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ood Rhapsod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ieminsu Apr 26. 2017

Meg & Vikas

Down Under Food Rhapsody


1년도 넘게 못 본 얼굴들이 보인다.  Meg, Vikas 유모차를 탄 Arri와 Arri가 데려온 얼룩말 인형까지…

"애니! 너 이 더운 날씨에 왜 스웨터를 입고 있어? 늘 춥다고 엄살떠는 것은 역시 변하지 않았구나! 하하하" 


브리즈번 근처로 이사를 가서 멀어졌지만, 이리 오랜만에 보아도 친근한 느낌은 여전하다. 

목청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셋 중 누가 제일인지 정말 비교해 볼일이다.  셋이 만나면 으레 침을 튀기고 눈썹을 위아래로 들썩이며 한바탕 이야기판이 벌어진다. 오늘은 더군다나 마지막에 본지가 언제지 기억도 안 나는지라 그간의 이야기를 하느라 아마도 한 옥타브는 더 올라갔음직하다. 

예전 일터에서 첫눈에도 야무지고 통통 튀는, 까무잡잡하고 귀여운 멕을 알게 됐고, 당시 멕의 남자 친구였던 비카스와도 친해지게 되었다.  장난기가 가득한 큰 눈을 굴리면서 농담을 잘 하는 비카스는 나같이 심각하고 무뚝뚝한 사람도 대번에 웃게 만드는 재주꾼이다.

곧 친해진 우리는 빈대떡을 부치면서 막걸리를 나눠마셨고, 비카스는 먹을 때마다 다음에 또 언제 만들어줄 거냐고 묻게 되는 컬리플라워 파라타(Cauliflower Paratha)를 불꽃 위에서 능청스럽게 뒤집으면서 내 식탐을 시험하곤 했다.

그뿐인가? 매번 서로 더 매운 고추 조림이나, 소스를 구해와서는 누가 매운 음식을 가장 잘 먹는가를 겨루었고, 발리로 함께 휴가를 가서는 예상치 못하게 발리 섬 전체가 불빛, 말과 음식을 자제하는  '침묵의 날(Nyepi)'을 맞닥뜨려 호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가지고 있던 군것질거리를 나누어 먹으며 하루를 함께 견디기도 했다. 


그렇게 호주땅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대만 처녀 멕과 인도 총각 비카스는 얼마 안 되어 둘이 세를 들어 살던 주인집 뒷마당에서 부모님들도 못 초대하고 친한 주변 사람들이 축하를 해주는 결혼식을 했다. 

멕은 인도의 사리를 입고 비카스는 중국식 의상을 차려입고 여유가 없어 차마 못 모시는 각자의 부모님들께는 스카이프 화상통화로 결혼식을 전했다. 피로연은 호주식 바베큐…  이웃집에서 간이 의자와 테이블이 조달되고, 하객들도 각자 음식을 장만해와 피로연 테이블을 더욱 풍성하게 채웠다. 

신랑 신부와 주례를 비롯해 하객까지 모두 합해도 20명이 채 안되었지만, 초라하거나 썰렁하기는커녕 모인 모든 이들이 신랑 신부 입장부터 함께 웃고, 혼인 서약을 교환할 때는 함께 울고,  붉은 노을이 넘어가는 하늘 아래서 모두 실컷 먹고, 마시고, 춤추며 아직은 쌀쌀한 봄날의 저녁 공기를 사랑과, 앞날의 대한 희망과 축복으로 따뜻하게 덥힐 수 있었다.  

그들의 결혼식은 내가 지금껏 다녀본 어느 화려한  5 스타 호텔의 결혼식보다도 아름답고, 다채롭고 풍성했으며 그 소박한 축제는 내 마음을 훈훈한 감동으로 꽉 채워주었다. 


이들 부부와의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내가 예전에 살던 집 앞뜰에 망고나무가 있었다.  나는 망고나무인 줄도 몰랐는데 어느 날 작은 망고 열매가 나무 끝에 달린 것이다. 

그 후로 출입을 할 때마다 하나씩 늘어가는 망고들을 신통해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른 아침 멕에게 전화가 왔다.

근처에 사는 지인 집에 가는 길인데 새로 산 쥬서기로 온갖 야채와 과일을 갈아서 주스를 좀 갈아왔다고, 집 앞이라며 잠시 나오라는 것이다. 

