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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걸음 Apr 07. 2021

#5 내가 모르던 우리동네

봉사의 시작

봉사의 시작


특별하지 않아도, 웃으며 돌아볼 이야기가 있는

인생이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낡은 아파트, 

그 곳을 나올 때면 우리 입꼬리도 저절로 하늘을 향했습니다.



마을 버스로 구불구불한 언덕을 두어 개 지나가면 붕괴 직전의 아파트가 나옵니다. 같은 동네에 십 년을 넘게 살았지만 굳이 갈 일 없던 지역에 세월의 흔적이 뚜렷한 건물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곳곳에 철근이 튀어나와 있고, 진입금지 테이프까지 둘러져 있는 반 세기 이상을 버텨낸 아파트. 그 곳에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장기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아파트에 긴 세월을 함께하신 어르신 내외가 거주하고 계셨습니다.


벚꽃 잎이 흩날리는 사월부터 곰팡이와 사투를 벌이던 여름, 그리고 월동준비가 한창이던 가을과 산타 복장을 하고 재롱부리며 찾아 뵀던 십 이월 까지. 봉사 동아리 팀원들과 매달 몇 번씩이고 각종 장비와 물품, 어르신들을 만나 뵐 기쁜 마음을 안고 방문했습니다. 더운 날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악취가 올라오는 하수구를 뚫고, 추위가 다가올 즈음에는 드릴부터 각종 방한용품을 챙겨가 외풍이 심한 창가에 비닐을 덧대고, 각종 보수 작업을 자처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면 몇 주 새 수북이 쌓인 먼지와 또 다시 헐거워진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고쳤습니다.


그리고 나면 어김없이 작은 마루에
다 같이 둘러앉아 옛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르신들께서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태어나 전쟁과 민주화, IMF, 경제호황과 금융위기까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오롯이 경험하신 분들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중증 치매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시고, 급격히 기울어버린 가세를 비관하며 심각한 우울을 겪고 계실지 언정, 지나간 삶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하실 적에는 입가에 미소가 선명했습니다.


교과서에서 글로나 보았던 3•1운동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항상 스무 살 전쟁 통에서 멈춰 섰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간신히 들어간 대학교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 전선에서 사람들의 죽음이 오가는 순간이었지만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20대의 일상이었습니다. 특별한 것 하나 없이 막막하고, 현재가 고달픈 속에서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주변을 기웃거리고, 장난기 넘치는 친구들과 쏘다니며 쌓인 에피소드가 한 가득이었습니다. 특히 군대 얘기는 시작했다 하면 여느 복학생들의 후일담처럼 끝이 없어서, 해가 뉘엿뉘엿 지고서야 끝이 났습니다. 배경은 다르지만 우리가 사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르신들께서 과거를 회상하며 말씀하실 때면 시간을 거슬러 청춘에 머물러 계신 듯 즐거워 보였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알츠하이머 병이 무색할 정도로 또렷한 기억을 자랑하셨고, 할아버지의 눈에는 항상 힘이 실렸습니다. 서로 기억이 엇갈리는 날에는 두 분 모두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머릿속 흐려진 기억을 열심히 꺼내 보셨는데, 마지막에는 어김없이 누가 맞는지 모르겠다며 너털웃음으로 끝났습니다. 어떤 기억이든 그 모든 과거가 소중해 보였습니다.


허름한 아파트를 다녀오는 날은
많은 게 괜찮아졌습니다.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가나 봅니다. 눈 앞에 깜깜한 일들도 미소 지어지는 추억이 되는 과정을 목격했습니다. 당장 엉성하고 어설퍼서 속상했던 모습이 비슷한 애환을 겪은 육 십년 전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받았고, 당장 오늘 있던 일들만 걱정하던 스무 살 인생이 여든 까지 길어 보였습니다. 그럴 때면 모든 고민이 작아졌고, 때로는 소중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에 돌이켜 보면 이 시기도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특별하지 않아도, 웃으며 돌아볼 이야기가 있는 인생이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낡은 아파트, 그 곳을 나올 때면 우리 입꼬리도 저절로 하늘을 향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동네 다른 한 켠에서 어린 십 대 친구들을 매주 만났습니다. 카페에 들어설 때부터 우르르 재잘대며 쏟아지던 여학생들은 자리에 앉자 마자 일주일 내내 있었던 일상을 풀어내기 바빴습니다. 이번 주는 누구를 만났고, 어느 선생님과 무슨 일이 있었고, 저번 주 싸웠던 아무개와 어제 화해했다는 등 시시콜콜한 내용이었습니다. 아직 키가 150cm도 간신히 될 듯 말 듯 한 조그마한 아이들은 경찰서에서 연결해준 봉사 대상 중학생들이었습니다.


동그랗고 큰 눈에 환한 미소, 툭 치면 부러질 듯한 가녀린 체구를 가진 귀여운 아이들은 보기와 달리 마음 아픈 이력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정 불화부터 학교 폭력, 절도와 폭행 및 자퇴 외에도 말로 담지 못할 사건사고를 겪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였고, 누군가에게는 피해자였습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폭행을 당하거나 가출 후 갈 곳 없는 아이들의 슬픈 전화가 자주 울렸습니다. 파출소부터 가정법원까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함께 마주하며 참 많이 울며 아팠습니다.


과거 이야기를 따뜻하게 풀어 주시던 할아버지 내외를 만난 날, 아이들을 만나면 몇 배로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어르신들이 저희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듯 차가운 세상을 살아가는 동생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역부족이었습니다. 전혀 다른 슬픔으로 차가운 세상을 마주보고 있는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조그마한 아이들이 더 이상 아픈 일 겪지 않고, 더 많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만 커졌을 뿐입니다. 친구들과 몰려와 꺄르르 웃던 아이들에게 정이 차곡차곡 쌓여갈 수록, 뻔하고 상투적인 말이 가슴 한 구석을 차지했습니다.


‘그저 건강하기를, 행복하기를’

조그마한 동네에서 일제강점기부터 21세기를 여행할 때면 짧고 강렬한 청춘으로만 가득하던 세상이 십 대부터 여든 까지 무한히 길어지고 커졌습니다. 더 이상 혼자만 멈춘 듯한 시간이나 아직은 어두운 색깔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금이 순간이 조금 더 소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해졌습니다.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소중해졌습니다. 조건과 환경도 상관없이 그저 행복하기를요.




*** 브런치 독자분들을 위한 글

- 1년도 넘게 적은 글들을 매주 한차례씩 전달드립니다.

 - 한 주를 또 치열하게 살아냈을 매주 토요일 밤, 지나온 발자취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

 - 여러분의 삶에 자그마한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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