변에 '베타 아밀로이드(β-amyloid)'라는 단백질이 축적되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신경세포가 손상되어 신경전달물질이 감소하고, 뇌가 조금씩 위축되면서 인지 기능이 저하된다. 1907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 박사에 의해 최초로 보고되었다.
치매 중 가장 흔한 알츠하이머병은 매우 서서히 발병하여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경과가 특징적이다. 초기에는 주로 최근 일에 대한 기억력에서 문제를 보이다가 진행하면서 언어기능이나 판단력 등 다른 여러 인지기능의 이상을 동반하게 되다가 결국에는 모든 일상생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그 밖에도 '혈관성 치매(Vascular dementia)'나 '루이소체 치매(Lewy body Dementia)', '이마관자엽 치매(Frontotemporal dementia)' 등이 있다.
또한 '만성경막하혈종'이나 '갑상샘 기능 저하증' 등이 치매 증상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증상은 모두 뇌 속으로 흐르는 혈류 저하가 원인이라고 한다. 치매에 걸리면 건망증이 아닌, 판단력이나 이해력의 저하, 시간이나 장소, 사람에 대한 인식장애가 생기는 방향 감각장에(견당식인식장애),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실행기능장애 등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
나이가 들어 생기는 건망증과 치매의 가장 큰 차이는 '건망증 자체를 자각하는가, 아닌가'이다. 예를 들어 노화에 따른 건망증의 경우에는 자신이 깜빡깜빡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걱정하지만, 치매의 경우에는 잊어버린 사실 자체를 자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건망증은 힌트가 있으면 기억해 내지만, 치매는 경험한 일 자체를 잊어버려서 힌트가 있어도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게 특징이다. 차이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노화에 따른 건망증은
①깜빡한 일을 자각한다. ②경험한 일 일부를 잊어버린다. ③생활에는 지장이 없다. ④인격은 변하지 않는다.
치매로 인한 건망증은
①깜빡한 일에 대한 자각이 없다. ②경험한 일 자체를 잊어버린다. ③생활에 지장이 생긴다. ④인격이 변하기도 한다.
- 오기노 다카시의 <인체의 신비> 중에서
알츠하이머가 소재인 영화엔 손예진 주연의 한국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와 줄리앤 무어 주연의 미국 영화 <스틸 앨리스>가 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치매 걸린 여주인공이 나올 뿐, 치매 증상을 묘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 <스틸 앨리스, Still Alice>는 희귀성 알츠하이머에 걸린 주인공 앨리스의 변화를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춤으로써,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바꿔놓는다.
서서히 기억과 함께 말을 잃어가고, 주변 인지를 하지 못하는 등의 행동 장애를 겪으며 두려움을 느끼는 과정과 그 속에서도 온전히 자신으로 남기 위해 꿋꿋하게 삶에 맞서는 모습을 담았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잊을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소중한 시간을 갖고 당당히 삶에 맞서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다.
"한 사람이 살아온 기간 동안의 감정과 경험, 지성 등 스스로 모아 온 것들을 잃게 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이 영화의 주제가 강렬하게 다가왔다"고 줄리앤 무어는 얘기한다(이 영화로 줄리앤 무어는 제87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칸ㆍ베니스ㆍ베를린 3대 국제 영화제에서 주연상을 수상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의 인생이 사라지는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할 수 있을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특히 인간의 장 속 미생물과 발효 식품의 관계가 알츠하이머병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결과들이 있다. 따라서 규칙적인 운동과 장내 미생물과의 협업을 고려한 좋은 식습관을 생활화하는 것이다(참고: <[운동 안내서] ‘제2의 뇌’로 불리는 그들: 미생물>).
알츠하이머병 예방에 가장 효과적인 생활습관은 ‘운동’이다.
핀란드에서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주 2회 이상 운동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인지증에 걸릴 확률이 50% 이상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주 2회, 1회에 20분 이상 유산소운동을 함으로써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을 6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그 밖의 많은 연구가 정기적인 유산소운동이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한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인지증 환자를 보면 수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었던 건망증이 환자가 걸을 수 없게 되거나 자리보전한 뒤부터 급속히 진행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어서 진행이 빨라진 것이다. 보행 같은 유산소운동을 하면 뇌 내의 콜린 작동성 시냅스(아세틸콜린을 전달물질로 사용하는 신경)가 작동하여 대뇌피질이나 해마에서 아세틸콜린 방출량이 늘어나 혈류가 증가한다. 또한 대뇌피질의 모세혈관이 확장되어 폐색된 뇌혈관의 혈류저하 증상이 개선되기 때문에 허혈로 신경세포가 사멸하는 일이 줄어든다.
