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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걸음 Apr 07. 2021

#9 삼학년? 사망년!

너무나 부족한 내 모습

너무나 부족한 내 모습


멋진 길은 자신이 없었고, 

갈 수 있는 곳은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제 삶이 뻔해 보이기 시작했고,

고생길만 남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삼 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눈 앞에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 수 만가지로 늘었습니다. 나아가고자 하는 진로부터 이를 이루기 위한 수 천의 방법과 선택지에 질식할 것 같았습니다. 공기업 사기업, 전문직 일반직, 편입과 대학원, 교환학생과 어학연수, 전공과 부전공, 동아리와 공모전, 해외취업과 국내기업. 무엇 하나 쉽게 결론 내릴 수 없었습니다. 선택의 자유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멋진 길은 자신이 없었고, 
갈 수 있는 곳은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제 삶이 뻔해 보이기 시작했고, 고생길만 남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노력해도 되지 않을 것들 투성이에 시도조차 우스워 보였습니다. 어지러이 늘어진 검은 글자들에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새까만 선들을 쫓다 보면 재가 되어버리던 마음입니다. 


무엇 하나 가지지 못했습니다. 세상을 향한 자신감도, 용기도, 배짱도, 능력도, 날개도 없었습니다. 든든한 기둥과 비빌 언덕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꿈도 방향도 없는 제자리였습니다. 달려가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친구들은 정해진 길이 있어 보였습니다. 목표를 향해 날개 단 듯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스스로가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래도요. 일단 걷기로 했습니다. 

골똘한 미래, 가지가 넘쳐나던 불확실한 진로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오늘을 사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언제까지 한 자리에 움츠리고 있을 수 없었으니까요. 하루가 주어졌고, 오늘은 소중했습니다. 막막하더라도 걸어가야 했습니다. 비록 날개가 없고,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더라도 한 발자국을 딛기로 했습니다. 일단 부족한 걸 채우기로 했습니다. 


부지런히 학점을 이수하고,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교환학생을 목표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걸음을 시작하자 세상이 함께 뚜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 논리 정연한 사고와 차분한 목소리, 이국적인 분위기로 감탄을 부르는 선배가 있습니다. 말 한 번 나눌 기회조차 없었지만, 존재 자체로 눈길을 끌던 사람입니다. 과제 발표라도 할 때면 차원이 다른 수준에 존경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선배 모습에 자극 받아 이 악물고 열심히 준비한 덕분일까요?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 선배가 발표 잘 보았다며, 밥 한 번 먹자고 먼저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가슴이 널뛰었습니다.


선배는 꿈 꾸는 삶을 앞서 산 듯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고, 정치외교학과 국제통상학을 복수로 전공하며 마치 무엇이든 해낼 것 같은 당당한 자세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배는 삶을 즐겼던 이야기보다 노력하고 힘들었던 시기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두 차례의 대학입시와 생각보다 외로웠던 교환학생의 생활과 고충, 돌아온 후에 실패한 공모전과 같은 경험에서 얻은 것과 후회되는 것들을 가감없이 전해주었습니다. 


수 많은 진로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후배에게 먼저 고민한 사람으로서 솔직하고 숨김없이 의견을 제시해주었고, 어느 길을 가든 각오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 전해주었습니다. 왠만한 드라마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들과 진심 어린 조언들을 듣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해 떠 있을 때 시작한 대화는 지하철이 끊길 때 즈음 간신히 멈추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잔상이 진하게 남았던 대화 끝에, 나이 차이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후로도 종종 자문하는 질문입니다. 


‘삼 년 후, 저도 저렇게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 브런치 독자분들을 위한 글

- 1년도 넘게 적은 글들을 매주 한차례씩 전달드립니다.

 - 한 주를 또 치열하게 살아냈을 매주 토요일 밤, 지나온 발자취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

 - 여러분의 삶에 자그마한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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