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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걸음 Apr 07. 2021

#8 네팔, 다시 안 올 순간

얼마나 소중해

얼마나 소중해


여전히 매일 전기조차 끊기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세상을 품은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보며 묘한 부끄러움과 더불어

작은 열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비행기로 일곱 시간. 도착해서도 구불구불한 산간 도로와 깎아지른 낭떠러지를 따라 수 차례 산 넘고 물 건너 짙은 피부색에 반짝이는 눈을 가진 보건학교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십 수년 전, 이 지역 보건을 위해 한국 정부에서 설립을 지원한 학교였습니다. 여전히 매일 전기조차 끊기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세상을 품은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 가서 네팔에서 고치지 못 하는 병들의 치료법을 배워 오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교육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나올 법한 말들을 거침 없이 이야기하는 학생을 보며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것처럼 멍했습니다. 친척들이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며, 본인도 서울에서 일하는 게 목표라고 이야기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비교적 열악한 환경에서도 오히려 더 크고 구체적인 꿈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묘한 부끄러움과 더불어 작은 열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친구들과 보름동안 원 없이 어울렸습니다. 


처음에는 먼 타지에서 온 단원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호기심만큼 낯선 경계가 어른거렸지만, 함께 수업하고 공놀이를 하며 어울리자 점차 가까워졌습니다. 서로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수건 돌리기와 자잘한 게임들을 하며 인종과 언어, 나이를 막론하고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나중에는 손을 이끌고 기숙사로 초대해 본인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쉴 새 없이 한국에 대해 묻고 웃으며 어울렸습니다. 각자 수 개월동안 준비하고, 며칠동안 합을 맞춰 열었던 지역 행사 후에는 왠지 모를 전우애까지 생겨서 서로 환호를 지르며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떠나는 날에 학교가 눈물 바다로 변할 정도로 서로에게 정들고 아쉬워 한 날들이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네팔 밤하늘의 별은 어마어마 했습니다. 


가로등과 지나가는 차 한대조차 없는 마을에 달과 별이 유일한 빛이 되어주고, 달이 모습을 바꾸는 초승달 즈음에는 한층 까매진 하늘에 온통 점점이 반짝이는 별들이 수놓아집니다. 칠흑 같은 어두움 덕분에 손전등을 켜서 하늘을 향해 비추면 그 빛이 별까지 닿습니다. 진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치 별이 선명하게 빛나기 위해서는 새까만 밤 하늘이 필요하 듯, 봉사 중에도 소중한 순간들을 더욱 빛나게 해줄 힘든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만 수 개월 준비했고, 현지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로 밤 새기 일쑤였습니다. 현지식이 맞지 않아 보름 동안 제대로  된 밥 한 끼도 먹지 못한 단원도 있었고, 고된 일정에 아픈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저 또한 지역 인사와 언론까지 초청되었던 행사 전 날에, 누적된 피로와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물품창고에 몰래 들어가 혼자 울다 나오기도 했습니다. 모두 조금씩 지쳐갔고, 단원 간에 크고 작은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짧은 기간 필요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회의감에 젖기도 했고, 공부해야 할 시간에 봉사하고 있는 모습이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팀 전체 분위기가 쳐지는 법이 없었다는 겁니다. 지칠 법한 순간에 꼭 누군가가 실없는 농담을 던졌고, 기다렸다는 듯이 터진 작고 뻔한 실수들이 웃음을 불러 왔습니다. 분위기 메이커로 자처해 나선 단원도 있었고, 존재 자체로 주변을 밝게 만드는 팀원들도 있었습니다. 노란 우비를 입고 건물외벽 페인트칠을 할 때는 신나는 노래에 맞춰 춤판이 벌어졌고, 매일 새롭게 업데이트 되는 서로의 웃긴 사진과 성대모사로 박장대소가 이어졌습니다. 


아파서 시장에 함께 나가지 못한 단원을 위해 식당에서 바리바리 음식을 싸오고, 갈등의 위기가 감지된 날에는 갑자기 촛불을 켜고 진심을 터 놓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빛을 밝히는 촛불을 보며 도리어 서로를 알아가고, 더 돈독해지곤 했습니다. 힘겨웠던 행사를 마치고 결국 눈물이 터진 어린 동생들에게 단원들이 에워싸는 인간 띠가 되어 안아줬고, 인솔자 선생님을 하늘 높이 던져 헹가래치기도 했습니다. 봉사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일까요? 누구 할 것 없이 서로를 챙기는 모습 덕분에, 힘들수록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다시 안 올 시간이잖아. 얼마나 소중해.’


언젠가 페인트 칠을 할 때 가장 잘 웃던 단원이 말해줬습니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까맣게 느껴진 힘든 추억 속에 예쁜 이야기들이 별자리처럼 촘촘히 박혔습니다. 어느 별은 축구를 하다 넘어져서 생겼고, 어느 별자리는 문화교류 무대에서 함께 춤을 추며 뛸 듯이 행복했던 순간과 함께 그려졌습니다. 자주 잊고 살지만, 별이 뜨는 겨울이면 불현듯 생각나는 날들입니다. 


네팔에서 더 넓은 세상을 본 기분이었습니다. 

언어와 문화, 피부색이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 찡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또, 전혀 남이었던 단원들과 타지에서 가족같이 가까워지며 소중한 추억들을 만든 경험이 해외생활을 꿈꾸게 했습니다. 네팔 학생이 미국으로 가기 위해 공부하 듯, 저 역시 더 넓은 세계를 위해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꿈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일상은 현실이었던 걸까요.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돌아온 한국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교환학생을 가기에는 학점이 턱없이 부족했고, 여행을 떠나기에는 돈이 없었습니다. 준비하던 자격증 시험에서도 낙방했고, 도전했던 공모전에서도 줄줄이 고배를 마셨습니다. 새로운 꿈을 꾸며 시도하고 부딪힐수록 다시 세상이 작아졌습니다. 따뜻하고 반짝이던 마음과 크게 어긋난 차가운 현실이었습니다. 


타지의 순간은 일상의
그 어떠한 것도 바꾸어 주지 않았습니다. 



*** 브런치 독자분들을 위한 글

- 1년도 넘게 적은 글들을 매주 한차례씩 전달드립니다.

 - 한 주를 또 치열하게 살아냈을 매주 토요일 밤, 지나온 발자취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

 - 여러분의 삶에 자그마한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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