그러므로 노인이 운동을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물론 젊은 사람도 적당한 유산소운동을 해야 한다. 운동으로 아세틸콜린과 도파민 등의 분비가 촉진되어 뇌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45~60분 정도의 유산소운동을 최소한 주 2회, 가능하면 주 4회 정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가바사와 시온의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 중에서
노화 현상으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건망증도 있는 반면, 20~30대 젊은 나이인데도 기억력이 부쩍 나빠졌다고 하소연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그렇다면 ‘디지털 건망증’ 또는 '디지털 치매'를 의심해볼 수 있다. 이른바 ‘영츠하이머(Youngzheimer)’로도 불리는데, ‘젊은(Young)’과 ‘알츠하이머(Alzheimer)’를 합성해 만들어진 말이다. 말 그대로 젊은 나이에 겪는 심각한 건망증을 뜻한다.
예를 들면 20~30대 젊은 나이이지만 인터넷 검색 창을 띄우자마자 자신이 뭘 검색하려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거나, 메시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말을 하려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일 등을 경험하는 것이다. 20~30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망증이 늘어나는 원인은 운동부족과 질 낮은 인스턴트 음식을 자주 섭취하면서,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를 지나치게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디지털 건망증이라 불리는 이유도 디지털 기기에 무의식적으로 의존한 나머지 기억력과 계산 능력이 저하되고 각종 건망증 증세를 보이는 상태를 말한다. 한마디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기억의 필요성이 줄어든 탓이다. 간단한 것도 스마트폰에 저장하다 보니 주의 깊게 기억하려고 하지 않은 결과인 것이다.
뇌에 들어온 정보는 단기 기억으로 있다가 해마를 통해 대뇌 피질에 저장되면서 장기 기억으로 변한다. 하지만 저장되기 전 새로운 정보나 더 재미있는 정보가 들어오면 기존 정보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이때 몇 분 전에 본 내용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디지털 건망증이 발생하게 된다.
디지털 건망증이 오래 지속되면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변환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고 기억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보가 필요할 때, 두뇌에 저장된 정보를 끄집어내려는 노력 없이 계속해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 뇌에서 기억을 저장하는 메커니즘이 악해지기 때문이다. 다음은 디지털 건망증&치매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디지털 건망증&치매의 대표적인 증상
① 상대방과 대화할 때 휴대폰과 메신저를 주로 이용한다.
②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3개 이하다.
③ 손으로 글씨 쓰는 일이 드물다.
④ 애창곡이어도 가사가 없으면 부르기 어렵다.
⑤ 내비게이션 없이는 길 찾기가 어렵다.
⑥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⑦ 전에 만났던 사람을 처음 만났다고 착각한 적이 있다.
⑧ 전날에 먹은 식사 메뉴가 생각나지 않는다.
⑨ 몇 년째 사용하는 번호가 잘 외워지지 않는다.
⑩ 아는 영어나 한자가 생각나지 않는다.
참고: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디지털 건망증을 개선‧예방하려면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독서와 신문 읽기, 외국어 공부가 도움이 된다. 또한 쉴 때는 스마트기기를 잠시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멍하니 앉아 하루 동안의 생각을 정리하면 뇌가 휴식할 수 있다. 기억해야 하는 정보가 있다면 ▲집중 ▲반복 ▲흥미 3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정보를 처음 접할 때 집중해서 보고, 7~8시간이 지난 다음 한 번 더 보고, 내용을 흥미롭게 구성하면 장기 기억 전환에 도움이 된다.
나이 들면 감퇴하는 기억력! 이것만 하면 10대 수준 된다.
뇌와 기억력에 치명적인 다이어트! 평생 할 수 있나요?
독감 사망자는 한해 몇 명일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처법]
참고: <인체의 신비> 오기노 다카시 감수 | 윤관현 감역 | 양지영 옮김 | 성안당(2022)
참고: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참고: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 가바사와 시온 지음 | 오시연 옮김 | 쌤앤파커스(2019)
참고: <영츠하이머? 젊은데 자꾸 깜빡깜빡한다면?> 메디포뉴스, 2022.9.20
참고: <‘디지털치매’ 극복에 도움 되는 생활습관>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2.9.2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자격사항: 개인/임상/재활 운동사, 미국체력관리학회 공인 퍼스널 트레이너(NSCA-CPT), NSCA-스포츠영양코치, 국가공인 생활스포츠지도사2급, 퍼스널 트레이너2급, 웃음치료사2급, 바디테크닉 수료
·사이트&SNS: http://푸샵.com, 페이스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