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입문. 문장으로 나를 세우다 5화
고1 때 수학여행을 갔다가 불상을 하나 사 왔다.
대리석 같은 밝은 돌로 만든 반가사유상이었다. 아름다운 조각품이었다.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예술품이었다. 나는 돌을 좋아했고, 돌로 만든 부처님에서는 미묘하고 부드러운 신성함이 깃들어 있어 좋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기념품을 딱 하나 샀고, 기념품이 깨지지 않도록 옷가지에 잘 싸서 소중하게 가지고 왔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너무 예쁘다 좋다 그것뿐.
나중에 언닌가 오빤가가 말했다. 제정신이야? 미쳤어? 정신이 있어 없어? 뭐 그런 말들이었다.
아빠는 반가사유상을 보자마자 불에 덴 듯 놀라워했다. 우상을, 그것도 장차 교회 목사 사모님이 되기를 기대하는 딸이 사 왔으니. 아빠는 크게 노여워하며 일장 설교를 했고 수채 옆 작은 마당에 '우상'을 놓고 심판했으며, 이어서 망치로 때려 부수었다. 힘차게 우상을 부수었다. 우상은 가루가 되었다.
가루가 된 우상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수학여행에서 셀로판테이프를 붙인 조명등 아래에서 친구들과 춤추며 놀았던 것이나 몇몇이 맥주를 마시고 다음날 새벽같이 토함산에 오를 때 정말 토할 것 같았던 어지러움도 싹 기억에 사라질 정도로, 아빠의 모습은 강렬했다.
나는 아빠 엄마를 따라 교회 부흥회에 참석하기도 하고 성경말씀도 잘 읽는 모태신앙인이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목록을 노래로 외워 상을 타기도 했다. 나는 모태신앙이라는 담 안에서 안온하게 지냈다.
주변에는 목사님들 전도사님들 독실한 신앙인들이 있다. 전화 통화를 하면 늘, 기... 승... 전.. 교회 가라, 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세계를 돌고 돌아 결국 도착하는 곳은 구원의 말씀이다. 그러면 나는 갑자기 출근시간이 되거나 버스가 오거나 화장실에 있거나 엘리베이터를 타는 상황이 된다. 내가 십여 년 전에 다른 종교로 개종했다는 것을 어찌 그렇게도 입력이 안 되는지. 그리고 나는 안다, 구원을 위한 그들의 노력은 끝이 없을 거라고. 그냥 고맙지 뭐.
고맙게도, 십여 년 전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인사동을 지나며 보았던 반가사유상을 선물해 주었다는 것이다. 청자로 구워진 매우 아름다운 불상이다. 내 책상에는 이 부처님과 예수님이 함께 있다. 볼 때마다 나는 열여섯 살 때의 신성한 예술감각을 떠올리곤 한다.
담을 여러 번 넘었다. 담을 넘으면 더 넓은 땅을 만나기도 하지만, 뒷덜미를 붙잡혀 된통 혼이 나기도 한다.
담은 안전하게 보호해 주기고 하지만, 그만큼 더 진하게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담'을 넘어본 경험을 떠올리고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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