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1988년)
2023년 01월 27일 [인천In] '음악가 이권형의 인천인가요' 기고
의식의 방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안에 인테리어가 어떻게 구성됐든 간에, 그곳에선 모든 것이 밝은 낮의 시야처럼 또렷합니다. 의지만 있다면 마음껏 배치할 수 있는 방의 가구들이 그렇듯, 의식 속 개념들은 형태가 확실해서 마치 자유롭게 정돈할 수 있는 정물 같습니다. 흐르고 퍼져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래서 잡히지 않는 감정이나 기억 따위의 일렁임과 향취마저도 의식 속에선 언어, 개념이라는 용기에 담겨 배치되고 옮겨지죠.
역동하는 세계의 실체를 개념에 하나하나 대응시키는 게 가능할까요. 언어가 세계의 흔적들을 의식의 방 안에 보관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포장지인 셈이라 해도, 물이나 공기가 손에 잡히지 않듯, 사실 이 세계의 실체라는 것은 분명한 형태를 가지고 있진 않은데요.
사랑을 창밖에 빗물 같다고 노래하는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처럼, 우리는 종종 ‘사랑’의 형태 따위를 묘사하려는 무모한 시도 같은 걸 하곤 합니다. ‘사랑’이라는 낱말의 포장지에 싸인 감정의 실체는 실제론 워낙 모호해서, 그 실체를 경험한 이들 가운데 똑같은 증언을 하는 자는 하나도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는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시적 표현은 언어의 규칙을 교묘하게 부수면서, 단단하게 규격화된 언어들 사이 공백을 가로지르고, 그 공간 틈으로 구조화된 규칙 바깥 세계의 흔적을 상기시키니까요.
“이 밤 그대 모습이 내 맘에 올 것만 같”다는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의 노랫말처럼, 기억과 감정의 소용돌이는 빛이 사라진 밤의 모호함과 불분명함 속에서 몰아칩니다. 그러니까, 사실 이 세계의 실체는 또렷하고 명료한 낮의 세계보다는 모호하고 아득한 밤의 세계 쪽에 가까운지도 몰라요. 낮의 또렷함을 닮은 의식 속에선 모든 게 분명해 보입니다만, 사실 우리가 놓친 많은 것들이 그 바깥의 아득한 무의식으로부터 엄습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말이죠.
의식 작용이라는 건 단순히 오랜 역사 아래 굳어진 딱딱한 규격의 언어들을 재구성하는 정도밖에 안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옛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밤의 공기는, 때로 불현듯 잊었던 세월을 떠오르게 하는 시적 표현과 음악은, ‘나’라는 의식의 한계를 어지럽히는 빗소리와도 닮아있네요.
만약 우리 안에,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나를 강하게 스치는 무언가가 느껴진다면, 그 순간의 느낌이 정확하고 명료한 말들보다 훨씬 진실에 가까울 수도 있어요. 가령, 창밖에 흘러내려 사라져가는 ‘사랑’ 같은 것들 따위가.
"이밤 왠지 그대가 내곁에 올것만 같아
그대 떠나버린 걸 난 지금 후회않해요
그저 지난 세월이 내리는 빗물 같아요
그렇지만 문득 그대 떠오를 때면 이 마음은 아파올거야
그 누구나 세월가면 잊혀지지만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이밤 그대 모습이 내맘에 올것만 같아
그대 말은 않해도 난 지금 알수 있어요
그저 지난 세월이 내리는 빗물 같아요"
- ‘양수경’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