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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모멘트 Apr 07. 2021

#7 가자, 동해로!

치열함과 꿈 같은 쉼

치열함과 꿈 같은 쉼


터미널부터 끊임없는 맛집 탐방과

예쁜 카페를 들르며 웃고 또 웃었습니다. 


집에 돌아가야 하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신경 쓸 일 하나 없이 하나도 바쁘지 않은 바보들의 여행.



유래 없이 열심히 살다가 폭염주의보가 쏟아지는 여름, 단짝 친구와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서로 정신 없이 살던 탓에 정작 얼굴도 자주 못 보고 매일 통화만 하던 시기였습니다. 방학하고 더 바빠진 일상에서, 각자 치열하고 열정 넘치는 날들을 살았기에 하루가 끝나면 서로 겪은 일들을 통화로 얘기하다 밤을 새기 일쑤였습니다. 심지어 여행 날도 새벽까지 통화하다 만날 정도로 바빴던 햇살이 쨍한 여름 날. 함께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습니다. 


행선지는 강릉이었습니다. 양 떼가 인상적인 대관령 목장에 들렸다가 노을 빛에 물든 바다를 보고 오는 당일치기 코스로 구성했습니다. 부족한 잠은 버스에서 채우고, 오랜만에 목소리 대신 대면한 기회에 주구장창 셔터를 눌러 사진을 남겼습니다.


터미널부터 끊임없는 맛집 탐방과
예쁜 카페를 들르며 웃고 또 웃었습니다. 


푸르른 목장에 펼쳐진 양떼를 보다 뜨거운 뙤약볕에 서둘러 그늘로 피신하고, 유명한 감자 옹심이 집에서 버스 시간을 놓칠까 뜨거운 국물을 급히 밀어 넣다 입을 데이기도 했습니다. 때 맞춰 도착한 해질녘 동해 바다는 짙푸른 바다 위로 붉은 색으로 물든 하늘과, 구름이 한 폭의 그림처럼 풀어져 있는 정경을 선물 받았습니다. 해가진 후에도 어두운 백사장을 덮는 파도소리로 무더위를 날리며 함께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완벽한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야 하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멀리 바닷가까지 왔는데 해 진 후 헤어져야 한다니뇨. 매일 밤 통화하던 저희에게 하루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말입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큰 창문이 인상적인 카페에서 서울행 고속버스를 알아보다 옆길로 새보기로 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 대신 더 멀리 향하는 기차를 예약했고, 급하게 숙소를 잡았습니다. 여분의 옷도 없이 늘어난 하루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더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도착하자 실실 웃음이 나왔습니다. 자정이 지나서 도착한 숙소에 누워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이 주는 신선함을 맘껏 만끽하고 나누다 스르르 잠들었습니다. 


아무 일정 없는 하루는 여유로웠습니다. 

어제와 같은 옷을 입고 바보처럼 발길 닿는 대로 다녔지만, 마냥 좋았습니다. 평소라면 보이지도 않았을 낡은 인형 뽑기에 목숨 걸고 집중해보고, 흔들리는 집게에 매달려 나온 백 원짜리 인형에 소리지르며 좋아했습니다. 계란 장수 방송이 울려 퍼지는 골목길을 따라 올라 마을 항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과 마주했고,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들어간 관광 동굴에서 수십 번 머리를 박고서야 선글라스 존재를 깨닫고 박장대소했습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주저 앉으면서 웃었습니다. 


신경 쓸 일 하나 없이 하나도 바쁘지 않은 바보들의 여행.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이런 날도 필요했나 봅니다. 여전히 그 때를 생각하면 밑도 끝도 없이 웃음이 절로 지어집니다. 놀랍도록 즐거웠던 동해 바다였습니다. 



열심히 살기 시작하자 수 많은 활동과 봉사가 사방의 점이 되어 새로운 기회를 그려주었습니다. 끊임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보았고, 낯설지만 흥미로운 세계를 만났습니다. 멈춰 있던 것 같던 무미건조한 시간은 어느 새 쏜살같이 다채롭게 흘러가는날들로 변했습니다. 텅 비어 있던 이야기 주머니에 새로운 이야기가 채워졌고, 매일매일이 흥미진진했습니다. 불과 1여 년 전 까지만 해도 백지장이던 자기소개서에 그간의 우여곡절이 한 글자 씩 차곡차곡 쌓여갔고, 글이 되어 흘렀습니다. 그렇게 국내봉사로 수 백 시간이 넘어 갈 무렵에 운 좋게 해외 봉사를 떠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다른 대외활동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추천해주고, 함께 봉사하던 친구들이 후일담으로 이야기해주어서 알게 된 활동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절차와 검증을 거쳐 네팔 해외 봉사 단원으로 선발되었습니다. 


연달아 예정되어 있는 자격증 시험이나 계절학기 등이 마음에 걸렸지만, 일단 한 번 떠나 보기로 했습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국기가 선명한 남색 조끼를 입고, 두 어깨와 양손에 전달할 물품과 문화, 교육자료 짐들을 가득 들었습니다. 난방이 미비한 숙소에 필요할 침낭까지 더해 꽉 찬 배낭을 매고 먼 서남쪽 나라로 향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든든한 단원들과 함께 말입니다. 




*** 브런치 독자분들을 위한 글

- 1년도 넘게 적은 글들을 매주 한차례씩 전달드립니다.

 - 한 주를 또 치열하게 살아냈을 매주 토요일 밤, 지나온 발자취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

 - 여러분의 삶에 자그마한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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