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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걸음 Apr 07. 2021

#6 어떤 동생에게는 오지 않을 하루

노란리본 속 아이들

어떤 동생에게는 오지 않을 하루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분향소를 펑펑 울며 나오는 길.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동생들이었지만,

이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하루를 이렇게 사는 게 미안했습니다.

이렇게 대충 살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을 만난 지 한 해가 갓 넘어갈 무렵, 배가 전복되어 수 백명의 학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노을이 하늘을 덮을 즈음 뒤늦게 접한 비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학창시절 힘들었던 추억과 힘든 시기 이후에 활짝 필 미래를 만나보지 못하고 잠들어버린 수 백의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눈 앞으로 봉사로 만난 아이들과 친척 동생들, 학원에서 가르치던 학생들 얼굴이 줄줄이 지나갔고, 눈물이 멎지 않았습니다.


모든 뉴스와 신문이 앞다투어 사건의 비극성과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보도했고, 지면을 뒤덮었습니다. 지독히 가슴 아픈 이야기들은 슬픔을 더욱더 두껍고 단단하게 뭉치게 했고, 구겨질 대로 구겨진 아픔은 도무지 펴지지 않았습니다. 수 많은 추모와 위로가 이어졌고,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아주 자그마한 보탬이라도 되기 위해 안산을 찾기로 했습니다. 때마침 진도에 마련되었던 임시 분향소가 안산으로 옮겨지며 몰리는 인파를 지원할 손길이 필요했고,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학생들이 다니던 강당에 마련된 애도의 현장에서 수 많은 사람들 안내를 도울 수 있었습니다.




세 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 안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도시를 뒤덮고 있는 노란색이었습니다. 사람들 가방에 매달린 손가락만한 노란 리본부터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노란색 현수막까지 모든 게 노란 빛깔이었습니다. 임시 분향소를 찾아가는 길 내내 많은 추모의 형태들이 있었고, 모두 같은 사건을 기리고 있었습니다. 수 많은 노란색 물결 속에서 가장 잘 보이는 파란 조끼를 입고 질서 유지를 도왔습니다.


적어도 수 천, 어쩌면 수 만명이 지나간 길을 밤 새 지키며 목격한 수 많은 표정들을 기억합니다.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아마도 동일한 슬픔을 쏟아내는 듯 했습니다. 흐느끼는 분도 있었고, 험한 말을 하며 이 사태에 분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이 상황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걷고 있었고, 그 끝에 슬픈 감정이 모두 모인 강당이 있었습니다. 여느 학교 강당과 다르지 않은 갈색 벽면과 나무소재 바닥이었지만, 강단 앞에 300여 개의 학생들 사진이 하얀 국화와 함께 빼곡히 놓여 있었습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가득한 영정사진만큼이나 이상한 감정에 대부분 넋을 놓고 울고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다 분향소를 펑펑 울며 나오는 길.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동생들이었지만, 이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하루를 이렇게 사는 게 미안했습니다. 이렇게 대충 살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날 부터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교내 동아리부터 연합 동아리, 봉사활동과 각종 대회에 학업까지. 오늘 할 수 있는 걸 찾고, 무조건 해보기로 했습니다. 더 많이 채우고, 더 많이 웃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동생에게는 오지 않은 하루였습니다.

*** 브런치 독자분들을 위한 글

- 1년도 넘게 적은 글들을 매주 한차례씩 전달드립니다.

 - 한 주를 또 치열하게 살아냈을 매주 토요일 밤, 지나온 발자취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

 - 여러분의 삶에 자그마한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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