부스스 일어나 앞마당으로 나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바로 망고나무를 알아본 비카스는 왜 망고를 안 따고 놔두는지 의아해한다. 

나는, '몰라. 좀 더 클 때까지 기다리나?' 하고 무심코 대답했다. 

비카스는 먹지 않을게 확실하다며 그냥 두면 새가 다 쪼아 먹을 것이라 한다.

 '그래? 새가 먹든지 말든지…'  하며 쥬스를 담아온 보온병을 씻어서 돌려줄 요량으로 잠시 집안에 들어갔다 마당으로 나오니 그 사이 분명 나무에 달려있던 망고들이 나무 밑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비카스가 망고를 딴것이다. 한. 개. 도 남김없이!!!

그 광경을 본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아니 정말 잠시 뇌가 멈춘 것 같았다. 눈만 껌벅이고 있는 나에게 비카스가 망고를 담을 봉투를 하나 부탁한다.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봉투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차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를 듣고, 슬로모션같이 부르릉 떠나는 비카스의 차를  멍하니 그냥 바라보았다.

방으로 돌아와 다시 누운 나는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걸 느꼈다.

 '비카스는 도대체 왜 망고를 땄을까? 그것도 전부?' 

 '주인 언니한테 뭐라 말하나?'  

 '멕은 왜 도대체 그걸 보고만 있었나?'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했었나?' 

 '지금 이 시점에서 난 뭘 해야 하나?' 

무엇보다도 난 아직도 상황판단이 안되었다.  '도대체 좀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외출 후 돌아온 주인 언니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니, 열매가 좀 더 클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게다가 망고가 커가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한국에 계신 엄마께 보여드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너무 미안하다는 나에게 '할 수 없지요' 하며 힘없이 웃는다.

어쩌겠는가 망고를 다시 나무에 붙일 수도 없고… 

과일가게로 달려가서 망고 한 상자를 사서 주인 언니한테 소심하게 내민 게 내가 그때 할 수 있었던 전부였다. 

난 한동안 비카스가 보기도 싫었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망고를 땄는지 이해도 안 되었다. 너무 흥분한 나는 아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했다. 긴 통화 끝 우리는 옛날 시골에서 옆집 밭의 참외도 하나 따먹고 담 넘어온 나뭇가지에 달린 옆집 살구도 몇 개 거두어 맛보는 일이 있었듯이, 비카스는 '먹지 않고 있는 망고를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더 좋다'라는 생각을 하고 망고를 딴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전화로 나는 비카스에게 그 망고가 새 먹이용이나 관상용이 아녔다는 얘기를 차가운 목소리로 전해주었고, 그다음 날 새벽같이 비카스는 따간 망고를 신문지로 잘 싸서 집 문 앞에 되돌려 놓아두고 갔다. 

그 후 우리는 단 한 번도 서로 그 이야기를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본인은 오죽 미안했을까?  


그들이 어느덧 부모가 되었다. 우는 아기를 어쩔 줄 몰라 쩔쩔매던 모습이 지난번 봤을 때인데, 이제 능숙하게 기저귀를 갈고, 아기를 보듬는다.  이제 막 3살이 된 Arri는 중국어로 엄마와 대화를 하고, 아빠의 힌디어를 알아듣는다. 내가 물어보는 말은 당연히 영어로 답한다. 내 입에서는 '천재네, 천재야!'란 말만 나올 뿐이다. 

멕이 새로 옮긴 직장에서 입을 옷이 필요하다면서 할인매장에서 셔츠와 바지를 골랐다. 비카스는 이제 곧 추워지니 변변한 겨울옷 하나 없는 멕에게 어울릴만한 스웨터를 가져와 입어보라 하고, 둘은 또 필요 없네, 있네 하며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다. 결국 비카스의 성화에 스웨터까지 계산하고, 가족의 보금자리 장만이 꿈인 알뜰한 멕은 돈을 많이 썼다며 마음이 편치않다한다. 

헤어지면서 우리 또 1년 뒤에나 만나는 것이냐며 부부가 연락에 소홀한 나를 나무란다. 나는 금방 꼭 다시 보자며 약속을 했다.

그러고 보니 진짜로 비카스의 음식 먹어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다음에는 비카스를 졸라서 파라타를 해달라고 해야겠다. 

소박한 이 커플이 참 기특하고 아름답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은 소중한 친구들…

사람이(그리고 음식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즈 이야기 II -치즈 수플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